사소한 실수? 루엔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출입국 비자 업무 숫자 오기, 순식간에 불법체류자 전락

등록 2007.07.22 18:43수정 2007.07.22 18:54
0
원고료로 응원
외국인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베트남인 루엔(Luyen·30)은 1년 넘게 일하던 경기도 오산 소재 버섯 농장에 일이 없자, 고용주가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하여 일을 그만뒀다.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면담하러 간 곳마다 루엔의 외국인등록증이 이상하다면서 불법체류자 취급을 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어가 서툴고 비자 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루엔은 합법적 절차를 거쳐 입국했고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근무처변경 신고를 했던 입장이라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얼핏 들은 말 중 알아들었던 것은 "왜 당신 외국인등록증이 E-9-2냐. 가짜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외국인등록증이나 비자를 가짜로 만들 재주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아니요, 나 가짜 비자 아니에요"라고 말했지만 제대로 의사소통이 될 리 만무했다.

a

E-9-2로 기재된 외국인등록증(위)와 농업분야 입국 비자(아래) ⓒ 고기복

그런데 루엔이 한국인들로부터 불법체류자이거나, 외국인등록증을 위조한 것으로 오해를 받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루엔은 한국에 올 때 농축산 분야(E-9-4)로 들어왔다. 그런데 입국한 후 90일 이내에 하게 돼 있는 외국인등록 신고를 하고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실수로 루엔의 체류 자격을 제조업체(E-9-2) 입국자로 기록해 버린 것이었다.

외국인고용허가제에 의하면, 사업장 이동은 허용 업종 내에서만 할 수 있으며 다른 업종으로는 이동할 수 없다. 쉽게 이야기하면 제조업(E-9-2)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농축산업(E-9-4)으로 변경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루엔의 경우 최초 근무업체가 농축산 업체였기 때문에 국내 체류 기간 중 일할 수 있는 업종은 농축산 업종이어야 한다. 그런데 출입국에서 루엔의 외국인등록증을 만들 때, 제조업체로 입국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엔과 면담을 했던 업체 담당자들이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전직 근무처가 농업분야라고 하면서, 외국인등록증이 제조업체로 돼 있기 때문에 루엔의 체류 자격이 이상했고, 합법 체류자를 고용하기 희망하는 업체로서는 고용하는데 꺼림칙했던 것이었다.

결국 루엔은 자신이 왜 불법체류자 혹은 외국인등록증 위조자 취급을 받는지 모른 채 근무처 변경 기간인 두 달을 넘기고 말았다. 이주노동자들은 근무처 변경 신고 후 2개월 이내에 고용지원센터의 취업알선을 통해 구직을 해야 한다. 만약 2개월 이내에 취업하지 못하거나, 고용지원센터를 통하지 않고 구직하는 경우에는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로 통보되어 미등록 체류 신분이 된다.

미등록 체류자가 된 이후,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사람과 쉼터에서 체류 자격에 대한 문의를 하던 중에 루엔은 자신의 외국인등록증과 입국 당시 받았던 비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출입국의 잘못된 외국인등록증 체류 자격 기재로 구직 과정에 애로를 겪었던 이가 루엔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도네시아인 미라(Mira), 솔리스(Solis), 미아(MIa) 등등의 사람들도 출입국에서 체류 자격을 잘못 기록하여 근무처 변경 과정에 큰 혼란을 겪었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명색이 출입국업무를 담당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가장 기초적인 정보조차 틀리게 기재하여 피해자들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우리 쉼터에서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 담당자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외국인등록증 상의 체류자격은 틀리게 기록돼도 근무처를 이탈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나중에 근무처 변경을 하거나, 재발급 받을 때 수정하면 됩니다."

잘못 기재된 체류 자격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멀쩡한 외국인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데도 의외로 담당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그깟 숫자 하나 틀린 것 같고 무슨 큰 문제냐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실질적인 피해자가 발생했고 또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 사소해 보일지라도 좀 더 세심한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루엔과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출입국에서는 자신들의 행정적 실수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등록증 #고용허가제 #베트남 이주노동자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2. 2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3. 3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4. 4 이시원 걸면 윤석열 또 걸고... 분 단위로 전화 '외압의 그날' 흔적들
  5. 5 선서도 안해놓고 이종섭, 나흘 뒤에야 "위헌·위법적 청문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