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약 효능까지 무력화하는 중국 가짜약들

[해외리포트] 속병 드는 13억 대륙... 세계인 건강도 위협

등록 2007.07.22 21:08수정 2007.07.2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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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싱가포르산으로 속여 판매된 톈찬진통편. 중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가짜약 사건이 터져 언론을 장식한다.

싱가포르산으로 속여 판매된 톈찬진통편. 중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가짜약 사건이 터져 언론을 장식한다. ⓒ <동남조보>


지난 18일 푸젠(福建)성 추안저우(泉州)시에 거주하는 린(林)모씨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다가 대경실색했다. 3년 전부터 머리가 아파 복용해왔던 싱가포르산 톈찬진통편(天蠶鎭痛片)이 가짜라는 것.

린씨는 "친구가 추천하고 약국에 가서 문의하니 수입약이고 효과가 좋다고 해서 비싼 가격이지만 꾸준히 복용해왔다"면서 "어쩐지 지금까지 완치되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고 치를 떨었다.

19일 <동남조보>(東南早報)는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SFDA)은 싱가포르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지고 추안저우시의 수입상이 유통시킨 톈찬진통편이 약효성분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가짜약이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황강이(黃剛毅) 추안저우 식품약품감독관리국 주임은 "생산지가 불분명한 문제의 가짜약은 싱가포르 수입산이라는 명성을 지니고 전국 각지에 유통된 상태"라며 "톈찬진통편을 복용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a 해외로 수출되기 직전 적발된 가짜 비아그라. 이제 중국 가짜약은 진짜로 둔갑되어 해외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해외로 수출되기 직전 적발된 가짜 비아그라. 이제 중국 가짜약은 진짜로 둔갑되어 해외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 톈진(天津)세관


작년에만 33만2천여건의 불법 의약품 제조·거래

유대인과 더불어 상술의 천재라는 중국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품을 다룬다. 전 세계 66억명 가운데 20%를 차지하는 인구 탓도 있지만 중국에는 유달리 가짜가 많다. 사람 빼고는 모두 가짜를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중국의 가짜 제조기술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중에서도 중국 국내 문제를 뛰어넘어 국제 사회를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바로 가짜약(假藥)이다. 지난 2월 중국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 회의석상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33만2000여건에 달하는 불법 의약품 및 의료용품의 제조와 거래를 적발했다. 금액으로는 5억7000위안(한화 약 684억원)에 이른다.


불법 의약품 제조창 440곳을 폐쇄했고 부정한 방법으로 의약품을 등록·생산한 142곳의 제조업체를 적발했다. 약품, 의료용구, 건강식품 등에 관한 불법 광고 5만1289건에 대해서도 관계당국에 조사를 의뢰했다.

샤오밍리(邵明立) 중국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장은 "불법 의약품은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인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지적했다. 옌장잉(顔江瑛)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 대변인도 "중국은 의약품 안전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불법 의약품의 안전사고에 대비해 유관부처와 대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a 2005년 11월 안후이성 식품약품감독관리국이 적발한 가짜 의약품. 의약재료에서 중의약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2005년 11월 안후이성 식품약품감독관리국이 적발한 가짜 의약품. 의약재료에서 중의약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 안후이성 식품약품감독관리국


시장질서 교란하고 생명까지 앗아가는 가짜약

오늘날 중국에서 가짜약이 범람하는 현상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부정부패에 따른 것이다. 하나의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다양한 연구와 임상실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막대한 연구비와 투자비를 쏟아 붓는 것은 필수.

선진국 제약회사들이 판매이익의 2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시판까지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을 소요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신약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알 수 있다. 돈에 눈먼 중국의 제약회사와 제조업자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정품약을 복제·유통시킨다. 조잡하거나 가짜 의약성분을 이용하여 질 낮은 약을 유통시키기도 한다.

작년 5월 발생한 헤이룽장(黑龍江)성 치치하얼(齊齊哈爾)제약의 주사제 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의 대표적인 제약회사 중 하나였던 치치하얼제약은 아밀라리신A 주사제를 만드는 데 필요한 '프로필렌 글리콜'을 장쑤(江蘇)성 타이싱(泰興)화공에 주문했다.

타이싱화공은 진품 대신 신부전을 유발하는 공업물질인 디글리콜을 납품했고 치치하얼제약은 이를 점검하지 않은 채 주사제를 생산, 시판했다. 결국 가짜 원료를 넣어 만든 아밀라리신A 주사제는 11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같은 해 7월에는 안후이(安徽)성 화위안(華源)제약이 제조한 가짜 항생제 주사액을 맞은 환자 6명이 사망한 사고가 일어났다.

"허술한 의약품 심사·관리로 불법 의약품 양산"

a 큰 약국에서조차 진짜약과 가짜약이 함께 팔리는 경우가 흔하다. 중국 당국의 허술한 관리는 저질 의약품과 가짜약을 진짜처럼 만들어주고 있다.

큰 약국에서조차 진짜약과 가짜약이 함께 팔리는 경우가 흔하다. 중국 당국의 허술한 관리는 저질 의약품과 가짜약을 진짜처럼 만들어주고 있다. ⓒ <신화통신>

가짜약이 생산·유통됨에도 중국 정부에서 철저한 단속과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2002년 8월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장문의 르포 기사를 통해 "주민들의 일자리를 찾는 한 방도로 각 지방정부들이 가짜약 제조와 공급을 눈감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 제약회사들이 가짜약 유통에 맞서 자체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지방경찰들이 가짜약 제조업자에게 미리 단속활동을 귀띔한다"면서 부패한 관리들과 도덕적 해이에 빠진 중국 지방정부를 질타했다.

지난 10일 뇌물수수죄로 전격 사형이 집행된 정샤오위(鄭筱萸) 전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장 사건도 중국의 허술한 의약품 관리와 감독 실태를 보여준다.

한때 "가짜약을 만들어 파는 범죄를 반드시 근절하고 관련된 범죄자와 부패관리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샤오위는 제약회사들로부터 649만위안(약 7억7880만원)의 뇌물과 빌라 구입비, 외제차 등을 받았다.

정샤오위가 국장으로 재임할 때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이 승인한 신약 가운데 최소한 6종은 가짜약으로 판명됐다. 지난 13일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한 제약산업 관계자의 말을 인용,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년에 50여개의 제품을 신약으로 승인하는 반면 중국은 가짜약을 포함해 1만건의 제품을 승인해준다"면서 "허술한 의약품 심사와 관리가 불법 의약품 양산의 주원인"이라고 보도했다.

범람하는 가짜약, 중국 정품약에 대한 불신까지 낳아

a 동남아에서 유통되는 중국산 진짜 항(抗)말라리아제와 가짜 치료제. 중국은 세계 최대의 항(抗)말라리아제 생산지이자 가짜 치료제의 공급지다.

동남아에서 유통되는 중국산 진짜 항(抗)말라리아제와 가짜 치료제. 중국은 세계 최대의 항(抗)말라리아제 생산지이자 가짜 치료제의 공급지다. ⓒ 옥스퍼드대학

중국 가짜약 문제는 이미 전 세계로 파급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가짜약 중 가장 많은 수는 말라리아 치료제"라며 "동남아시아에서 유통 중인 항(抗)말라리아 치료제 중 53%가 위조품"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말라리아에 희생되는 100만명 중 20%에게 진짜 약을 제대로 쓴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공급되는 가짜약은 부작용뿐 아니라 진짜 약의 효능까지 무력화한다"고 보도했다.

작년 12월 <로이터통신>도 "중국은 세계 최대의 항(抗)말라리아제 생산지이자 가짜 치료제의 공급지"라면서 "중국산 가짜약이 범람하면서 중국의 진짜 의약품에 대한 불신마저 낳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나마에서는 자동차 부동액으로 쓰이는 디에틸렌 글리콜을 사용한 가짜 감기 시럽 26만병이 시중에 유통되어 작년에만 365명이 사망했다. 본래 함유할 글리세린을 위장해 디에틸렌 글리콜을 파나마에 수출한 곳은 중국 업체였다.

이제 중국의 가짜 의약품이 전 세계인의 생명과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국 가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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