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페미니스트들 활동 굉장히 긍정적"

[인터뷰] 이재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등록 2007.07.23 09:58수정 2007.07.2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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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홍지영 기자] 지난 17일 이재경(56)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를 만나 '한국 여성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이 교수는 "여성학 때문에 여성의 삶이 변화했다고 100% 확언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고정된 여성 역할을 탈피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데 담론을 제공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성과"라며 인터뷰의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 여성학은 실천적 학문답게 이미 우리 일상에 파고들었다. 특히 여성들 삶의 질을 높이고,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다고보나.
"과거에 비해 여성의 취업이 늘어나고 경제활동에 많은 참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변화가 여성학의 직접적인 공로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가정폭력 특별법 등 법과 제도가 바뀌는 데 여성운동과 함께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가부장제에 대항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면서 이슈화시켰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여자가 매맞고 사는 게 자연스러웠다면 지금은 '가정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범죄로 여긴다. 즉, 언어가 없다면 저항하기도 힘든데, 여성학은 문제로 보이지 않았던 것을 문제로 구성하며 '가부장적' 가치의 '보편성'에 도전해왔다. 이와 함께 여성들을 종속적 객체에서 개별성을 가진 주체로 보도록 한 것도 여성학의 기여라고 할 수 있다."

- 학문으로서 여성학이 학계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는지.
여성은 전통적 학문에서는 연구대상으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가족연구에서 잠깐 등장할 정도였다. 지금은 여성학의 확산으로 여성심리학, 여성경제학, 여성사학, 여성철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여성 연구가 활발하다. 이러한 연구들은 기존 학문의 가치, 연구대상, 연구주체 등의 젠더 편향성을 문제제기해왔다. 이와 함께 '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온 점을 성과로 꼽고 싶다. 여성학은 여성 외에도 장애인, 이주여성, 동성애자, 혼혈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을 제기하도록 기여하고 있다. 즉,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해 인식의 주체로 만든 것은 분명히 여성학이 일궈낸 성과다."

- 2007년 현재 여성학의 이슈는 무엇인가.
"1980년대에는 노동운동, 90년대에 들어서는 여성의 정치참여, 성·가정폭력이 주를 이뤘다. 지금은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이슈들이 포진해 있다. 여성학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세대들도 다양하다. 나만 해도 원로이지 않나 싶다.(웃음) 그만큼 각 세대가 고민하는 지점도 다양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연대체를 구성해 하나의 거대한 이슈를 갖고 뛰어들기 쉽지 않다고 본다. 요즘 노동계의 최대 이슈는 비정규직 문제일 것이다. 또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와 함께 일과 가족 문제를 어떻게 양립시킬 것이냐도 주요 화두다. 결혼이민자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지, 이밖에도 빈곤여성, 장애여성, 동성애여성 등 여성들간 차이의 문제도 주요 이슈 중 하나다. 정책에선 성 주류화 정책이 핫 이슈다. 성 인지 예산제, 성별영향평가 등 성 주류화 정책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여성학이 상당한 발전을 거뒀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 모든 면에서 남성을 뛰어넘는 당당한 '알파걸'들의 시대가 오면서 여성학이 말하는 '차별'을 공감하지 못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졌다. 이에 대한 생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하나는 차별에 대한 민감성이 적다고 말하고 싶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은 우리 일상 곳곳에도 많다. 일례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겪는 성추행도 차별이다. 여대생들이 왜 그렇게 고시에 몰리겠나. 시험이라는 객관적 기준을 통해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 아니겠나. 다만 '난 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차별이나 운운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차원은 실제로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차별의 문제에 덜 접촉하는 알파걸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차별이 약화된 결과의 영향도 있지만, 알파걸이 알파걸로 살아가기 위해서 여성에게 부과된 역할을 남성 파트너가 나누어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알파보이의 시대에 소수의 알파걸을 추가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대안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 아시아 여성학의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하다. 세계 여성학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고 있나.
"여성학 하면 서구 또는 유럽을 떠올린다. 하지만 소위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에서만 여성학 연구활동이 있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로컬에 더 주목한다. 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즉 서구에서 바라본 시선이 아닌 개발도상국의 여성들이 지식 생산의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경험을 바라보는 작업이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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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눈부시다. 이들의 활동을 어떻게 보나.
"굉장히 긍정적으로 본다. 나를 포함해 페미니스트 1세대들도 당시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문제를 풀어왔다. 하지만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겐 우리 방식도 이미 '올드'할지도 모른다. 피케팅만이 운동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거다. 이들이 다양한 이슈를 다양한 방법으로 끌어내는 것은 사회운동의 방식이 바뀌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 요즘에는 어떤 연구를 하나.
"한국의 가족 변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일과 가족의 갈등, 저출산, 결혼 지연 현상 등 후기근대에 나타나고 있는 '한국가족의 변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일례로 직장맘이 늘면서 오히려 집을 일터로 생각하는 엄마들이 늘어났다. 이를 두고 옳다 그르다를 논할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야 하는지가 요즘 내 고민이다.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재경 교수는 누구?

국내 여성학 중 가족여성학을 뿌리내리게 한 페미니스트 1세대에 속한다. 1952년 경북 칠곡 출생. 1974년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87년 미시간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가족여성학)로 재직중이며, 현재 이화여대 국제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협력담당관, 한국여성학회 부회장, 한국가족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페미니스트 #여성 #이재경 #알파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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