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당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라'

[룩소르에서 다마스커스까지 50] 야드바셈 홀로고스트 역사박물관

등록 2007.07.23 17:01수정 2007.07.2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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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복도 벽면에 부착되어 있는 상징 조각품 ⓒ 이승철


"우리들은 지금 야드바셈으로 가고 있습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현지 교민인 가이드 서 선생이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야드바셈이 뭐지?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이름에 일행 중 몇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창밖에는 여전히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가 정차한 곳은 방벽처럼 보였지만 밑으로 사람들과 차가 통과할 수 있는 제법 높다란 콘크리트 구조물이 앞을 가로막은 널따란 주차장이었다. 주차장에서 내린 일행들은 약간 까다로운 검색대를 통과하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야드바솀(Yad Vashem)은 히브리어로 '이름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야드바셈 박물관은 정식 명칭이(Yad Vashem-Holocaust history Museum) 홀로고스트 역사박물관으로 '이름을 기억하라'는 아주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 박물관은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범죄로 불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독일이 저지른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의 기록과 사진 그리고 증언과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당시의 참혹한 모습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시된 것들은 유물뿐만 아니라 사진과 함께 당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영상으로 담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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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드바셈 박물관 주차장 입구의 조형물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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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목도와 나무가 보이는 풍경 ⓒ 이승철


박물관은 단층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전시방법이 아주 독특했다. 전시장 안에는 비슷비슷한 유품들과 사진들이 엄청나게 많이 전시 되어 있어서 모두 둘러보기가 지루하고 따분할 수도 있었다. 특히 직접 당사자가 아닌 외국인들은 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런 느낌 없이 모두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구조와 전시기술 때문이었다. 박물관은 굉장히 넓은 전시공간이었지만 아주 넓거나 쭉 이어진 긴 직선공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체로 짧은 단선과 지그재그 식, 그리고 완전히 180도로 꺾이는 구조와 배치, 입체적인 전시로 관람객들에게 지루하게 느낄 틈을 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유물, 영상도 바닥과 천정, 그리고 벽면에 비치했는데 그 조화가 절묘하여 사실감을 충분히 증폭시키고 있었다. 한 곳에는 유리바닥 밑에 낡은 신발들을 한 무더기 전시하고 있었는데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품이었다.

전시관 중에서도 당시 희생된 어린이들을 추모하는 별관은 줄을 잡고 앞으로 나가야할 만큼 어두컴컴한 공간에 수많은 촛불을 밝혀놓고 있어서 더욱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데 이 어린이 추모관에서는 당시 희생된 어린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방송이 반복하여 계속되고 있어서 부모들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느낌까지 받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박물관은 1953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2005년 3월에 5600만 달러를 들여 역사관을 세우고 새롭게 단장하여 개관하였다. 비용의 대부분은 해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부담했다고 한다. 10만여 평의 부지에 세워진 박물관은 추모탑과 전시관, 역사관, 어린이 희생자 추모별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관을 돌아보고 커다란 복도로 나오자 복도 옆 한 방에는 관람객들이 영상을 통하여 찾아볼 수 있도록 몇 대의 컴퓨터가 비치되어 있기도 했다. 또 넓은 복도 한쪽 면에는 아주 특이한 모양의 조각 작품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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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조각작품1, 파괴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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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조각 작품2, 저항 ⓒ 이승철


그런데 이 조각 작품들은 그냥 단순한 것들이 아니었다. 이 박물관과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의미 있는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상징 조각품들은 4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첫 번째 상징 조각품의 이름은 '파괴' 였다. 이 조각품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가스실, 그리고 목이 잘린 물고기가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극심한 핍박과 학살로 절망상태에 빠진 유대인들을 묘사하고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은 '저항'이었다. 이 조각품은 뜨거운 불과 같은 고통과 감옥에 갇혀 있는 유대인들이 날카로운 창으로 위협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희망이라는 사다리를 붙잡고 살아남기 위해 저항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세 번째 작품은 '이민'이었다. 이 작품은 학살과 배척의 땅에서 배를 타고 탈출하여 그들의 약속의 땅인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네 번째 작품은 '재생'이었다. 용맹스러운 사자와 그 등 위에 곧바르게 서있는 두 개의 촛불로 묘사된 상징은, 굳건하게 세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가정의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다시 전시실을 한 군데 더 둘러보기로 했다. 끝부분에 있는 전시실에는 원추형의 둥근 뿔 모양에 수많은 사진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이들이 바로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의 사진이었는데 어떤 노인은 자신의 가족이라도 찾고 있는지 사진을 하나하나 짚어나가고 있는 모습도 보여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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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조각 작품 3, 이민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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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조각 작품 4, 재생 ⓒ 이승철


"나치 독일 놈들 정말 인간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인간백정들이었구먼."

전시장을 돌아보던 일행 한 사람이 혀를 끌끌 찬다. 박물관은 비록 우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다른 민족, 유대인들이 겪고 당한 참상의 역사기록이었다.

그렇지만 같은 시기에 일제의 만행으로 수많은 독립지시와 동포들을 잃은 우리들이어서인지 그저 무심코 지나칠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 조국을 떠나 외지에서 유랑하던 동포들의 후손들이 지금도 중국과 옛 러시아 땅에 얼마나 많은가.

다른 한 곳에는 멋진 액자에 담긴 커다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상당히 낯익은 얼굴들도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히틀러와 아이히만 등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나치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그것참, 저 사람들 사진이 어떻게 여기 걸려 있지? 이곳에 저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 어째 좀 이상한 느낌인데?"

정말 그랬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면도 없지 않았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학살자들과 희생자들의 사진을 같은 공간에 비치하여 놓은 모습이야말로 유대인다운 발상이 아닐까? 당시 가해자들인 학살자들의 커다란 사진이 희생자들에 대한 더 깊은 추모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학살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어쩌면 반어법적인 구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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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정원의 석조믈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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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구에 있는 고난과 죽음의 상징 부조물 ⓒ 이승철


"우리들에게는 죽은 친구들을 기억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들의 희생을 상기하면서 우리들이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198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이 박물관의 대변인이기도 한 엘리위젤이 한 말이다. 엘리위젤은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인으로 아버지와 함께 당시 독일군에게 끌려가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몇 년간이나 수용되어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밖으로 나오기 전에 넓은 복도에서 잠시 쉬며 유리창을 통해 내려다 본 이스라엘 땅은 짙은 안개 때문에 희부연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함께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이스라엘의 학생들 한 떼가 몰려나온다.

그들의 모습과 표정에서는 특별한 감정이나 숙연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 어리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역시 아무리 유대인들일지라도 흘러간 아픈 역사가 후손들에게까지 깊은 감동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컴퓨터 자료실로 들어가 조상들의 아픈 역사를 다시 찾아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니까.

"역시 유대인들은 정말 대단하구먼, 저 많은 자료와 유물들, 그리고 영상으로 제작된 증언들까지, 전시해 놓은 모습도 그렇고…."

일행 한 명이 내 옆자리에 앉으며 하는 말이었다. 무언가 꼭 짚어 말하지는 못하지만 상당한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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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나오는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이승철


"우리도 일제의 역사청산을 확실하게 했었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독립기념관도 새로운 전시와 조명이 필요할 것 같고…."

'이름을 기억하라'는 독특한 명칭을 가진 이스라엘의 홀로고스트 역사박물관에서 새삼스럽게 우리의 아픈 역사를 곱씹어 보는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야드바셈 박물관 #유대인 #히틀러 #2차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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