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절벽에 기대어 있는 게 뭐지?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12] 경북 구미시 도개면에 있는 문수사

등록 2007.07.25 13:47수정 2008.04.09 19:00
0
원고료로 응원
a

깎아지른 절벽에 기대어 지은 반집이에요. 아주 희한하게 생겼지요? ⓒ 손현희

지난 15일, 경북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 마을에 들어섰을 때에요. 여느 시골마을과 비슷한 풍경이지만,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매우 아늑하고 정겹게 보여요. 우리는 이런 풍경에 흠뻑 빠져들곤 합니다.

 

"우리 저 마을에 한 번 가보자!"

"저기?…. 어! 그런데 저게 뭐야?"

"어디?""저기 말이야! 저 산 중턱에 뭔가 있는데?"

"어 진짜네, 저게 뭐지?"

 

마을 뒤로 산 중턱 모양이 조금 남달랐어요. 둘레는 온통 푸른빛으로 싱그러운데, 그 자리만 움푹 팬 듯하고 희끗희끗한 게 무언지 몰라도 무척 신비롭게 보였어요.

 

"가보자! 덮어놓고 가자!""그래 까짓것 가보자! 자전거로 못 갈 데가 어디 있어! 안 그래?"

 

a

산 중턱에 움푹 패고 희끗하게 보이는 곳이 바로 문수사예요. ⓒ 손현희

다시 부지런히 발판을 밟아 갑니다. 무언가 낯선 걸 찾았을 때는 무척 신나고 즐거워요.'신곡리 옛 이름 새일'이라고 쓴 마을 안내판이 보여요. 도개면에도 볼거리가 꽤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이 마을에도 뭔가 남다른 게 있을 거라 여기며 올라갔어요. 푸른 들판을 따라 아스팔트로 잘 닦아놓은 길을 올라가다 보니,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낚시하는 이가 저 멀리 보여요.

 

"아, 절이구나!""그런 가 보다.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 깎아지른 듯 보이지?"

 

저수지 앞에서 보니, 아까 보았던 산 중턱에 있던 게 무언지 어렴풋이 알겠어요. 바로 절이었어요. 아스팔트로 이어진 길이 어느새 시멘트 길로 바뀌고 또다시 흙길이 나타나요. 산 바로 아래까지 가서 보니, '문수사'라고 쓴 알림판이 있어요.

 

"아니, 도대체 절은 왜 이렇게 높은 데만 있는 거야?"

 

"여기가 문수사구나!""어이쿠! 이거 웬 오르막?"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길이 보통 가파른 게 아니었어요. '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하며 걱정을 하는데, "가는 데까지 가, 가다 안 되면 끌면 되잖아"라는 남편이 하는 말을 듣고 자전거를 타고 꾸역꾸역 올라갔어요. 얼마만큼 올라가니, 웬걸? 이건 갈수록 길이 더 가파른 거예요. "아이고, 난 못해! 끌고 갈 거야" 하면서 자전거에서 내렸어요. "애고, 그걸 못해? 천천히 밟으면 되지." 남편은 그야말로 지그시 밟으면서 올라와요.

 

"에이, 안 되겠다.""하하하, 거봐! 안 된다니까!"

 

나한테 핀잔을 주던 남편도 어느새 발을 빼고 끌고 올라오고 있어요. 말이 끄는 거지, 이건 자전거를 위로 밀면서 올라가야 할 만큼 가파른 길이었어요.

 

"아니, 도대체 절은 왜 이렇게 높은 데만 있는 거야?""그러게 말이야.""그리고 웬 벌이 이렇게 많아? 그렇지 않아도 땀이 나서 죽겠는데, 벌이 자꾸만 눈앞에서 웽웽거려."

 

애꿎은 절집만 나무라면서 둘이 그렇게 투덜대며 올라갔어요. 땀은 비 오듯 하고 매우 힘이 드는데, 바로 위에서 개 짖는 소리가 크게 들려요. 두어 마리쯤 되는 듯했어요.

 

"다 왔나 보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거 보니…."

"어, 생각보다 짧네."

"휴! 다행이다."

 

가파르기는 했지만 길이 짧아서 좋았답니다. 길 위에 올라서니, 아주 널찍한 마당이 있어요. 진돗개 두 마리가 낯선 우리를 보고 마구 짖네요. 언젠가 다른 절에 가려다가 마을 들머리에서 개가 하도 짖고 사납게 굴어서 돌아 나왔던 기억이 나서 매우 조심스러웠어요. 이 절에는 개집 안에 있는 거라서 그런 걱정은 없네요.그런데 절집이 두어 채 있는 건 틀림없는데, 산 아래에서 봤던 그런 모습이 아니에요. 이상하게 여기고 살피는데, 누군가 저 위에서 우리를 부르는 듯해요. 길을 따라가니, 할머니 한 분이 나와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요.

 

깎아지른 절벽을 등 뒤에 지고 세운 절

 

a

문수사, 작은 절이지만 둘레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요. 할머니 넉넉한 인심도 무척 살갑지요. ⓒ 손현희

"할머니, 여기가 문수사에요?"

"네. 맞아요."

"그런데 저 아래에서 보니까 절 뒤로 큰 바위가 있던데요?"

"아, 거긴 저 위로 더 올라가야 돼요.""네? 또 올라가야 돼요?"

"그렇게 안 멀어. 조금만 올라가면 있어요. 그런데 자전거 타고는 못 가는데…."

 

할머니 말을 듣고 자전거는 두고 걸어서 가기로 했어요. 샘터에서 물을 한 바가지 받아서 먹고는, 주섬주섬 사진기를 꺼내들고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둘레 경치가 꽤 멋스러워요. 크고 작은 바위가 드문드문 눈에 띄기도 했어요.

 

a

나무에 새긴 조각이 매우 남달랐어요. 문수보살님인가? (내가 불자가 아니라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 손현희

할머니 말씀대로 그다지 멀지는 않았어요. 절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나를 맞아주는 듯 처마 끝에 달린 종이 '뎅그렁 뎅그렁' 큰 소리로 울립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풍경을 보고 그만 입이 딱 벌어졌어요.온통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등에 지고 있는 모습이 희한했어요. 바로 절집을 반만 지어놓은 거였어요. 바위를 등지고 지붕도 반쪽, 몸통도 반쪽, 지은 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꽤 멋스럽고 보기 드문 풍경이에요.

 

이층으로 지은 집인데, 올라가니 산 아래 들판 풍경과 저 멀리 구미 금오산까지 한눈에 보여요. 그야말로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었답니다. 대웅전을 구석구석 구경하고 꼼꼼하게 사진을 찍고는 다시 아래로 내려왔습니다.그때까지도 할머니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게다가 커피까지 두 잔을 끓여서 우리한테 주시는 게 아니에요? 고마운 마음으로 마시면서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어요.

 

a

깎아지른 절벽에 기대어 지은 절이에요. 희한하고 매우 멋스러워요. ⓒ 손현희

a

매우 큰 절벽과 어우러진 절 풍경이 참 남달랐어요. ⓒ 손현희

a

바위틈에 부처님을 모셔놓고 있다가 새로 지은 지 25년쯤 된다고 해요. ⓒ 손현희

남편과 아들 잃고 문수사에 들어오신 정숙현 할머니

 

여기 이 절은 본디 초가로 지은 절이었대요. 고려 때 '납석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인데, 하도 오래되어 그만 초가가 폭삭 내려앉았다고 해요. 그 뒤로는 아주 오랫동안 이 절벽 바위틈에 부처님을 모셔놓고 있다가 지금 건물로 지은 지는 한 25년쯤 된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6·25 때 군인이었던 남편을 여의고 백일 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마저 잃었대요. 그 뒤로 이 절에 들어오셔서 지금까지 스님 공양을 해드리면서 계신 거래요.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아리기도 했습니다.

 

a

6·25 때 군인 간 남편을 여의고, 백일 된 아들마저 잃고 이 절에 들어오셨대요.(정숙현 할머니 80) ⓒ 손현희

"할머니, 절집 경치가 참 좋아요. 우리도 절을 많이 다녀 봤는데 이런 곳은 처음 봤어요."

"그렇지요. 그렇지 않아도 여기 오는 신자들도 그런 말 많이 해요. 올라오는 길만 잘 다듬으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거라 하면서요.""네. 우리도 아까 올라올 때, 정말 애먹었어요. 어찌나 가파르든지 나중에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왔거든요."

"아이고, 옛날에는 나도 자전거 타고 다녔는걸!"

"네? 할머니도 여기를 자전거 타고 다녔다고요?"

"그럼요. 그때는 아랫마을에서 집집이 돌아다니며 모아놓은 공양을 자전거 뒤에 싣고 왔지. 올라올 때는 힘들어도 내려갈 때는 금방이야. 저기 마을까지 5분도 안 걸리니까. (이렇게 말씀하면서 할머니께서는 환하게 웃으세요.)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차라리 차를 배웠으면 내 맘 데로 다닐 텐데, 이젠 늙어서 자전거는 타고 싶어도 못 타. 어질어질하더라고…."

 

할머니가 젊었을 때, 이 가파른 오르막길을 자전거를 타고 오르내렸다고 생각하니 퍽 놀라웠습니다. 이어서 들려주는 문수사 주지이신 혜향스님(72) 이야기도 무척 남달랐어요.

 

a

절에 가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돌틈마다 몇 개씩 놓아둔 동자승이에요. 무척 귀엽죠? ⓒ 손현희

a

대웅전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리 구미 금오산까지 다 보여요. 전망이 아주 좋답니다. ⓒ 손현희

마을 일에는 늘 앞장서서 일하시는 혜향스님 이야기

 

"우리 노스님은 이 절에서 40년 남짓 계셨는데, 옛날에 마을 사람들이 살기가 매우 어려웠거든. 그래서 생각한 게 벌을 치는 거였어. 이 마을에도 벌을 쳐서 먹고사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네? 벌이라고요? 아, 그래서 올라올 때 그렇게 벌이 많았나 봐요." (아까 절에 올라올 때, 유난히 벌이 웽웽거리던 게 떠올랐어요.)"네. 지금 우리 절에는 신도가 그리 많지 않아서 스님이 벌 치는 걸 갖고 살고 있어요. 내가 틈틈이 채소를 가꾸는 걸로 공양을 하고요."

 

할머니는 절 둘레에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온종일 풀도 뽑고 쉴 틈이 없다고 하셨어요. 더구나 며칠 전부터 허리를 삐끗했는지 몸이 영 시원찮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러면서도 웃는 낯으로 우리한테 얘기를 들려주시는 게 무척 정겨웠지요. 마치 우리 할머니를 만난 듯했어요.

 

"그라고 우리 스님은 좋은 일도 참 많이 하셔요. 마을 일에는 늘 앞장서서 하시지요. 또 구미시에서 우리 스님 이야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거든." (또 수줍게 웃으세요.)

 

이곳 주지인 혜향(72)스님은 지역사회 봉사에도 늘 앞장서서 일하신다는 얘기와 작은 절 살림이 그리 넉넉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두 분이 소박하게 잘 꾸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 따듯하게 들렸어요.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스님을 한번 뵙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침 먼데서 손님이 와서 배웅하러 나가셨다고 하네요.할머니께서는 "우리 스님이 계실 때 오셨으면 법문이라도 듣고 가실 텐데…" 하시며 아쉬워 하셨어요.

 

"할머니, 다음에 꼭 다시 찾아올게요. 그땐 스님도 뵙고 재미난 얘기 많이 듣고 갈게요. 그리고 허리 아픈 것 빨리 나으세요. 아셨죠? 쉬엄쉬엄 일하시고요.""네. 그래요. 고마워요. 다음에 꼭 와요."

 

해는 벌써 뉘엿뉘엿 지고 구미까지 돌아가야 할 길이 멀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다가 뒤돌아보니, 그때까지도 할머니는 그 자리에 서 계셨어요.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007.07.25 13:4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문수사 #절 #할머니 #혜향스님 #절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국인들만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소름 돋는 '어메이징 코리아'
  2. 2 참전용사 선창에 후배해병들 화답 "윤석열 거부권? 사생결단낸다"
  3. 3 맨발 걷기 길이라니... 다음에 또 오고 싶다
  4. 4 눈썹 문신한 사람들 보십시오... 이게 말이 됩니까
  5. 5 해병대 노병도 울었다... 채상병 특검법 국회 통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