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맞이하는 그 흔하고 흔한 죽음 앞에 항상 말과 행동을 삼가고 애도하는 마음을 가진다. 비록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일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인간다움'의 한 모습이다. 간혹 인간의 탈을 쓴 악마와 같은 존재의 죽음에는 축제를 벌이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비록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인간일지라도, 그의 죽음을 모욕하고 조소하며 함부로 대하는 것은 '비인간'의 모습으로 여긴다.
탈레반에 의해 살해당한 배형규 목사의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느낄 절망 앞에 이런 '비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라고 '인간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모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단지 이 사건을 계기로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인간다움을 너무 쉽게 잃어버린다는 데에 있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지금까지 그들이 하고 있는 말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들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국 개신교의 잘못'이다. 한국의 개신교가 보여 왔던 그 자기중심적 오만과 편견과 위선과 강요와 배타적이고 정복적인 선교활동이 결국 납치된 사람들을 그런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동안에 보아 왔던 한국 개신교의 잘못은 여기서 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이나 자기반성이 없는 그들의 신물 나는 모습에 사람들은 더 이상의 관용을 베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의 잘못, 더불어 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굳이 찾아간 사람들의 잘못이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무자비한 누리꾼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올바른 사리판단이나 정의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결코 올바른 생각이나 정의가 될 수 없다.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깊은 물가에 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갔다가 결국 물에 빠져 당장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왜 경고를 무시했냐는 질타와 조소를 보내는 것을 올바른 판단이나 정의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옳은 말이더라도 그와 같은 말과 행동은 어떤 설득력도 가질 수가 없다. 하물며 그들에게 "죽어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보다 더 큰 인면수심의 죄악일 뿐이다.
최근 병적인 전도를 하는 한 교인으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한 스님의 사진 때문에 누리꾼들이 더욱 격앙되어 개신교의 잘못을 토로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스님은 자신에게 수모를 준 교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고 하고, 오히려 누리꾼들의 모습이 올바르지 않다고 했다.
이 일은 납치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향해 질타와 조소를 보내는 누리꾼들에게 올바른 교훈을 준다. 그것은 지금의 누리꾼들이 사회화된 인간이 가져야 할 올바른 생각과 태도가 아닌, 잘못된 방식의 비난을 마치 정의인 것처럼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병적인 전도에 대한 병적인 비난, 그것은 '잘못된 종교활동'과 그에 대한 '잘못된 시민행동'을 말해 줄 뿐이다.
관용이나 배려가 없는 무분별한 종교활동을 해 온 한국 개신교의 잘못을 용인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든지 한국 개신교의 문제를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것이 위험과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정의란 '너희가 잘못된 선택을 했으니 너희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식의 계산기 같은 결론을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다. 언뜻 냉엄한 것처럼 보이는 정의라는 가치 안에는 사랑과 이해와 용서와 자비심과 긍휼과 희생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자비가 필요할 때, 더군다나 긴박한 위험에 처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을 때, 계산기를 두드리며 상대방의 '과실책임'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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