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쉬엄(休) 쉬엄(休)' 돌아다니기

부부가 함께 떠난 여행, 휴휴암과 백로서식지

등록 2007.07.28 13:00수정 2007.07.2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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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된다. 장마철 소강상태를 이용하여 틈새여행을 떠났다.

지난주에 딸이 아기를 시댁에 보내준다고 겸사겸사 대구로 갔다. 딸과 손주가 월요일에 집으로 돌아오니 이번 주말이 바로 마지막 휴가인 셈이다. 아기 방의 모기를 날렵하게 두 손으로 때려잡는 집사람을 봐서는 아기가 집에 있으면, 혹시 떨쳐 버리고 어디로 잠시 놀러 간다 하더라도 보나마나 휴가지에서 하루 종일 아가타령만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런 이유로 이번 주말에 집사람과 함께 나가 보려 하는 것이다.


a 주문진 건어물시장. 어차피 잠자기 힘든 더운 밤 손님도 기다리고 이웃과 이야기도 하고….

주문진 건어물시장. 어차피 잠자기 힘든 더운 밤 손님도 기다리고 이웃과 이야기도 하고…. ⓒ 이덕은

a 가시가 짧은 참성게는 보라멍게와 달리 알이 향기롭고 달콤하다. 한번 맛들이면 보라성게는 쳐다 보지도 않는다.

가시가 짧은 참성게는 보라멍게와 달리 알이 향기롭고 달콤하다. 한번 맛들이면 보라성게는 쳐다 보지도 않는다. ⓒ 이덕은

21일, 비 소식은 없었으나 장마철 티를 내듯 고속도로는 국지성 강우와 짙은 안개로 시야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일상을 떨쳐 버리고 떠나간다는 설렘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도착이 늦을 것 같아 목적지를 삼척에서 주문진으로 바꾸니 저녁 8시 조금 지나서 도착할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평소 주말가격에 방을 정하고 부두 구경을 하고 회 센터로 가니 의외로 피서객이 적다. 전복치와 쥐치 세꼬시를 한 접시, 참성게가 있어 그것을 조금 주문했다. 지난 번에는 삼천포에 너무 늦게 도착해 24시간 횟집에서 먹었던 퍽퍽한 회를 보상이나 하려는 듯 회가 싱싱했다. 한가로운 대화와 함께 향기롭고 달콤한 참성게 알, 쥐치의 쫄깃한 질감에 술 한잔을 곁들이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다음 날 휴대폰 모닝콜을 해제시키지 않아 졸지에 새벽 5시에 기상한다. 흐린 날씨에도 창밖은 여명에 양떼구름이 선명히 들어나고 방파제 사이로 밤새 조업한 오징어잡이 배들이 엔진소리를 붕붕내며 들어오고 있다. 부두는 벌써 시끌벅적하다.

a 밤새 조업을 하고 갑판에서 어망에 붙은 오징어를 떼어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밤새 조업을 하고 갑판에서 어망에 붙은 오징어를 떼어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 이덕은

a 너무 일찍 찾아가서 아침 잠을 방해한 것인가? 녀석들은 둥지에서 나와 객을 즐겁게 해주지 않는다.

너무 일찍 찾아가서 아침 잠을 방해한 것인가? 녀석들은 둥지에서 나와 객을 즐겁게 해주지 않는다. ⓒ 이덕은

배에서 그물을 걷어 내리며 망에 붙어 있는 오징어를 떼어내는 날랜 손놀림들. 이제는 여자가 배에 타면 안 된다는 금기는 없어졌는지 아줌마들도 밤새 바다에 나간 차림으로 갑판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양이 보기 좋다. 벌써 나무상자에 오징어를 채워놓은 아줌마는 곁에 다가와서 한 상자 사라고 부추긴다.

건어물 상회 사이에 들어서 있는 북청해장국집. 주문진에 들리면 꼭 들르는 집인데 할머니가 안보여 안부를 물으니 작년에 돌아가셨단다. 할머니가 없어서인지 밍밍해진 것 같은 해물 해장국이지만 밥 반 그릇 말아 해장을 한다.


남애1리 해수욕장에서 7번 도로를 건너 24시 불한증막 표지가 있는 새마을도로로 들어서면 포매리가 나온다. 이곳에 'ㅁ'자 형태의 '조규승 가옥'이 나오는데 여기는 가옥보다도 백로와 왜가리 서식지로 더 유명한 곳이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한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조규승 가옥은 안목이 없는 사람이 보아도 매우 안정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데 숲에 백로와 왜가리까지 둥지를 틀고 있으니 명당임에 틀림없다. 왼쪽에 앞으로 튀어 나온 누마루는 'ㅁ'자 가옥의 답답한 느낌을 줄여준다. 아침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 뒤로 기상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인지 게으른 백로는 날개만 푸득거릴 뿐 좀처럼 나를 즐겁게 해주지 않는다.


a 아주머니들이 범종 속으로 들어가서 웅얼거리고 있다. 신종 기도 방법인가 하여 곁에 서있는 아주머니께 물으니 시주한 사람들 이름이 범종 속에 새겨져 있어 그것을 확인하는 중이라 한다.

아주머니들이 범종 속으로 들어가서 웅얼거리고 있다. 신종 기도 방법인가 하여 곁에 서있는 아주머니께 물으니 시주한 사람들 이름이 범종 속에 새겨져 있어 그것을 확인하는 중이라 한다. ⓒ 이덕은

a 연화법당. 휴휴암 앞에 있는 너럭바위이다. 어머니 잔등같은 펑퍼짐한 바위에 퍼질러 앉아 바다를 쳐다보면 저절로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 들게 된다.

연화법당. 휴휴암 앞에 있는 너럭바위이다. 어머니 잔등같은 펑퍼짐한 바위에 퍼질러 앉아 바다를 쳐다보면 저절로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 들게 된다. ⓒ 이덕은

잠시 학과 연꽃을 구경한 다음 다시 7번 국도를 조금만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휴휴암이 나온다. 이 일대 해안에 있는 바위들은 마치 밀가루 반죽을 하다 만 것처럼 쭈그러들면서 주름진 모양을 하고 있는데 특히 이곳 휴휴암은 그런 형태인 독특한 모양의 바위가 많다. 몇 년 전에 홍법스님이라는 분이 수도 정진 중 바닷물 속에 누워 있는 부처님 형태의 바위와 거북바위를 보고 절을 지었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지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건물들이 너무 많아 휴휴암이란 이름만 보고 차분하고 아담한 암자를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한쪽에 범종루가 아직 단청도 완성되지 않고 제자리를 찾지 못한 목어와 바닥에서 웃고 있다. 그런데 웬 아낙네 들이 하나 둘 범종 속으로 들어가더니 속에서 웅웅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새로운 기도 방식인가 하여 곁에 서있는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 속에 새겨져 있어 범종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휴휴암은 바다와 맞닿은 법당 앞으로 커다란 너럭바위가 바다 위에 떠있어 불자가 보면 연꽃과 같다할 것이고 범인이 보면 거북 잔등 같다 할 것인데, 기도처를 마련하고 연화법당이라 부르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로 뻗쳐 나온 바위 위로 올라서면 불자가 아니더라도 '휴휴(休休)'라는 말을 왜 붙였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집사람과 둘이 어머니 등판 같은 너럭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배 한 척, 떠오르는 햇살로 반짝이는 수평선, 바위 위로 넘실대는 파도에 저절로 무념무상의 상태로 빠져든다.

a 식탐신이 강림한 나의 눈에는 광어회로만 보이는데, 신심이 돈독하신 스님이 보시면...

식탐신이 강림한 나의 눈에는 광어회로만 보이는데, 신심이 돈독하신 스님이 보시면... ⓒ 이덕은

자리에서 일어서니 너럭바위 한켠에서 먹이를 바다에 뿌리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먹이가 물 위로 떨어지자 물거품이 일며 물고기들이 펄떡인다. 물밑으로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고 곁에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고기들이 노니는 자리 부근 바위 모양이 광어를 닮아 있어, 식심(食心)이 깊은 내가 봐도 이 바위가 고기들을 끌어 모으는 공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물며 심심((信心) 깊은 스님이 기도에 몰입하다 고개를 들고 건너편 바위를 잠시 쳐다본다면 기기묘묘한 바윗돌이 바닷물 속에서 나타난 관음보살이라 여긴다 할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      닥다리즈 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      닥다리즈 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휴휴암 #연화법당 #조규승가옥 #백로서식지 #인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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