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팔만대장경'에 담겨진 비밀

[서평]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등록 2007.07.29 19:07수정 2007.07.29 19:21
0
원고료로 응원
a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표지.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표지. ⓒ 고래실

지난 6월, 우리나라는 '문화강국 코리아'의 명성을 세계 곳곳에 떨치는 2건의 쾌거를 이뤘다.

세계유산을 지정하고 관리하는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팔만대장경판'과 '조선왕실의궤'를 세계기록유산으로, '제주도의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세계자연유산으로 각각 이름을 올린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기록유산을 추가한 것은 6년 만의 일이고, 세계자연유산을 등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세계유산 등재를 비롯해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조상의 숨결이 살아있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우리보다 세계가 더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점에서 우리 문화유산에 혼을 담았던 조상들의 과학사고 능력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마침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을 만나게 돼 참 반갑다. 이 책은 조상들의 과학사고 능력이 현대과학으로도 따라잡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여러 문화유산들을 통해 조목조목 설명한다.

석굴암의 비밀은 '자연원리 적용'

먼저 지난 1995년,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린 '석굴암'을 보자. 일제강점기였던 1909년에 발견돼 세상에 알려진 석굴암은 일본에 의해 몇 차례 잘못 복원되며 내부에 습기가 차는 등 수난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태녕 서울대 교수는 이 문제를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석굴암은 본래 지하에서 용출되는 물이 굴의 바닥에 있는 암석 기초층을 관통하여 흐르도록 만들어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의 보수공사 때 이 지하수가 다른 곳으로 방출되도록 구조를 변경한 것도 석굴암 훼손에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였다. 원래의 배수방법은 굴 안의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해서 벽면에 결로 현상이 생기는 것을 막았는데 이를 변경하였기 때문에 습기 문제가 생긴 것일 수도 있었다."

a 석굴암 내부에 습기가 차서 이슬이 맺히는 문제는 지금껏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책 속 사진 촬영.

석굴암 내부에 습기가 차서 이슬이 맺히는 문제는 지금껏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책 속 사진 촬영. ⓒ 고래실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석굴암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석굴암 내부의 결로현상(結露, 습기가 차서 이슬이 맺히는 것) 문제는 지금껏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성규 인하대 교수는 "일제의 1910년대 대공사는 실패작이다"면서도 "그러나 우리의 보수공사는 필자가 보기에는 더욱 치명적인 타격을 석굴암에 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석굴의 외벽에 쌓여있는 돌들(자갈층)의 과학적 기능에도 주목하며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자갈층 밖에서 들어가는 공기는(특히 장마철에는) 습기 차고 더운 상태이다. 이것이 차가운 자갈층 내부를 통과하면서 수증기는 응축하여 자갈층에 남고 공기는 차가워진다. 이렇게 차갑고 건조해진 공기만이 석굴암 내부를 향하여 흘러 들어간다. 자갈층 내부에서 차가와진 공기는 밀도가 높으니까 자연히 아래쪽으로 흐르는 것으로 달리 송풍기가 없어도 이런 방식으로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주실 내부를 꾸준히 채우게 되고, 석실 내부는 언제나 뽀송뽀송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1200여 년을 이어온 석굴암의 비밀은 결국 석굴 밑으로 물을 흐르게 하고 석굴 바깥에 자갈층을 두르는 등 자연원리를 이용해 습기를 제거한 조상들의 슬기로움에 있었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석굴 바깥에 시멘트를 바른 뒤 문제가 생기자 송풍기와 제습기 등 기계장치를 동원해 석굴암을 관리하고 있다. 놀라운 자연과학원리가 적용됐던 석굴암에게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750년 보존돼 온 팔만대장경판

조상들의 놀라운 과학사고 능력은 750년 동안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팔만대장경판'과 이를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1995년 세계문화유산)'에서도 돋보인다.

법보전·수다라장·동사간전·서사간전 등 총 4동의 건물로 구성된 장경판전은 건물의 앞뒤와 위아래에 있는 붙박이살 환기창이 중요하다. 내부로 들어온 공기가 아래위로 돌아나가도록 하고 동시에 공기 유입량과 유출량을 조절함으로써 적정 습도를 유지하도록 절묘하게 창의 크기를 모두 다르게 고안했다는 것. 책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관람 편의를 위해 중앙 통로를 설치한 수다라장의 경우 통로 벽이 통풍을 방해한 데다 온·습도를 변화시켜 보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동사간전 역시, 습기로부터 경판을 보호하기 위해 창밖에 설치한 비막이 판자가 오히려 통풍 장애만 유발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옥외나 다름없이 허술하게 보이는 환경이 대장경판을 7백년 이상 보존해온 비결임이 입증된 셈이었다."

a 750년 동안 보존돼 온 팔만대장경판. 책 속 사진 촬영.

750년 동안 보존돼 온 팔만대장경판. 책 속 사진 촬영. ⓒ 고래실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이 있는 해인사는 습도가 높은 지역이다. 목판의 경우 적정한 습도는 60~70% 정도로 너무 높으면 썩기 쉽고 너무 낮아도 뒤틀리는 특성이 있어 적정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해인사 주변의 습도는 인근지역에 비해 연중 6~10% 가량이 높다. 경판표면의 습도까지 쟀던 조사 결과를 보면 조상들의 슬기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평판 한 장당 하루에 최고 60까지 습도량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판고 전체에 하루 5톤가량의 물이 경판에 뿌려졌다가 마르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작용은 한 여름철 수분증발 때 열을 빼앗는 온도조절기능까지 해 곰팡이나 썩음, 균 등의 서식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판고 전체의 온도를 잰 결과 1.5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아 최신 건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결이라는 것이 조사팀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005년부터 총 10회에 걸쳐 '고미술의 과학'이라는 주제로 열었던 특별강좌의 결과물을 묶은 이 책은 석굴암과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청동기, 직지, 음력, 전통 배(선박), 목재문화재, 전통한지, 얼음골, 금속공예 등 9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현직 교수 9명이 과학을 통해 들려주는 문화유산 이야기는 흥미롭다. 때로는 전문과학용어가 등장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그 정도는 문화유산을 새롭게 안다는 마음가짐이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음력의 우수성을 논하며 문화유산에 담긴 전통 과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당부한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글을 음미해 본다.

"'과학기술'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서양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과학기술이 바로 17세기 이래 서양에서 크게 발달했고, 전 세계가 철저하게 '서양'의 과학기술을 배우고 발전시키려 애를 써왔기 때문이다.(중략)

서양 중심의 과학사 인식은 결국 '합리적인 서양'과 '비합리적인 동양'이라는 왜곡된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과학과 기술'을 우리 자신의 생활을 근거로 주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수용의 대상으로만 여기게끔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전통과학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스스로 자신의 과학적 전통을 바르게 인식해야 '과학'을 인간 활동의 한 구성 부분이자 산물로써 주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나아가 '서구화'라는 추종의 길을 벗어나 우리 삶의 필요와 목적에 걸 맞는 과학기술 문명을 발달시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인 구분과 대립을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올바른 자긍심의 회복에 초석이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국립문화재연구소 엮음 / 고래실 / 259쪽 / 15,000원

덧붙이는 글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국립문화재연구소 엮음 / 고래실 / 259쪽 / 15,000원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국립문화재연구소 엮음,
고래실, 2007


#문화유산 #석굴암 #팔만대장경 #장경판전 #세계문화유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4. 4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5. 5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