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년 동안 보존돼 온 팔만대장경판. 책 속 사진 촬영. 고래실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이 있는 해인사는 습도가 높은 지역이다. 목판의 경우 적정한 습도는 60~70% 정도로 너무 높으면 썩기 쉽고 너무 낮아도 뒤틀리는 특성이 있어 적정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해인사 주변의 습도는 인근지역에 비해 연중 6~10% 가량이 높다. 경판표면의 습도까지 쟀던 조사 결과를 보면 조상들의 슬기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평판 한 장당 하루에 최고 60까지 습도량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판고 전체에 하루 5톤가량의 물이 경판에 뿌려졌다가 마르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작용은 한 여름철 수분증발 때 열을 빼앗는 온도조절기능까지 해 곰팡이나 썩음, 균 등의 서식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판고 전체의 온도를 잰 결과 1.5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아 최신 건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결이라는 것이 조사팀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005년부터 총 10회에 걸쳐 '고미술의 과학'이라는 주제로 열었던 특별강좌의 결과물을 묶은 이 책은 석굴암과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청동기, 직지, 음력, 전통 배(선박), 목재문화재, 전통한지, 얼음골, 금속공예 등 9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현직 교수 9명이 과학을 통해 들려주는 문화유산 이야기는 흥미롭다. 때로는 전문과학용어가 등장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그 정도는 문화유산을 새롭게 안다는 마음가짐이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음력의 우수성을 논하며 문화유산에 담긴 전통 과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당부한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글을 음미해 본다.
"'과학기술'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서양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과학기술이 바로 17세기 이래 서양에서 크게 발달했고, 전 세계가 철저하게 '서양'의 과학기술을 배우고 발전시키려 애를 써왔기 때문이다.(중략)
서양 중심의 과학사 인식은 결국 '합리적인 서양'과 '비합리적인 동양'이라는 왜곡된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과학과 기술'을 우리 자신의 생활을 근거로 주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수용의 대상으로만 여기게끔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전통과학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스스로 자신의 과학적 전통을 바르게 인식해야 '과학'을 인간 활동의 한 구성 부분이자 산물로써 주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나아가 '서구화'라는 추종의 길을 벗어나 우리 삶의 필요와 목적에 걸 맞는 과학기술 문명을 발달시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인 구분과 대립을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올바른 자긍심의 회복에 초석이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국립문화재연구소 엮음 / 고래실 / 259쪽 / 15,000원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국립문화재연구소 엮음,
고래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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