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그림 걸어두면 부귀영화 찾아온대

서도대전 가서 붓글씨는 안 보고 엉뚱한 이야기만 나눴네요

등록 2007.08.08 14:22수정 2007.08.0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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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예술의 전당에서는 '대한민국서도대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대한민국서도대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 이승숙

며칠 전에 아는 동생이랑 예술의 전당에 갔다.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명 명화들이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러 간 것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밀레'의 '만종'을 비롯해서 고흐, 고갱, 세잔, 드가 등 쟁쟁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먼저 보고 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들인 비용에 비해 얻는 게 아주 많은 전시회라고 했다. 보고 나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전시회라며 강력하게 추천하는 거였다.

밀레의 만종을 만나러 예술의 전당에 가다

시골에서 살지만 예술의 전당에 와본 적은 몇 번 있다. 알고 지내는 분 중에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분이 계셔서 그 분 덕분에 좋은 공연들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대낮에 예술의 전당에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였다.

예술의 전당은 여러 개의 큰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에 있는 건물이 오페라 하우스였다. 정문에서 봐서 왼쪽 건물이 바로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전시회를 하는 '한가람 미술관'이다.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디자인 하우스'인데 그 곳에서도 여러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 뒤편에는 시원한 분수가 있었다. 그 분수는 음악에 맞춰서 물줄기를 쏘는 '음악분수'였다. 천상의 소리처럼 들려오는 음악을 따라 물줄기가 가늘게 또는 힘차게 쏘아 올려졌다.


a 관람객들은 묵향에 흠뻑 취해서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관람객들은 묵향에 흠뻑 취해서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 이승숙

분수 옆에도 건물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건물 벽에 커다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살펴보니 '대한민국서도대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서도가 뭐지? 서예를 말하는 걸까?"
"그러게 말이에요. 붓글씨가 예(藝)가 아니고 도(道)인가 보지요. 하기사 먹을 갈고 글을 쓰다보면 도를 닦는 것 같을 거예요."


한때는 먹을 갈고 붓을 잡았던 적도 있지만

서예인지 서도인지도 잘 모르면서 우리는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다. 서도대전이 열리고 있는 곳은 이층이었다. 올라가면서 보니 축하 화분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너른 전시장에는 관람객이 별로 없었다. 서예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배움의 기회일텐데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건지 관람객이 없었다.

붓글씨라면 나도 배운 적이 있다. 배웠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나도 한 때 먹을 갈고 붓을 잡은 적이 있었다.

강화로 이사 오니 시간이 참 많았다. 그래서 이웃의 엄마들과 함께 붓글씨를 배우러 다녔다. 우리를 가르쳐 주신 분은 서울에서 이사 온 분이었는데 서울 살 때 서예학원을 운영하신 분이었다. 그 분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붓글씨를 배웠다.

처음에는 붓을 잡는 법부터 배웠다. 그 다음에 먹을 가는 법을 배웠다. 그 분 말씀에 의하면 붓글씨는 먹을 가는 그 순간부터 글쓰기가 시작된다고 하였다. 먹을 갈면 마음도 고요해지고 정화가 된다고 하였다.

a 붓글씨는 예(藝)이자 도(道)입니다.

붓글씨는 예(藝)이자 도(道)입니다. ⓒ 이승숙

사람들은 각자 생김새가 달라서 그런지 좋아하는 글씨체도 다 달랐다. 어떤 사람은 한글 궁체를 배우겠다 했고 또 누구는 해서를 배우고 싶어 했다. 나는 전서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전서를 배웠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글씨를 썼지만 나중엔 제법 봐줄만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대로 계속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일 년을 조금 지나서 붓을 놓고 말았다. 이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인네들 처소엔 모란 그림을

시골집을 사서 이사하고 보니 붓글씨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먹 갈고 앉아있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강화읍에 살 때는 일이 별로 많지 않았지만 시골집을 사서 이사하고 보니 전신에 다 일거리였다. 집안일도 많았지만 텃밭 일에다 꽃밭 만드는 거에다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차츰차츰 멀리하다가 영 손을 놓게 되고 만 것이다.

전시회장을 둘러보니 작품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모든 전시실의 벽에는 작품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대한민국서도대전에서 상을 탄 작품들을 비롯해서 출품작 모두를 전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니, 하나도 모르겠어요. 한문 모르고는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그러게, 나도 하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림이라 생각하고 보자. 그런데 저 글씨 좀 색다르지? 꼭 그림 같지 않아? "
"저런 글씨체는 처음 보는데 꼭 뭘 흉내를 낸 거 같네요. 저 글자는 아닐 불(不)자네요. 저거는 내 천(川)자고."
"그렇지? 사물의 있는 모양새를 그대로 흉내 낸 거 같지? 저 글씨체를 전서라고 해. 전서는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흉내 낸 글자체야. 전서 말고도 해서, 예서, 초서 등 여러 글자체가 있어."

a 한자급수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초등학생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자를 많이 아네요.

한자급수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초등학생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자를 많이 아네요. ⓒ 이승숙

우리는 떠듬떠듬 글을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뜻풀이는 고사하고 다 읽어낼 수도 없었다. 한문 공부를 좀 해둘 걸 하는 후회가 다 들었다.

"그런데 언니, 여기 그림들 있잖아요. 어떤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난 저 난(蘭) 그림이 마음에 드는데..."
"나는 그림보다는 글씨가 더 좋네. 그런데 저기 모란 그림 있잖아. 사군자도 아닌데 왜 모란 그림이 있는지 알아?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뜻한대. 그래서 여인네들의 처소에 모란 그림을 둔대. 집안에 부귀영화가 찾아오라고 말야."
"아, 그러고 보니 안방에 있는 병풍에 모란 그림이 있던 거 같네요. 우리 집 거실에는 호랑이 그림이 있었는데 난 그 그림이 이상하게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치워 버렸는데 모란 그림을 하나 사서 걸어 둬야겠어요."

등용문을 위해서 잉어 그림을

동생은 밤중에 일어나서 거실에 나왔다가 호랑이 그림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호랑이가 산을 보고 올라가는 게 맞는지 아니면 내려오는 게 맞는지 물었다. 올라가는 것도 맞을 거 같고 내려오는 것도 맞을 거 같았다. 그래도 호랑이 그림보다는 모란 그림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림보다는 수 놓은 게 더 마음에 들더라. 모란을 수놓아서 안방에 걸어두면 얼마나 예쁘겠어? 자기는 차분해서 수를 잘 놓을 거 같은데, 동양 자수 한 번 배워 봐라. 십자수보다 동양자수가 훨씬 더 좋지 않아?"
"자수요? 그런 거 가르쳐 주는 곳이 있을까요? 십자수는 많던데 동양자수는 없더라."

a 여인네들의 처소에는 모란 그림을 두면 좋대.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대.

여인네들의 처소에는 모란 그림을 두면 좋대.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대. ⓒ 이승숙

"그러고 보니 전에는 집집마다 자수 놓은 거 다 있었잖아요. 우리 엄마들이 시집올 때 해왔던 베갯닛에도 수가 놓여져 있었잖아요. 지금 같으면 그 가치를 알아줄 텐데 예전에는 잘 몰라서 다 없애 버렸으니... 우리 시어머니도 예저녁에 다 버렸대요. 낡아졌기에 다 불태워 버렸대요. 그 말 듣고 얼마나 아까웠는지 몰라요."
"그런데 언니, 딸들 위해서는 모란 그림 사준다 치고 그렇다면 아들 위해서는 무슨 그림이 좋아요?"

아들만 둘을 둔 동생은 그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잉어를 그린 그림들을 더러 볼 수 있는데, 잉어는 사내아이의 입신과 출세를 뜻한다고 하더라. 왜 '등용문'이란 고사성어도 있잖아. 중국 황하강 상류에 '용문'이란 곳이 있는데 그 곳은 물살이 아주 거세고 험한 곳이래. 잉어가 용문을 거슬러 올라가면 용이 된대. 그래서 '등용문'이란 고사성어가 나온 거야. 잉어는 아마도 사내아이의 기상을 뜻할 거야."

나는 대충 이런 이야기를 주섬주섬 해주었다. 내 말을 수굿하게 듣고 있던 동생이 그러는 거였다.

"언니, 오늘 서울 온 거 벌써 본전 다 뽑았어요. 나 정말 자수 배워야겠어요. 모란 수놓아서 방에 걸어둘래요."
#모란 #서도 #등용문 #예술의 전당 #붓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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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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