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다

5일 동안의 연꽃 여행...서울과 그 인근의 연꽃 단지

등록 2007.07.31 11:44수정 2007.07.31 16:05
0
원고료로 응원
5일 동안 연꽃만 찍으러 다녔다. 모두 서울이나 그 인근의 가까운 곳들이었다. 물론 연꽃만 찍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행의 기본축을 이룬 것은 연꽃이 있는 곳이었다. 연꽃 여행의 이틀째 길을 나설 때, 난 궁금했다. 과연 다 같은 연꽃인데 오늘 가는 곳의 연꽃이 다를까.

셋째날부터는 난 연꽃은 가는 곳마다 다 다르니까 오늘은 어떤 연꽃을 만나게 될지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세상살이가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서 사람 만나는 일에 염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만남을 기대하게 만들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의 연꽃 여행은 그 길을 나서고 돌아올 때마다 그런 느낌이었다.


김동원
7월 25일 첫째날은 양수리의 세미원을 찾았다. 마음 먹었던 길이 아니라 아내가 기분도 바꾸어 볼겸 나가자고 해 따라나선 길이었다. 차를 갖고 갔다. 겨울에 한번 들른 적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하라고 하면서도 그냥 들여보내 준다. 이번에도 그랬다. 들어갈 때 이름적고 들어가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

연꽃 말고도 많은 수생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바람쐬러 나가듯 나간 이때의 걸음이 연꽃 여행의 시작이 되었다. 연꽃은 그 이름을 구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분홍색을 띄면 홍련이 되고, 흰색은 백련, 노란색이 완연하면 황련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 가까이서 고개만 물밖으로 내밀고 있다면 그 연은 수련이다. 수련은 그 종류와 이름이 다양하지만 모를 때는 수련이란 이름 하나로 뭉뚱그릴 수 있다.

김동원
색깔로 치면 역시 홍련의 색깔이 곱다. 분홍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색깔이지만 홍련은 그 색깔을 은은하게 가꾸어 낸다. 색깔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김동원
7월 26일 둘째날 간 곳은 시흥의 관곡지이다. 굽은다리역에서 지하철 5호선 타고 나가 동대문운동장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안산역까지 갔다. 안산역에선 시흥시청이란 문구를 보고 61번 버스를 탔다. 가다가 보니 버스 정류장에 연꽃마을 30-7번이란 글자가 보인다. 냉큼 내려서 버스를 바꿔탔다. 나중에 내려보니 처음에 탔던 61번이 바로 옆으로 지나간다. 참, 내 원.

관곡지 연꽃마을에서 가장 내 눈을 잡아끈 것은 역시 가시연. 꽃을 오므린 가시연이 마음을 옆으로 내놓고 있었지만 가시 때문에 그 마음을 가져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가시연은 잎을 함부로 만지면 가시에 찔리는 불상사를 당하며 그 가시는 생각보다 날카롭다. 꽃이 활짝핀 것을 찍으려면 오전 7시엔 도착해야 한다.


김동원
수련 가운데서 퀸오브시암(Queen of Siam). 수련은 영어로는 워터릴리(water lily), 즉 물에 핀 백합이란 뜻이다. 영어에선 그 이름을 물과 백합에게 빼앗긴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수련의 수는 일반적 예상과 달리 물수(水)가 아니라 졸거나 잠자다는 뜻의 수(睡)이다. 수면의 수가 바로 그에 해당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선 수련에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떠올린 셈이다. 이 수련은 그 중에서도 퀸오브시암이라 불린다. 시암은 태국의 옛이름이며, 따라서 이 꽃의 이름은 태국 여왕이다. 이름만 짚어보아도 재미가 있다.


김동원
노란색의 황련은 이곳에서 처음 보았다. 사람들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노란 연도 다 있네라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올라올 때는 30-7번 버스를 무사히 탔지만 종점까지 걸어가서 탔더니 내가 걸어올라온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간다. 그냥 연꽃단지 근처의 아파트에서 기다리면 되었을 것을.

김동원
7월 27일 셋째날, 광릉에서 조금 더 가면 나오는 봉선사를 찾았다. 역시 지하철 5호선 타고 나가 군자역에서 7호선으로 바꾸어 타고, 도봉산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 뒤 의정부역에서 내렸다. 21번 버스타는 곳을 찾아 한참 걸었다.

버스 종점은 광릉내. 거의 종점 다 가서 내렸다. 백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홍련과 달리 백련은 그 향기가 진하다. 홍련이 색깔을 가진 반면 백련은 향을 가진 셈이다. 백련은 그 꽃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김동원
연밭에선 연잎이 녹색의 어둠이 되어 준다. 꽃이 피면 그 어둠 속에 흰색 등에 여기저기 불이 들어온다. 바람이 불 때마다 깊고 푸른 녹색의 밤에 하얀 등불이 일렁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의정부역 앞에서 2500원짜리 해장국으로 저녁 떼웠다. 2500원짜리 식사가 다 있다니.

김동원
7월 28일, 넷째날은 좀 멀리갔다. 바로 강화의 선원사지 연꽃단지. 오늘도 역시 지하철 타고 나갔다. 왕십리역에서 2호선 바꿔타고 신촌에서 내려 강화가는 버스를 탔다. 거금 3400원 썼다. 지금까지 지하철과 시내버스로만 돌아다녀서 한번에 내는 차비가 2000원을 넘긴 적이 없었다.

강화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물으니 대문리로 가라고 했다. 버스 시간은 1시간 뒤였다. 그냥 대충의 방향을 어림잡고 논둑길을 따라 걸었다. 가다가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께 물으니 방향을 짚어준다.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갈 뻔 했다. 그렇게 가다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으면 사진찍다를 반복하며 걸어서 그곳까지 갔다.

도착하니 홍련 300송이가 나를 반겨준다. 잎을 하나 펼 때마다 빛이 점점 더 조도를 높이며 피어날 것 같은 느낌이다. 난 연꽃을 찍을 때면 꽃을 중심으로 조금씩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꽃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한 순간, 꽃이 내게 보여주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반짝거리며 내 눈에 잡힌다.

나는 때로 그 자리에서 몸을 낮추거나 세우기도 한다. 난 어느 각도에서나 아름다운 꽃은 별로 보질 못했다. 눈앞에 두고도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찾을 수 있는 게 꽃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돌아올 때 버스 시간을 물으니 토요일이라 7시가 넘어야 있다고 한다. 두 시간이나 남았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름길이 있을 것 같아 길가에 앉아있던 동네 사람에게 물었다.

"저기 교회 뒤에 산길이 있는데 그 길로 넘어가서 다리를 건넌 뒤 쭉 가면 된다."

간단명료한 설명이었지만 나는 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했으면 전혀 몰랐을 그 낭만적인 비밀의 길을 따라 버스 정류장까지 갈 수 있었다. 신촌에서 내리니 그곳에도 2500원짜리 해장국이 있었다. 그것으로 저녁 해결했다.

김동원
7월 29일 다섯째날, 비가 심하게 왔다. 오늘은 아무래도 집에 있어야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점심 때쯤 비가 그쳤다. 멀리가긴 좀 어려울 것 같았다. 서울의 봉원사로 가기로 했다. 5호선 타고 나가 을지로3가역에서 3호선으로 바꿔타고 독립문역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7024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봉원사가 종점이었다.

절로 향하는 길은 산중턱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런 곳에 무슨 연꽃단지가 있을까 싶었다. 그곳은 연꽃단지가 아니라 커다란 고무 대야에 연꽃을 가꾸어 놓고 있었다. 매년 배치를 바꾼다고 한다.

잎을 약간 벌린 연꽃 하나가 나를 맞아준다. 잎을 오므리고 있으면 빛이 은은히 새어나오는 느낌인데 잎을 약간 벌리고 있으니 속의 빛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하긴 사랑도 말 안 하고 속에 담아두고 있을 때 더 그윽할 때가 있긴 있다.

김동원
꽃의 속은 이렇다. 연은 연밥을 가운데 두고 꽃술이 분수처럼 솟고 있으며, 가장 바깥에선 연잎이 흰빛이나 분홍빛의 소매를 펼쳐들고 있다. 절에서 내려와선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가서 그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닷새 동안의 연꽃 여행은 내게 많은 연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갈 때마다 연꽃과 삶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었다. 그 대화는 가는 곳마다 달랐다. 봉원사나 관곡지나 모두 같은 연꽃이 피어 있는 게 아니라 봉원사엔 봉원사의 연꽃이, 관곡지엔 관곡지의 연꽃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연꽃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3. 3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