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점 부자? 괴물같은 한강 르네상스"

[현장] 강제철거 앞둔 매점 상인들, 생계 대책 없어 발 '동동'

등록 2007.08.01 12:30수정 2007.08.0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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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명훈, 이순애, 박명식씨. 3명 모두 지난 1989년부터 18년간 한강 간이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토박이다. ⓒ 손기영


영화 <괴물>을 통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진 한강매점이 내년 초가 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7월 3일 발표한 '한강 르네상스' 계획에 매점 철거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추진되면 서울 용산과 여의도 지역 한강변에 '서해~한강' 뱃길을 잇는 국제 여객·화물 터미널이 설치된다. 그리고 이들 두 지역을 포함, 마곡지구와 상암·난지지구, 잠실 등 한강변 8개 지역이 물을 활용한 '수변도시'로 개발된다.

또한 서울시는 내년 1~2월달까지 기존 한강 매점을 없애고, 입찰경쟁을 통해 새로 디자인한 매점을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 한강시민공원에는 간이매점(87개)·보훈매점( 15개)·스낵카(10개) 등 총 112개의 매점이 있는데, 이것을 20여개의 통합형 매점으로 줄인다는 게 골자다. 한강매점 상인들은 올 12월까지 가게를 비워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 매점 상인들이 철거 이후 별다른 생계대책이 없다는 점. 그러나 서울시는 "18년 동안 이 곳에서 장사를 해온 상인들이기에 이미 수익보전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별다른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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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시민공원 여의도 지구에 있는 이순애씨의 간이매점. 이 곳에서 주변매점 상인들과 함께 한강 르네상스 계획에 따른 간이매점 철거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손기영

"매점 부자? 한철 장사에 1년씩 '교대운영'인데"

"보상대책 있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죠. 앞으로 먹고살 일이 걱정일 뿐입니다. 시에서 철거한다는 얘기만 있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건지 알려진 것이 없어서 답답합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30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 한편 조그만 간이매점에서 주변 상인 3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셋 중 처음 말문을 연 이순애(66)씨는 서울시가 아무 대책 없이 상인들을 내쫓으려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특히 이씨는 지체장애 3급으로 몸이 불편해 매점운영 이외에는 별다른 생계수단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자궁질환까지 앓고 있어 간이매점을 하면서 번 돈 대부분을 병원치료비로 사용하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뚝섬 근처에서 포장마차 장사를 했던 그는 이미 한번의 강제철거 경험이 있다.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포장마차가 강제철거당한 것.

이씨 가게 옆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박명식(60)씨는 18년 동안 잠실·뚝섬 등 여러 곳에서 장사한 토박이다. 박씨도 이씨처럼 지병이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장사하는데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 아니다. 상인들이 '매점 부자'라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을 듣고 그는 손사래를 쳤다.

"간이 매점하면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다 죽이려고 '매점 부자'라는 말을 퍼뜨리는 겁니다. 부자 몇 사람 있겠지만, 대부분 자기 집도 없이 사는 영세민이죠. 한강매점은 한철 장사라서 대목이 아닐 때는 수입이 거의 없습니다. 보통 10월에서 다음해 3월까지는 날씨가 추워 사람들이 한강에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가게를 열어봤자 돈을 못 벌죠. 장마철에도 비가 많이 내리면 침수가 되어 장사를 할 수 없습니다."

옆에 있던 이순애씨는 "한강 간이 매점을 운영하면서 가게 임대료와 각종 세금을 내고 나면 장사하고 남는 것이 거의 없다"고 거들었다.

"1년에 보통 가게 임대료로 100만원 정도를 내고 하천 점용료로 30만원을 냅니다. 그리고 전기사용료·규격봉투 구입비까지 포함하면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죠. 장사도 한철인데…. 2000년부터는 한강상점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시행돼서 2개의 상점을 1개로 축소시켰습니다. 대신 1년씩 교대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죠. 일이 없는 1년은 수입도 없고,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신세입니다."

올림픽에 쫓겨난 사람들, 이번엔 또 어디로...

대화가 계속되면서 말을 아끼고 있던 최명훈(64)씨도 말문을 열었다. 최씨는 "서울시가 89년 매점입찰 당시 약속했던 말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강 간이매점 철거계획이 철저한 각본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의심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저희들은 법에 대해 잘 모르고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입니다. 서울시에서 이점을 이용하는 것 같아요.

한강 간이매점 상인들은 지난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한강주변과 석촌호수 주변에서 포장마차 등 노점상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 노점을 강제로 철거하는 대신 사람들에게 한강 간이매점 운영권을 줬죠. 저도 당시 뚝섬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은 이 곳 상점의 운영을 영구히 보전해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문서로 이것을 받아 놓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말이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거든요. 모두 거짓말입니다."

최씨의 억울한 심경 토로는 계속됐다.

"작년 여름 장마철 한강이 범람해서 간이매점을 강둑 위로 옮긴 적이 있었습니다. 물이 빠지고 다시 간이매점을 지게차로 옮기려 하자 갑자기 서울시 한강관리소에서 제지했습니다. 그리고 장사를 할 수 없게 전기를 끊어버렸죠. 하루 벌어 살기 바쁜 저희들은 생계가 급했습니다. 그런 저희에게 한강관리소는 '화해각서'를 쓰게 했습니다. 2007년 12월까지 간이매점을 비워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에 서명했습니다. 하루라도 더 벌겠다는 상인들의 약점을 이용한 거 아닙니까?"

당시 서명한 화해각서는 법적효력이 없다. 하지만 그에 준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매점 상인들은 "최근 서울시 한강사업소가 화해각서가 법적효력을 갖는 공증에 서명해달라는 독촉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운영팀 박정우씨는 "화해각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이어 그는 내년 1~2월까지 매점을 철거(매점상인들은 올 12월까지 철수)하겠다는 내용은 '조례안'으로 이미 2005년 시의회에서 통과된 사안"이라며 "앞으로의 철거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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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여의도지구 주변에는 간이매점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순애씨는 "목에 따라서 장사가 잘되는 곳, 그렇지 않은 곳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말했다. ⓒ 손기영

"갈 곳 없는 영세민 쫓는게 르네상스냐"

매점 상인 박명식씨는 올 12월까지 가게를 비워달라고 해 하루하루가 힘겹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손쓸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신세 한탄도 이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저희들을 쫓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 이 공증에 서명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소송을 걸고 싶어도 돈이 없고, 한강상인연합회 역시 법인화가 안 돼서 그렇게 하기 힘듭니다.

오세훈 시장이 '한강 르네상스'를 하겠다고 하는데…. 그 뜻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갈 곳 없는 영세상인들 내쫓는 것도 르네상스인지 여쭙고 싶네요. 다 잘 사는 사람 위한 일이겠죠."

'한강 르네상스'에 밀린 간이매점 상인들은 2~3년만 유예기간을 더 주면 생계를 위해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에게 당장 다가올 12월은 생계를 끊는 '칼날'이다.

대화가 끝날 무렵, 이씨가 눈물을 글썽이는가 싶더니 한없이 울기 시작했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해서 눈물이 난다"며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급기야 그는 편지지를 꺼내들었다. "당장이라도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이씨의 행동에는 갈 곳 없어진 영세상인들의 절박함이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이씨 옆자리에 앉았던 또 다른 상인 최명훈씨는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간이매점의 조그만 창문 사이로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 최씨가 보였다. 그의 눈길은 수십년 생계를 이어왔던 한강에 닿아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손기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손기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한강매점 #한강시민공원 #한강르네상스 #오세훈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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