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설교 제목, 화려한 휴가?

'더아모의집' 시골 아이들 함께한 천안 나들이

등록 2007.08.01 14:02수정 2007.08.0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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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우리 영화 보러 가요."
"언제 갈까."
"내일 일요일에요."
"그래 그럼 뭘 보러 가지?"
"그건…."


a 지금은 천안에 있는 영화 개봉관에서 안성 촌 아이들이 예배를 준비 중이다.

지금은 천안에 있는 영화 개봉관에서 안성 촌 아이들이 예배를 준비 중이다. ⓒ 송상호

이런 이야기가 '더아모의집' 아이들과 함께 막 캠프(2박 3일간 부산나들이)에서 돌아온 날 나왔다. 하여튼 노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더아모의집' 아이들이다. 사실 나도 보고 싶은 영화가 있던 터라 영화 보는 날을 일요일(7월 29일)로 잡는다. 그러니까 아이들과 내가 짝짜꿍이 맞은 셈이다.

바로 그 영화가 '화려한 휴가'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 전부터 개봉하면 아이들과 한 번 가볼 거라 벼르던 영화다.

"어허 내일이 일요일이니 영화관에서 예배를 하겠구먼."
"그러게요. 목사님."

아이들도 영화관 예배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예배실은 영화관, 설교자는 영화 스크린, 헌금은 관람료, 성찬식은 가져간 영화관용 간식, 설교 제목은 '화려한 휴가'. 뭐 이런 셈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니 아이들도 재미있다며 웃어댄다.

일요일, 아이들과 함께 천안으로 떠났다. 안성에는 영화관이 없기 때문이다. 졸지에 안성 촌놈들이 천안으로 영화 원정을 떠나는 꼴이다. 아이들 중에는 영화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제목조차 모르지만 함께 영화 보러 간다는 그 사실 자체가 마음 설레게 하는 모양이다.


a 영화관 앞에 나와서 영화 포스터를 겨우 찾아 사진을 찍었다.

영화관 앞에 나와서 영화 포스터를 겨우 찾아 사진을 찍었다. ⓒ 강명희

영화는 예고대로 명작이다. 아이들도 영화를 보고 나서 수차례 울었다며 받았던 감동을 말한다. 나도 뒤질세라 많이 울었다고 말하니 '누가 눈물 많이 흘렸는지'를 시합하는 듯한 분위기가 잠시 연출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80년 광주의 아픔을 아이들과 함께 진하게 겪은 것이다. 어떤 설교보다도 감동적이고 역사적이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아이들에게 묻는다.


"분식점에 가서 떡볶이랑 김밥 먹을래? 아니면 패스트푸드 가게에 가서 '햄버거' 먹을래?"
"햄버거요. 햄버거."

한 아이가 김밥을 선택했다가 졸지에 왕따 당할 뻔한 이 광경은 아이들이 얼마나 햄버거를 좋아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평소 패스트푸드점을 구경조차 잘 하기 힘들던 시골 아이들로선 횡재한 기분이 든다. 그래 기분이다. 아이들과 함께 햄버거 한 번 먹어보자. 햄버거를 먹고 나오면서 음식점 앞에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아이들이 한마디 한다.

a 한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를 먹고 난 후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으니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기도 한다.

한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를 먹고 난 후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으니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기도 한다. ⓒ 강명희

"목사님, 다른 사람들이 자꾸 쳐다봐요."
"아이, 쪽 팔리게…. 빨리 찍어요."
"야, 어쨌든 너희들이나 나나 촌놈들 아니냐. 허허허허…."

이렇게 안성 촌놈들의 촌티 나는 행각이 끝나고 다다른 곳은 시골 마을 느티나무 그늘이다. 의자가 있는 곳에 모여 우리는 조금 전 보았던 영화를 놓고 소감과 의견을 나눈다. 아무래도 역사적 이해나 전반적 정황 설명은 나의 몫이다. 아이들은 직관적인 느낌과 당돌한(?) 의견을 쏟아냈다.

a 시골 마을 입구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벌어진 '영화 감상 나누기' 시간에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다.

시골 마을 입구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벌어진 '영화 감상 나누기' 시간에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다. ⓒ 강명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들의 결론은 '이미 일어난 역사적 일'을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과연 그 일은 누가 책임지는가. 현재 29만원 재산으로 잘 사는 그 할아버지가 책임을 지고 있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 중 몇 명은 괜히 분개하기도 한다.

더불어 내가 학창시절 시위대에 참가해서 전투경찰에게 두 번씩이나 잡힐 뻔한 이야기(관련기사☞ 전경에게 두 번이나 잡힐 뻔하다)를 들려주니 눈이 동그래진다. 방금 전 본 영화와 연결이 되어 아이들의 귀가 두 배로 커진다.

이렇게 우리는 '화려한 휴가' 예배에 묻혀 감동과 사색으로 하루를 보냈다.

덧붙이는 글 |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더아모의집 #설교 #화려한 휴가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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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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