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예기치않은 곳에서 시작된다

[일본 소설 맛보기 3] 미야베 미유키 <누군가>

등록 2007.08.02 09:53수정 2007.08.0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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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겉그림.
<누군가> 겉그림.북스피어
누군가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봉인되어버린 유년시절의 기억을 추적해가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누군가>는 알 수 없는 그 '누구'의 얼굴과 함께 가는 작품이다.

사건의 시작은 자전거 사고로 목숨을 잃은 '가지타'씨의 두딸, 사토미와 리코가 아버지의 전기를 내기위해 나(스기무라)를 만나는 것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출발한다. 가지타는 그룹 '아마다 콘체른' 회장의 주말운전기사였고 '나'는 아마다 콘체른 홍보부 직원이자 회장의 사위되는 인물이다. 장인인 회장의 부탁에 따라 '나'는 가지타씨의 전기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평소 성실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가지타를 기억하고 있던 '나', 스기무라는 큰딸 사토미의 이야기를 듣고난 뒤 그의 인생에서 그림자처럼 드리워져있는 어둠을 알게 된다. 사토미가 네 살 무렵에 일어났던 유괴, 누군가의 협박, 가지타의 갑작스런 사퇴, 이사, 곤궁한 생활 등의 이유로 사토미는 자신의 아버지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을 꺼려하게 된다.

스기무라는 사토미의 유괴가 가지타의 죽음과 분명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지타에게 원한이 있는 누군가가 분명 어린 사토미를 유괴했으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자전거로 그를 죽인 것이라 생각한다.

독자들 역시 스기무라의 관점과 시선을 따라 그 '누군가'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추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자전거 사고였을까, 치정에 얽힌 사건일까. 사토미의 유괴가 있은 뒤 왜 가지타는 황급히 직장을 그만 두어야했을까. 독자들의 관심은 자연, 사토미의 유괴사건에 온통 쏠리게 된다. 가지타의 죽음에 연루된 유일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 그 이상의 작품

그러나 사건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다. 지은이는 독자들의 눈과 귀를 사토미의 지난시절의 한 사건으로 유인한 뒤 생각지 않던 곳에서 불쑥 나타난다. 마치 초등학교 소풍갔을 때 남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엉뚱한 곳에서 보물을 찾은 친구를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곳이 어디인지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밝힐 순 없다. 그러나 아주 가까운 곳, 그러기에 누구나 너무 소홀히 하게 되는 곳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 치고는 약간 독특하다. 추리소설인 듯 하면서도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아마 주인공 스기무라가 전문 형사가 아니라 한 그룹의 홍보부 직원이라는 점도 그런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스기무라는 굉장히 가정적이며 성실하고 선량한 시민이다. 평생 경찰서나 법원같은 곳은 한 번도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전형적인 평범한 시민이다.

그러나 그러한 스기무라의 캐릭터는 이 소설의 성격을 지배하는 중요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스기무라는 재벌 그룹의 딸과 결혼했지만 출세 따위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는 인물이다. 어린 딸 모코코에게 잠자리에 들 때마다 <호호아줌마>책을 읽어주며 딸의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출근하기도 하고,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점을 예약할 줄도 아는 그런 인물로 그려져 있다. 가족을 사랑하고 일상을 사랑하는 그런 스기무라가 바라보는 세상은 참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추리소설에 곧잘 등장하는, 예의 날카로우며 이지적이고 동물적 감각을 지닌 프로 형사가 아닌 스기무라는 인간적인 따뜻한 시선으로 사토미를 이해하게 된다. 사토미가 유괴 당했을 때의 나이와 현재 자신의 딸 나이를 견주며 사토미의 아픔과 고통을 절감한다.

사건의 시작은 가지타의 죽음에 관련된 범인을 찾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가지타의 죽음은 사건이 촉발하게 된 하나의 동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입히는 그 '누군가'가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인 경우를 더러 겪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다른 이들에게 혹여 상처를 주는 그 '누군가'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 '누군가'는 절대 멀리 있지 않다. 대부분 가까운 사람이다. 대부분이 아마 그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누군가/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도서출판 북스피어/9,800

덧붙이는 글 누군가/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도서출판 북스피어/9,800

누군가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북스피어, 2015


#누군가 #미야베 미유키 #권일영 #북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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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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