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 고치려다 파김치 됐네

[소비자 고발] 낯두꺼운 A/S기사와의 진실게임 18일

등록 2007.08.02 10:47수정 2007.08.0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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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된 우리집 김치냉장고. 이것 때문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 조광선

"아휴~ 또 큰 돈 들어가게 생겼어!"

지난 6월 18일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아내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왜?"
"지난번 2만8000원 주고 수리한 김치냉장고 있잖아, 이번엔 모터를 갈아야 한다네."
"모터를? 얼마나 드는데?"
"13만원."

요즘 우리집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데 13만원 거금은 아내가 투덜거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쩌겠나. 우리집 김치냉장고도 이제 6년이 다 되어가니 갈 때도 되었겠다 싶었다.

"할 수 없지, 갈아야지 뭐 별 수 있어?"

다음날 아내가 애프터서비스(A/S) 업체에 전화를 하니 A/S 기사가 자재 주문을 해서 빠르면 당일도 수리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주부들은 냉장고, 특히 김치냉장고를 하루 가동 안 하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나 요즘처럼 더운 여름엔 더더욱 그렇다. 아내는 김치냉장고에 있던 김치를 꺼내 냉장고에 이리저리 쑤셔넣고, 그것도 모자라 옆집 김치냉장고 남는 공간을 빌려 넣었다. 그리고 빨리 A/S 기사가 와서 김치냉장고 수리하기를 학수고대했다.

김치냉장고 수리하는데 웬 중고 모터?

그런데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가도 A/S 기사는 연락이 없었다. 아내가 연락이 없어 전화를 하니 그날 저녁때 온다고 했다. 마침 내가 그날은 현지에서 퇴근해 일찍 집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내가 집에 도착해 전화하니 A/S 기사가 잠시 후에 온다고 했다.

잠시 후 A/S 기사가 도착했다. 김치냉장고 뒤를 뜯고 있었다. 평소 '안기부'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사전 확인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A/S 기사가 교체하려고 가져온 모터를 가까이 가서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모터는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중고처럼 보였다. 또 모터를 만져보니 모터가 방금 가동되고 있던 것처럼 뜨거웠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중고모터로 갈아주시는 겁니까?" 했더니 A/S기사는 "아뇨, 왜요?"라고 대답하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봤다. 나는 "그래요?"라고 대답하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명 중고 같은데 이걸 어쩐다" 하고 있는데 A/S 기사는 괘념치 않고 모터를 벌써 갈아 끼우고 있었다. 나는 "아니겠지! 설마 중고를? 아냐! 아닐 거야!"라며 애써 의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수리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모터와 동파이프 연결 부분을 강한 불로 때워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그런데 수리를 마치고 나서 냉장상태를 확인하던 A/S 기사는 "모터가 약해서 냉기가 적어 성에가 덜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 계속 켜두시고 내일 제가 최종 확인해 봐야 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새 모터'를 신청해서 다시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생각을 접었던 중고 모터 의심이 되살아났다.

시치미 뚝! A/S 기사와 벌인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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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 뒷부분 모터에 붙어 있는 바코드 스티커. 이 바코드 스티커로 인해 결국 진실한 답변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 조광선

A/S 기사가 돌아가고 난 지 3시간 만에 결국 성에는 녹아버렸고 냉기는 없어졌다. 다시 고장 상태로 냉장고가 아닌 온장고가 되어버렸다. 나는 만일을 위해서 문제의 모터를 일렬번호가 새겨져 있는 바코드부분 위주로 사진을 찍어 놓았다.

4일 후 또다시 모터를 교체하기 위해서 A/S 기사가 도착했다. 나는 모터부터 확인했다. 이번 것은 얼핏 봐도 새 것 같아 보였다. 잠시 후 붙어 있던 작동불능의 원인이었던 모터를 뜯어내자 A/S 기사가 가져온 새 모터와 확연히 구분이 되었다. 중고모터로 의심이 가는 모터는 한 눈에 보기에도 인쇄상태, 라벨상태가 오래된 것 같아 보였다.

나는 A/S 기사에게 "지난번 가져오신 것이 중고모터가 맞네요"하자 "아이참~ 무슨 말씀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하며 작업을 계속했다.

작업이 끝난 후 나는 A/S 기사와 함께 같이 짐을 들어주며 A/S 기사가 타고 온 차량이 주차돼 있는 아파트 주차장으로 갔다. A/S 기사에게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집에서 물어보면 집사람과 아이들이 있는 상태에서 진실한 답을 받아내기는 어렵거니와 분위기가 너무 싸늘할까 염려해서였다.

둘만의 진실게임이 시작됐다.

"지난번 모터 중고 맞죠?"
"아닙니다."
"육안으로 봐도 확연히 중고임이 확인이 되는데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솔직히 말씀하세요."
"뭘 솔직히 말씀을 하라고 하시는 건지…."
"정말, 새 모터가 맞단 말씀이세요? 그럼 제가 혹시 애먼 사람 의심할 수도 있으니 본사에 전화해 딱 한 가지만 확인해 볼게요, 그러면 기사님이 거짓말하시는지 내가 의심하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뭘 확인해 보시려고요?"
"모터 바코드 숫자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럼 출고일을 알 수 있겠죠?"

"예 그렇게 하세요" 하고는 A/S 기사는 떠났다.

A/S 기사의 고해성사, 그러나

그런데 이날도 결국 수리한 지 몇 시간 후 냉장 냉기가 떨어졌다. 다음날 나는 출근해서 회의를 마치고 W사 D브랜드 김치냉장고 홈페이지를 뒤적이며 고객상담실 전화번호를 찾고 있었다. 그 때 전화가 걸려왔다.

"저~ 어제 수리한 A/S 기사입니다."

집으로 전화해서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 예~ 웬일이세요?"
"양해를 좀 구할 것이 있어서요."
"양해요?"
"사실은 그 모터 동료 기사에게서 받은 거였는데 동료에게 확인을 해보니 쓰던 중고라고 하더라구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뻔한 사실을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나는 일단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고해성사를 받은 신부님의 기분이 이런 심정일까?

'고객을 속인 A/S 기사의 고백' 이를 어찌할까?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가 집에 가서 집사람과 상의했다. 우리가 가만 있으면 또 다른 고객이 이런 똑같은 피해를 볼 것이고, 이 일을 알리면 젊은 사람의 앞길이 우리의 말 한 마디로 꺾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건 또 아니고. 그러다 일단 수리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고 그 이후에 판단하자고 했다.

그 일이 있은 이틀 후 A/S 기사는 방문해서 재수리를 했으나 역시 냉장이 안됐다. "드라이아이스를 갈아보자"고도 했고 "이번에도 안되면 가져가서 고쳐와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또 이틀 후 이번에는 팀장과 함께 방문해 재수리했으나 역시 냉장이 안 됐다. 결국 사흘 후 팀장이 와서 수리센터로 김치냉장고를 수리하러 가져가는 중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아내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노이로제에 걸렸어, 미칠 것 같아"고 했다. 이제 냉·온을 반복하던 김치냉장고 속에 있던 김치는 김치찌개나 해야 할 만큼 쉬어 꼬부라져 버렸다.

6번만에 수리 완료... 다시 뒤바뀐 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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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재수리, 또 재수리를 반복하며 쉬어 꼬부라진 김치. ⓒ 조광선

나흘 후 작업이 완료되었다며 김치냉장고를 가져왔다. 냉장은 잘됐다. 아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정말 다 끝났나? 아내와 나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설마? 모터는 그 모터(새 모터) 그대로 있는 거겠지?"라고 말했다. 아내의 그 말 한마디에 나도 갑자기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늘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내 성미에 아내 말을 들은 이상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사를 풀어 김치냉장고 뒤를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모터를 자세히 보니 내가 보았던 새 모터 상태가 아니었고 게다가 바코드 스티커 한쪽에 손으로 뜯은 자국이 있었다.

끝 부분을 잡고 바코드스티커를 떼어 내니 접착 면에 더러운 지문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야~ 이 사람들 봐라!" 나는 정말 기가 막혔다. 지난번 새것을 또 중고로 바꿔놓고 내가 바코드사진을 찍어놨다고 하니 발각될까봐 스티커만 교체해 놓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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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수리 후에야 제대로 된 김치냉장고 기능이 살아났다. 안쪽 벽면에 성에가 올라와 냉기가 차있다. ⓒ 조광선

이렇게 된 이상, 더 망설일 것은 없었다. 한번 기회를 주었음에도 그걸 악용하는 정말 나쁜 A/S를 혼내주기로 했다. 나는 A/S 시작부터 끝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낱낱이 적고 특히 모터를 2번씩이나 바꿔치기한 내용을 M사 W브랜드 김치냉장고 홈페이지 고객불편란에 접수했다.

다음날 담당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고객담당관리자를 댁으로 파견해 확인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다음날인 지난 7월 10일 퇴근시간에 맞춰 고객담당관리자를 집으로 오도록 해서 만났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희가 무조건 잘못 했습니다, A/S기사들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고 하는데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했고 "해당 서비스센터는 경고조치하고 벌점을 부여하겠습니다"라고도 했다.

나는 그동안 일들을 부연설명하고 현재 부착되어 있는 문제의 모터를 중고인지 확인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그 관리담당자는 뒤를 뜯어 보더니 "중고인 것도 같고 새것인 것도 같습니다"라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내가 "그걸 정확히 알았으면 합니다"라고 하자 "이제 이상이 없으시니까 이 정도에서 그냥 쓰시는 것이 좋지 않나 싶습니다. 저걸 또 A/S 기사에게 추궁하고 한다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저희 잘못을 알았으니 다음에 만약 고장이 나면 무상으로 다 수리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수리비 돌려 받긴 했지만...

1시간 정도 그 고객담당관리자와 이야기하고 나서 그는 수리비 전액을 현찰로 그 자리에서 환불해 줬다. 그리고 이상이 있으면 자기 전화로 언제든지 전화하면 즉시 수리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집을 떠났다.

아내와 나는 씁쓸했다. 수리비는 전액 환불받았지만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불편함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확인해서 결국 그런 나쁜 A/S를 바로잡았지만 다른 고객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속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MBC '양희은 강석우의 여성시대'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MBC '양희은 강석우의 여성시대'에도 송고했습니다.
#김치냉장고 #A/S #애프터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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