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은 왜 삿갓 쓰고 방랑했을까?

등록 2007.08.02 16:34수정 2007.08.0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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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묘(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 ⓒ 이완구

방랑시인 김삿갓. 그의 본명은 김병연(1807~1863)이다.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 해이다.

김삿갓은 왜 삿갓을 쓰고 방랑하며 일생을 보냈을까?

김병연은 조선후기에 잘 나가던 안동김씨 후손으로 유복하게 자란다. 그의 나이 6살 되던 해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당시 할아버지인 김익순은 선천의 부사라는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홍경래 무리에 항복하여 치욕을 당하였다.

홍경래의 난이 평정되자 국가는 김병연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을 항복에 대한 죄를 물어 처형하고, 할머니는 관비로 축출하였으며, 아버지는 남해로 귀향을 보냈다. 김병연은 형과 함께 노복의 등에 업혀 황해도 곡산으로, 모친은 동생과 함께 경기도 이천으로 피신하는 등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시간이 흘러 김익순의 죄가 멸족에서 폐족으로 감형됨에 따라 김병연의 가족들은 다시 모였으나, 분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화병으로 죽고 그는 어머니인 함평이씨 손에 이끌려 강원도 영월로 들어가 살게 된다.

이런 가족사를 모르고 자란 김병연은 그의 나이 20세가 되던 해에 관에서 실시한 백일장에서 아래의 시제가 나오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목숨을 걸고 싸우다 죽은 가산의 군수를 예찬하고 선천의 부사였던 자신의 할아버지를 강하게 비판한 글을 작성하여 장원에 오른다.

論鄭嘉山忠節死 논정가산충절사 (정가산의 충절한 죽음을 칭송하고)
嘆金益淳罪通于天 탄김익순죄통우천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통함을 탄한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임을 듣고는 크게 자책하게 된다. 이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벼슬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지만, 곧 포기하고 24세가 되던 해에 가족들을 버리고 방랑을 시작한다.

푸른 하늘을 보기 부끄러운 죄인이라는 생각에 갓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방랑 생활이 시작됐고, 그의 별명이 방랑시인 김삿갓 혹은 김립이 된 것이다.

그의 시들 중, 한자의 뜻과 음을 이용하여 창작한 시들은 지금도 잘 알려져 있다. 김삿갓이 지었다는 시 몇 개를 소개한다.

書堂乃早知 서당내조지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방안에 모두 귀한 분들이네)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생도는 열 명도 못되고)
先生乃不謁 선생내불알 (선생은 내다보지도 않는구나)


김삿갓이 방랑 중에 서당에서 신세를 지려 했으나, 무시당한 것에 화가나 지어낸 시다. 시에서 쓰인 한자의 의미로도 하나의 시가 완성되지만, 음으로 읽어보면 엄청난 수준(?)의 욕설 시가 된다.

天長去無執 천장거무집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花老蝶不來 화로접불래 (꽃은 시들어 나비가 오지 않네)
菊樹寒沙發 국수한사발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枝影半從池 지영반종지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江亭貧士過 강정빈사과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다가)
大醉伏松下 대취복송하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月利山影改 월이산영개 (달이 기울어 산 그림자 바뀌고)
通市求利來 통시구이래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 오네)


천장에 거미(무)집 / 화로에 겻(접)불 내
국수 한 사발 / 지렁(간장) 반 종지
강정 빈 사과 / 대추 복숭아
월리(워리) 사냥개 / 통시(변소) 구린내

이 시도 음으로 읽으면 시골의 가난한 한 집안 풍경이 떠오르는 시로 바뀐다.

披坐老人不似人 피좌로인불사인 (저기 앉은 저 노인네 사람 같지 아니하고)
疑是天上降神仙 의시천상강신선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인가 하노라)
膝下七子皆爲盜 슬하칠자개위도 (슬하에 일곱 자식이 모두 도둑놈인 것이)
偸得天桃獻壽宴 투득천도헌수연 (하늘에서 복숭아를 훔쳐다가 잔치를 빛내누나)


김삿갓의 순간적인 재치와 사람들을 다루는 모습은 천재적이었다. 환갑 집을 지나던 김삿갓의 첫번째 시 구절에 모두들 화를 내고 욕을 하며 얼굴을 찌푸렸다가, 두번째 구절에 모두 탄복하며 밝은 얼굴로 변하고, 세번째 구절에 모두 다시 긴장하였다가 마지막 구절을 마치자 모두가 탄복했다고 한다.

김삿갓은 강원도, 함경도, 제주도 등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시를 지었고, 전남 화순군 동복면에서 생을 마쳤다. 후에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강원도 영월에 안장하였다.

그는 평생의 방랑생활을 행복했다고 생각했을까, 불행했다고 생각했을까?
#김삿갓 #김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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