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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휴가 포스터 사진 ⓒ 노기세나
화려한 휴가
-노기세나
이십칠년 전 오월 열여드렛날,
아, 빛고을 광주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동생을 태우고 성당으로 갔다가
신애 씨를 보고, 신애 씨를 보고,
수줍은 맘을 감추지 못해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 택시 기사 형이 있었다.
모처럼 날을 잡은 성당 야유회 날,
성당 누나, 신애 누나 대신에
자전거 뒷자리에 몰래 몸을 실어 형을 골려주는 그런 동생이 있었다.
그렇게 순박한 형제가 살았고,
그들 곁에는 마음씨가 비단결인 신애 씨가 살았고,
택시 기사 아저씨와
마음씨 넉넉한 사장님이 살았다.
비록 택시를 타고 가다 시비를 벌이긴 해도
그렇게 순박하기만 사람들이
순박한 웃음 지으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로펠러 비행기가 공수특전사 대원들을 가득 태우고
북이 아닌 남으로 남으로 날아만 갔다.
그리고, 트럭이, 탱크가 그곳으로 그곳으로
진격을 한다.
빨갱이 잡으러, 폭도를 잡으러 간다.
간다. 간다.
십팔 년 유신의 독재가 총탄에 쓰러지고,
이제는 사람 사는 세상이 왔다고 좋아할 새도 없이
박통이 키워 논 하나회가 총으로 탱크로
박통을 흉내내고 흉내내어 푸른 기와집에 들기 위해
그 순박한 고을을,
그 순하디 순한 빛고을 광주를
온통 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한 송이 국화꽃이 되어 책상 위에 놓일 때
친구들은 더 이상 교실에, 더 이상 학교에 머물을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거리로, 그렇게 시민들이 모였다. 하나둘 하나둘 그렇게 모였다.
그들이 폭도란다.
그들이 어찌 폭도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 폭도란다.
그렇게 그렇게 숨죽이며 칠년을 기다렸다.
죽은 아들이 폭도란 누명을 쓰고
그 때 나가 소식조차 없는 남편이, 딸년이
생사조차 모른 채 지나온 세월이 칠년이다.
자그마치 칠년 동안,
광주는 입이 있어도 말 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 있어도 대한민국이 아닌
그런 땅이었다.
지금은,
지금은 달라졌는가.
27년이 지난 오늘
29만 원으로
해마다 해외골프를 치러 다니고,
그 아들은 결혼 축의금으로 수백억을 만드는 세상.
광주는 지금도 울고 있는가.
울고 있는 것인가.
27년이 지난 지금도 울고 있는 것인가.
<이천칠년 칠월 마지막 날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와서 행신동에서 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싸이 '2학년5반 최고'(http://www.cyworld.com/hg205) 게시판--'화려한 휴가'란 제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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