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사 탑에서 발견된 불상, 단아한 상호가 돋보인다조명자
부처님 손가락 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지하궁전 입구로 갔다. 보탑 아래로 연결된 지하통로를 들어가는 문이 조그맣게 지어져 있다. 좁은 통로를 통과하는 문이 모두 4개. 출입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가 작은 문에 아주 섬세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드디어 불지사리함 앞에 섰다. 서로 가까이 가려고 몸싸움을 하는 관광객 틈으로 나도 재빨리 끼어들었다. 어두컴컴한 조명에 금빛으로 빛나는 사리함. 8중 사림함 속에 봉안된 부처님 손가락 뼈가 모두 4개였다는데 내 눈 앞에 있는 자그마한 금탑 속에 모셔진 불지사리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우리 일행이 한 줄을 차지했다. 순서대로 시주를 하고 삼배를 했다. 지도법사께서 가져오신 소형 망원경이 큰 역할을 했다. 마음은 급한데 초점은 안 맞고. 난리를 쳐가며 돌려봤더니 얼추 보인다. 약간 상아빛이 도는 원통형 막대 같다고나 할까? 얼핏 보면 아이들 과자 모양과 비슷했다.
법문사 불지사리를 참배한 뒤 그 유명한 구양순체(해서)의 필체가 조각되어 있는 구성궁 답사를 위해 버스에 올랐다. 구성궁은 법문사에서 2시간 반이 소요되는 궁벽한 외지에 있는 곳이란다.
구성궁을 찾아가는 길은 험했다. 도심에서 벗어나 산골로 산골로… 온통 높고 낮은 산등성이와 계단식 밭이 흩어져 있는 그런 길. 흡사 강원도 산골 어드메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계단식 밭에는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밀 추수가 끝나면 바로 옥수수를 심는다더니 역시나 메마른 황토가 풀풀 날리는 계단식 밭에 옥수수 모종들이 자라고 있었다. 옥수수 밭에선 밀레의 만종에서 나오는 부부처럼 고개를 숙인 남녀 농부가 호미처럼 생기긴 했는데 흡사 곡괭이처럼 길게 생긴 연장을 들고 톡톡 치며 옥수수 모종 사이 흙을 깨주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넓은 옥수수밭에 풀 한 포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 넓은 밭고랑을 무슨 수로 풀 한 포기 없게 만들었을까? 중국서도 제초제를 쓰는 걸까? 날이면 날마다 풀과의 전쟁을 치르는 우리나라 농부들을 생각하자니 비법이라도 있으면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정말로 옆구리가 결릴 만큼 시간이 흘러서야 구성궁에 도착했다. 얼마나 오지에 있었던지 가이드가 몇 번씩 뛰어나가 길을 물어 볼 만큼 외진 곳이었다. 버스에 내려 여기가 구성궁이라고 하는데 모두 기함을 했다.
우리는 '궁'이라고 하기에 거대한 궁궐을 생각했는데 인가도 별로 없는 촌구석에 마치 사당처럼 생긴 아주 작은 기와집이 구성궁이라는 것이다. 이곳이 바로 당 태종이 피서를 즐겼다던 그 궁궐 맞나?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동네 주민들도 신기하긴 마찬가진가 보았다.
우리 버스를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 뭐라 그러는데 아마도 저 사람들이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고, 설왕설래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버스를 내리는데 마침 관리인인 듯싶은 사람이 구성궁 대문을 잠그고 퇴근을 하려는 참이었다.
가이드가 중국어로 설명을 하니까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가 반갑게 웃으며 대문을 다시 연다. 한문과 서예에 능통하신 우리 법사님. 해서의 대가라는 구양순의 '구성궁 예천명' 비를 직접 볼 수 있다는 환희심에 붕 떠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해서, 행서, 초서 그리고 추사체까지. 듣긴 많이 들었지만 그 글씨체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수시로 헷갈리는 우리 같은 무식쟁이에겐 이 비석 하나 보자고 그 머나먼 길을 달려 온 것이 도무지 황당하기만 했다.
하여튼 전각 안에 모셔진 '구성궁 예천명' 비 앞에 섰다. 까만 돌에 새겨진 평범한 비석, 우리가 보기엔 여태껏 본 비석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서체를 제법 아는 서예가라면 평생 여기 한번 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산시성 린유현에 있는 구성궁은 원래 수나라 인수궁 터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 태종 이세민이 이 궁을 '구성궁'으로 고치고 여름 별궁으로 사용했는데 구성궁에서 솟아나온 샘물이 어찌나 달고 맛있었던지 태종은 이 샘물 맛을 찬하라는 명을 내린다.
당 태종의 명을 받들어 <구성궁예천문>이 지어졌는데 시문은 시중으로 있던 '위징'이 짓고 글씨는 구양순이 썼다고 한다. 맛좋은 샘물을 찬하면서 태종의 덕치를 찬양한 24행 50자의 시문. 비석 속에 음각된 구양순체는 힘이 있으면서도 단정한 선비의 기개가 느껴지는 듯 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6월 2일부터 10일까지 15년째 이어지는 '불교 공부' 모임에서 서안 답사를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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