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오늘 새벽, 믿기 힘든 최악의 뉴스를 전해 듣고 피부가 얼어붙는 듯했다. 한국인 인질에 대한 추가 살해는 한국 정부의 협상 실패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사태를 어디서부터 이해하고 살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할 것 같다. 그래서 난 올해 3월 이란에 의해 영국 해군 '15명'이 이란-이라크 접경 해상에서 납포되었던 사건을 떠 올렸다.
이번 한국인 피랍처럼 대규모 인원이 납치된 사건이 드물 뿐 아니라, 이들의 무사 생환을 위해 국민들과 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서다. 물론 이번 사건과 당시 영국-이란 간의 긴장을 단순 비교하기란 무리가 따르지만, 적어도 참고할 만한 교훈은 있다고 본다.
당시 블레어 총리와 영국 국민들은 "납치 사건으로 흥정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신호를 이란측에 정확하게 전달했다. 덕분에 당시에는 영국과 이란 간의 긴장이 장기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교섭도 없이 이란이 영국 병사들을 2주 만에 전원 석방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아쉬운 부분은 바로 이점이다. 이번 한국인 피랍 사건 직후 한국정부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하긴 했었다. 하지만 전략은 물론이고 위기시 대처할 메뉴얼조차 변변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가장 큰 실수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당시였다. 대통령은 국민들, 특히 피랍자 가족들의 강력한 비난을 예상하고서라도 당당하고 정확하게 '협상할 마음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했다.
그리고 협상의 전권을 아프간 정부나 적십자와 같은 제3의 당사자에게 일임했어야 했다. 비록 막후에서 협상을 지원하고 최대한 무사 귀환하도록 힘써야 하겠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강경한 메시지를 계속 줌으로써 탈레반이 한국 정부를 갖고 놀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했어야 했다.
현재 2명의 한국인 인질들이 희생되었다. 지금의 모습으로 정부가 계속 끌려 다닌다면 협상은 협상대로 실패할 것이고, 미국과의 관계도 묘한 기류가 흐를 것이 뻔하다. 오늘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는 이런 측면에서 최악의 외교적 실수를 거듭하는 형국이다.
인도주의를 위해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하라는 미국을 향한 메세시지와 한국인을 더 이상 살해하면 탈레반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란 모든 것을 구비한 백과사전식 발표였다. 정확한 한국 정부의 의도를 쉽게 가늠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더군다나 탈레반에겐 한국 정부의 유약함과 수세에 몰린 위치를 다시 한번 강조해 주는 바보 같은 발표였다.
오해 없길 바란다. 난 지난 며칠 간 비난 여론을 안타까워하면서, 피랍자들이 본받아야할 기독교인들이며 선량한 봉사자들임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누구보다 이들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젠 한국 정부가 소위 '독한' 마음으로 탈레반을 상대해야 할 마지막 타이밍에 서 있다고 본다.
"한국 인질을 2명이나 살해한 테러집단과 더 이상 협상은 없다"라며 협상 결렬을 속히 선언해야 한다. 적십자나 기독교 단체에 협상을 넘기고 이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체제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수세에 몰린 모습으로 탈레반을 상대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3월 27일 영국 병사 15명이 이라크-이란 접경 해역에서 납포되었을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이란을 향해 조속한 석방이 없을 땐 전혀 '다른 상황(Different Phase)'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영국 국민들은 더 강경한 조치를 주문하며 오히려 블레어를 비난했다.
위험성이 따르지만, 한국정부의 지금과 같이 산만하고 비효율적인 대응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에게 협력을 얻어내기도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한국은 지금 지난 수십년 국제 환경과 전혀 다른 세계를 접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이번 피랍과 같은 사고는 어디서 어떻게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속된 표현으로 안전을 지키고 안전한 곳만 여행한다고 피랍자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는 살벌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정부는 정교하고 구체적이면서도 확고한 원칙이 세워진 전략과 메뉴얼을 세심하게 준비해야만 한다. 국민 역시 포용심을 갖고 국제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대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번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교훈이자 숙제일지 모른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한국 정부는 이젠 마음을 독하게 먹을 때다. 'Korean Different Phase'를 보여 줄 때가 되었다.
[8월 5일 현재]
한국-탈레반 직접 협상 계획이 발표된 지 4일이 흘렀다. 아직 만났다는 어떤 보도도 나오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탈레반의 진짜 의도는 한국 정부를 이용해 무언가 다른 노림수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짧게나마 포스팅(7월 31일에 쓴 윗글)을 보강하는 글을 남긴다.
한국정부의 외교 관리들의 총체적 무능과 협상의 난맥상이 전면적으로 노출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방송과 언론들도 전문성과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점을 그대로 표출하는 놀라운(?) 형국이다.
한국 정부가 할 일은 아프간에 대표단을 파견해 탈레반 범죄집단을 알현(?)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관계가 틀어지지 않게 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미국을 직접 압박하는 외교적 기술을 총동원하는 것이 지금 한국 정부가 할 일이다. 총리가 미국으로 날라가야 한다. 부시를 만나건 체니를 만나야 한다.
외교장관이 워싱턴으로 당장 가서 라이스 국무장관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
왜 이런 과감한 일들을 머뭇거리는가? 무엇이 두려운가? 어차피 미국과의 동맹은 우리 국민을 보호하자는 최종의 목표에서 설정된 관계 아닌가? 지금 우리 국민 20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이 동맹을 어디다 쓸려고 이처럼 고이 모셔 꺼내 보지도 않는가?
국회는 뭐하는가?
대통합 신당을 만들었다는 국회의원 나리들은 무슨 생각들로 요즘 사시는가? 광주정신으로 논쟁을 일삼으려거든 광주 시민이 정작 무엇을 위해 목숨을 희생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무고하게 죽어가던 이웃을 위해 공분한 그분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기 바란다.
국회는 지금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이라크 철군"을 결의해서 미국을 압박하라!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는 지금 뭐하는가?
당신들은 이미지 쌓기를 중단하라! 당신들이 나서서 미국에 쓴소리하라. 그리고 당신들을 추종하는 충신 국회의원들을 독려해서 "이라크 철군"을 위협하는 결의를 국회에서 논의하도록 부추겨라.
미국이 한국민의 안전을 이처럼 외면하고서도 한국이 그들의 동맹으로 남기를 바란다면 미국도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외교적 역사적 쓴맛을 보고서도 미국의 외교 관료들은도 지금 자국의 단기적 이익만을 챙기기 급급한 모습이다.
한국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다. 첫째, 미국의 책임 있는 누군가(대통령이 되었든 간에)를 만난다. 둘째, 이라크 철병 카드를 사용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 관료들을 아프간에서 당장 철수하는 것이다.
한국은 조금 '심하게 말해서' 전통적 한국 감성으로 지금의 사태를 대하고 있다. "그들의 생사를 일단 확인하고 얼굴이라도 보아야 안심하겠다"는 그런 단순한 동기에서 지금 일이 추진되는 양상이다.
어떤 전략이 서 있지도 않을 뿐더러, 한국이 어떤 카드도 제시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무조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막연히 풀리리라는 희망으로 접근하고 있다. 폭탄을 들고 불에 띄어드는 양상이다.
국제 사회는 치열하게 전문화되고 변화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지도층은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기득권에 안주해서 국내 리그에 머물던 실력으로 협상하려 하니 꼬이기만 하는 것이다. 잘 알아두기 바란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요원들 중에는 미국의 예일과 하바드 출신들이 있다는 것을….
어쩌면 지금의 본질 중 하나는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지 모른다.
'Korean Different Phase 한국이 직면해야 할 전혀 다른 도전들'은 바로 미국과의 담판이다. 이라크 철군으로 압박하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본인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krakory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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