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두번 다친 불쌍한 내 다리

70일간 방콕하며

등록 2007.08.05 20:24수정 2007.08.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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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다리를 다쳤다.


4년 전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부상으로 거의 6개월 못 걷고 1년 이상 재활훈련을 하며 이제 겨우 일상으로 돌아 왔는데... 지난 5월말 왼쪽다리를 삐는 전치 3개월 사고를 당해(좌측하퇴부 플란타리스손상과 발목인대파열) 1개월간 깁스를 하고 아직도 첫 걸음마 떼는 아기처럼 조심스레 한발 한발을 디디며 느리게, 아주 느리게 살아가고 있다.

눈부시게 화창한 날씨에 녹음이 우거진 숲 속의 집(18년 동안 살고 있는 아파트 1층)에서 새하얗게 핀 다섯 송이 백합 향기가 마음을 어지럽히는데 TV(어린이프로까지 봄), 신문, 책, 인터넷 종일 뒤지고 있어도 하루가 얼마나 길고 수만 가지 갈등이 마음을 괴롭히던지...

34년차 전업주부로 열심히 살아온 난 남편이 차려주는 밥상을 4년 전엔 4개월가량, 이번엔 2개월 정도 서비스 받았다(33년동안 완전 서비스 해주고). 허나 이번엔 서로가 더 힘들었다. 처음이 아닌 데다 어쩌다 어쩔 수 없이 외출했을 때 목발 짚은 나를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또 다쳤어? 조심하지. 아저씨가 너무 안됐어"란다.

내 부주의로 다쳤으니 맞는 말이긴 한데 참담한 내겐 전혀 위로가 안 되는 소리였다. 다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주저앉아(목발운전이 중심을 못 잡아 오래 서 있질 못함)집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데...

혹자는 내가 너무 바쁘게 살아서 확실한 휴식을 준 거라고도 하고 상체보다 하체가 약해서 그렇다는 둥 의견이 분분했다. 어쩐지 이번엔 많이 창피스러웠다.


첫 번째 부상 때엔 아들의 제주도 파견동안 부모 초대하여 효도관광 시켜준다고 렌터카까지 빌려 우도의 검멀레동굴(제주동쪽의 큰섬으로 검은 모래동굴. 썰물 때 동굴음악회도 열리는 곳) 앞까지 갔다가 발이 미끄러져 바위틈에 끼는 바람에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었을 때 아버지와 아들은 울퉁불퉁한 화산석이 산재된 곳에서 머리 안 다친 게 어디냐며 따뜻하게 위로해줬다. 갑갑할 거라며 동해안 바닷가에 두 번씩이나 휠체어 싣고 데려가고... 모래사장에 목발을 짚으면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던지...

현장에서 끔찍한 상황을 보고 안 보고는 큰 차이가 나나보다. 올해는 휴일 고향친구들과 서울 중간 지점쯤 되는 충남 화양구곡에서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동창회 야유회에 갔다가 일어난 돌발적 사고였다.


서울 20명, 마산 27명(성호초등 104년 됨)이 이산가족 상봉하듯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반갑게 만나 잘 먹고 잘 놀고 돌아오기 직전 제기차기와 오재미차기로 게임하기로 했다. 오재미는 천으로 만든 작은 모래주머니로 어릴 적 오락기구 없을 당시 땅따먹기와 함께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였다.

의욕적인 선수 노릇하다가 계곡 모래사장에 발이 젖혀지며 뚜욱~하고 소리가 났고 다리가 뻣뻣해져 나무토막처럼 그대로 넘어가 주저앉아 버렸다. 이 나이에도 우리팀이 게임에 지는 게 싫어 부상당하는 순간에도 마지막 오재미를 차다니... 쯧쯧쯧

부상자는 단 한명. 바로 나였다. 그 날은 한여름처럼 너무 더웠고 며칠 동안을 나는 너무 피곤했었다. 온종일 남편은 집에서 기다렸는데 남녀 친구들과 하루종일 잘 놀고 밤늦게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난 나를 본 순둥이(?)남편의 그 망연자실한 표정을 어떻게 필설로 다 하랴.

내 다리는 주인 잘못 만나 일생에 한번 목발 짚기도 쉽지 않은데 두 번씩이나... 눈 앞이 캄캄하고 난감했다. 할일은 태산 같은데... 꼼짝없이 끼니까지 남편 수발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밥맛도 떨어지고, 잠도 안오고. 그래도 어쩌랴! 생으로 굶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하루에도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가 하기를 수십 번. 길고도 지리한 장마가 막 끝나고 후텁지근한 열대야가 시작되고 아직도 나는 걸음마 처음 내딛는 어린 아기처럼 작은 새처럼 가슴을 할딱이며 조심조심 한발씩 앞으로 나간다.

그런데 상당한 노하우가 생겨서 그런지 차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개발하니 집에서도 할일이 무척 많았다. 그래!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는 거야.

바쁘단 핑계로 오랫동안 정리 못했던 옷, 책 등 여러 가지를 정리 정돈하고 보고 싶었던 책도 많이 보았다. 무엇보다 주위의 작은 것들이 소중해 지고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부딪치는 것이 곧 삶이며 체험하지 않고는 결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오랜 시간의 사색으로도 간접 체험이란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없는 것이 삶엔 너무나 많다. 그것을 깨닫고 지혜롭게 풀어가며 사랑하고 더불어 사는 것이 삶인지도 몰라. 켜켜이 쌓이는 경험의 두께가 변산반도의 채석강처럼 아름답고 날카로운 모습의 바위층이 아닐지라도.

두 번의 부상에서 남편의 깊은 사랑과 인내가 새삼 돋보였다. 그렇다고 남편이 성인이 아닌 이상 늘 잘해 주지는 않았다. 이래저래 이번엔 구박을 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이 우리들 삶을 중간 평가하듯, 마음의 속과 겉을 신랄한 시험대에 올린 것 같았다.

두 번의 다리 부상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쓸데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에너지를 마구 쓰지 말 것이며 중요한 일부터 순서를 정해서 하고 나아가 기회가 닿으면 장애인에 대한 봉사로 연결하고 싶다는 거였다. 딸의 편지 구절처럼 "발조심"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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