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름다운 풍경보다 사람 만나는 체질

[자전거세계여행 쿠바 8편] 7월 7일~9일 쿠바의 끝을 향해서

등록 2007.08.06 12:13수정 2007.08.0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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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중국을 시작으로 인도·미국을 차례차례 자전거로 종단했던 박정규 기자가 2차 세계일주에 나섭니다. 6월 14일 체 게바라의 숨결이 살아있는 쿠바를 시작으로 2008년 12월까지 남미·북아프리카를 누빌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2007년 7월 7일 토요일. 맑고 더움

오전 8시 45분. 아바나를 떠나기 전에 인터넷을 사용하였던 '나시오날 데 쿠바 호텔(National de cuba Hotel)'에 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아무도 없다. 이곳에는 여분의 인터넷 선이 있어서 개인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다. 속도는 100mb라고 뜨는데, 그 정도 속도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리고 메일을 보내는 데는 지장이 없다.

정신없이 인터넷을 하다가 문득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몸을 떨면서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때가 다 되었다. 3시간 30분 정도 사용했는데 43CUC가 나왔다. 한화로 하면 약 4만3000원 정도 되는 셈이다. 아…. 슬프다. '시간은 돈이다' 라는 말이 피부에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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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 CON 이라는 빵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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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이 애용하는 간이 식당 ⓒ 박정규

내일은 일요일이라서 머무르고 있는 곳을 비워줘야 한다. 아직 출국일자도 여유가 있어서 쿠바의 끝인 '피나르 델 리오(PINAR DEL RIO)'에 다녀오기로 결심하고 카주마사와 다얀의 숙소로 갔다. 3주 만에 무사히 돌아온 걸 축하해주며 아주 반가워한다. 다얀은 내일 캐나다로 떠난다고 한다. 이곳 날씨가 너무 더워서 시원한 지역으로 여행하고 있다가 3주 후에 토론토에서 카주마사를 만나서 1주일간 더 여행하고 일본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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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피해서 밖에서 식사 중인 카주마사 이웃들 ⓒ 박정규

마지막 인사를 미리 하고 근처의 피자집에서 큰 맘먹고 제일 비싼 15페소짜리 피자를 주문했는데, 뒤돌아 보니 카주마사가 웃으며 서 있다. 피자가게 주인에게 판매가 끝난 제일 싼 8페소짜리를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약간의 애교를 부려보지만 주인은 웃기만 한다.

숙소로 걸어가는데 카주마사가 들고 있는 검은 봉지에 눈이 갔다.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빵이었다. 하나에 1페소라고……. 내가 방금 먹는 피자는 하나에 15페소짜리였는데……. 4개월 동안 얼마나 저렴하게 생활하며 공부했을지 대충 짐작이 갔고 갑자기 조금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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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점이 많았던 카주마사와 다얀과 함께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7월 7일

1. 이동경로
LA HABANA 체류

2. 사용경비: 1074PESO / 환율 1$=1CUC=24PESO
PAN CON 1개: 12PESO, ESCALOPE DE CERDO 1개: 10PESO,
음료수 1잔: 2PESO, 인터넷 3시간35분: 1032PESO,
Bocaditos 1개: 10PESO, Mamey 1잔: 3PESO, 특별피자 1판: 15PESO

3. 음식
아침: PAN CON ESCALOPE DE CERDO, 음료수
점심: Bocaditos 1개, Mamey 1잔
저녁: 특별피자 1판


2007년 7월 8일 일요일. 맑고 더움

예배가 끝나도록 장 목사님은 오지 않았고 예정대로 출발했다. 피나르 델 리오와 국제공항 갈림길 근처에 도착했을 때 뭔가 느낌이 이상해 뒷바퀴 쪽을 살펴보니 스포크 하나가 부러졌다. 다시 돌아가서 수리를 하기도 그렇고 그냥 베네수엘라에서 수리를 하기로 하고 부러진 부위를 간단하게 고정한 후에 다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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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벗어나는 길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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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스포크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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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수리한 모습 ⓒ 박정규

저녁 9시. 농부의 집. 20~30km 주기로 민가와 마을들이 있었지만 적당한 곳이 없었고 계속 달리다 보니 너무 많이 와 버렸다. 마침 수풀 사이로 불빛이 보이는 흙길을 따라 들어가니 집이 나왔고 개 3마리가 달려와 거칠게 짖어댄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레바란(Grebaran) 부부가 나왔다.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잘 만한 곳이 없단다. 매트리스를 두드리며 웃으면서 다시 이야기하자 난감해 하더니 앞쪽 건물로 안내해준다. 조명장치가 하나도 없는 컴컴한 창고 같은 건물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서 건물 처마 아래에 텐트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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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dan(자전거 이름)이 보이는 자리에 텐트를 설치했다. ⓒ 박정규

집 안으로 들어가 TV를 보고 있는데 릴리안(Lilian)아주머니가 밥은 먹었는지 물어본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니오'라고 하자 잠시 후 멕시코 요리의 일종인 타말(옥수수가루, 다진 고기, 고추로 만듦) 2개와 작은 닭 다리 하나를 접시에 담아 주셨다. 타말(Tamal)은 탄수화물 덩어리 같아 다 먹고 나니 밥 3공기를 먹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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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이 준비해준 타말과 닭고기 요리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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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바란 부부와 함께 ⓒ 박정규

희망질문을 하다가 볼펜 뚜껑이 돌 틈 사이로 빠져버렸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그레바란 아저씨가 헤드 랜턴이 틈 사이를 비추고 릴리안 아주머니가 팔길이만 한 꼬챙이로 10분 동안 노력한 끝에 뚜껑이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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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바란의 집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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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우리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7월 8일

1. 이동경로
LA HABANA - LA HABANA Lugar

2. 주행거리 50km / 6시간

3. 사용경비: 8페소 / 환율 1$=1CUC=24페소
바나나 4개: 3페소, PANCON QUESO 2개: 4페소, 음료수 1잔: 1페소

4. 음식
아침: PANCON QUESO 2개, 음료수 1잔
저녁: TAMAL 2개, 닭 다리 1개, 음료수 1잔
간식: 물 3리터


2007년 7월 9일 월요일. 맑고 더움

오전 6시 기상.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레바란 집 개 2마리가 텐트 5m 앞쪽에서 먼저 짖기 시작하면 20m 뒤 집의 개 2마리도 짖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텐트 친 건물 안쪽에서 개가 짖기 시작한다. 텐트가 눅눅해서 자꾸 몸을 뒤척일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5방향에서 개 소리가 끊임없이 날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레바란 집 개 2마리를 노려봤는데 처음 만난 사람처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길 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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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이어지는 길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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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는 광고 ⓒ 박정규

도로에서 길을 따라 100m 정도 들어가자 집이 보인다. 아주머니께 빈 물통을 드리자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서 채워주신다. 잠시 쉬어가자고 하니까 '물론'이라며 선풍기까지 틀어주셨다. Yoreden(13살) 남자아이와, Janelrey(6) 여자아이가 관심을 보인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30시간 정도 날아왔다고 하니까 깜짝 놀란다. 그리고 먹었던 음식들을 이야기해주었는데, 내가 스페인어로 말하는 것 자체가 신기한지 자꾸 웃는다. '망고'를 말한 뒤 잠시 후에 아주머니가 웃으며 진짜 '망고'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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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eden과 Janelrey와 함께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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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올라와 힘들어 하고 있는 필자. 마지막 목적지 Viranes에 도착! ⓒ 박정규

저녁9시. 민박집. 내리막을 신나게 내려와 동네에 도착해서 먼저 마주친 건 수많은 민박집과 레스토랑 안내표지판이었다. 한눈에 관광지란 걸 알 수 있었다. 숙박 문의가 어려울 것 같다. 무턱대고 넓은 밭이 보이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 안에도 역시 민박집이 있었다. 어느새 골목의 마지막 집 앞에 도착했는데 마침 아저씨가 집 앞에 나와있었다. 재워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수갑을 차는 듯한 몸짓을 하면서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대신 저렴한 숙소를 소개해준다고 앞장섰다. 주인이 15페소를 불렀는데 10페소로 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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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anes 풍경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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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안내 표지판 ⓒ 박정규

민박집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식사가 평균 7CUC다. 먹을 곳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큰 나무 아래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스페인에서 온 joxe 부부가 앉아있었다. 3주 동안의 휴가기간 동안 쿠바를 여행 중이다. 적은 경비로 여행하는 걸 듣고 감탄하면서 "brave heart"라고 몇 번이나 말해 주었다.

내년 3월에 스페인 마드리드에 간다고,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400km 정도 떨어진 도시에 있다고 했다. 기념촬영 후에 "스페인에서 만나요"라고 웃으면서 헤어졌다. 하하- 스페인에서 머무를 곳이 생긴 것 같다.

다얀이 Viranes가 쿠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는데 잘 모르겠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보다 Joxe 부부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좋았다. 역시 난 사람 만나는 여행이 체질에 맞나 보다. 관광지는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 같다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고 꺼내볼 수 있는 노을빛 바랜 사진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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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Joxe 부부와 함께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7월 9일

1. 이동경로
LA HABANA Lugar PINAR DEL RIO Vinales

2. 주행거리 150km / 10시간

3. 사용경비: 5페소 / 환율 1$=1CUC=24페소
도너츠 2개: 2페소, 음료수 1잔: 1페소, 아이스크림 1개: 1페소, 기타: 1페소

4. 음식
아침: 초코 우유 1잔, 비스킷 8개
점심: 도너츠 2개, 음료수 1잔
간식: 물 6리터, 망고 4개, 사탕수수음료 1잔

5. 신체상태
전체피로. 촬영하다가 체인에 다리를 긁혀 작은 상처가 났고, 왼쪽 코가 헐었다.


2007년 7월 9일 월요일. CUBA. PINAR DEL RIO Vinales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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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자전거여행 지도(사진을 클릭하시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자전거여행 #쿠바 #아바나 #피나르 델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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