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훼방꾼 폭우 "시원해서 좋잖아!"

[자전거세계여행 쿠바 7편] 7월 4일~6일 다시 돌아온 아바나

등록 2007.07.30 15:08수정 2008.07.3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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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4일 수요일. 맑고 더움

 

오전 7시 30분 기상. 밤새 멍멍이가 하도 낑낑거려서 잠을 설치고 새벽 무렵에는 닭, 소들도 무전을 하는지 번갈아 가면서 쉴 새 없이 울어댔다. 덕분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노엘이 준비해준 모닝커피와 빵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도 푸른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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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채소가게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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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를 굽는 오븐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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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도 그리기 나름이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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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오후4시 30분. 동네 현지인 집. 여대생으로 보이는 친구 2명, 아주머니 3명이 있는데 다들 170cm는 될 것 같다. 갑자기 내가 작아진 느낌이다. 산티아고에서 왔다니까 다들 놀란다. 아주머니 한 분이 뭐 좀 마시겠느냐고 물어본다. 대답은 언제나 '네!' 잠시 후 아주머니가 분홍색 액체가 가득 담긴 믹서기를 통째로 들고 나왔다. 컵에 가득 부어준다. 아! 맛있다. Mamey란 과일에 우유와 설탕을 섞어서 만든 음료라고 한다. 먹자마자 계속 주셔서 3잔이나 먹었다. 또 따라주려는 걸 배가 부르다고 웃으며 거절했다. 2번째 손녀 딸이 왔을 때 순간 눈을 뗄 수 없었고 그녀의 웃는 모습에 기분이 맑아졌다. 웃는 모습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더 있고 싶었지만 하늘의 먹구름이 발걸음을 재촉해서 다시 길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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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음료를 주신 아주머니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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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 ⓒ 박정규

한 차례 소나기를 뒤로하고 언덕 위의 집에서 손짓해서 가보니 물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잠자리를 원한다고 하니 잠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상의 후에 자고 가란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제법 덩치가 좋은 메리앙과 조금 마른 실리,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조금 거동이 불편하신 큰 소리로 이야기해야 알아들으시는 어르신이 계셨다. 식사는 어르신과 꼬마, 나, 실리, 메리앙 순으로 먹고 함께 TV를 봤다. 어느 집에서나 보던 브라질 인기드라마, 2007 Venezuela cup를 보는 동안 실리는 혼자서 자기 머리를 파마하고, 메리앙은 설거지를 하고, 할아버지는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TV 덕에 대화를 많이 못해서 아쉬웠지만 이런 풍경 속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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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은 도로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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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있는 메리앙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7월 4일

1. 이동경로

 

SANTA CLARA Santo Domingor·MATANXAS 30km 전

 

2. 주행거리 7시간 40분

 

3. 사용경비: 11페소 / 환율 1$=1CUC=24페소

아이스크림 2개: 2페소, 피자 1개: 5페소, 사탕수수 음료수 1잔: 1페소, 음료수 1잔: 1페소

 

4. 음식

아침: 구운 빵 8조각과 우유 1 잔

점심: 피자 1개, 아이스 크림 1개

저녁: 밥, 바나나 튀김, 콩 요리

 

간식: 물 4.5리터, 마매드3잔(마매드,우유,설탕), 과자1개, 오렌지1개, 망고1개

 

2007년 7월 5일 목요일. 맑고 더움. 저녁 폭우

 

오전 11시. MATANXAS. 하하! 드디어 도착했다. 쿠바 여행의 마지막 도시! 이 도시만 지나면 LA HABANA! 푸른 해안가와 접해있는 어디서나 수영을 하고 싶을 만큼 물이 깨끗하다. 그 넓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만큼 오르막을 올라온 후 조금 더 달리자 LA HABANA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점점 여행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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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MATANXAS 해변가에서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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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를 미끼로 낚시중.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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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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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로폼 뗏목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 ⓒ 박정규

1시간 가까이 능선 오르막, 내리막을 수 없이 반복하고 다리 밑을 지나는데 건너편 도로에 자전거 여행자 커플이 보인다. 순간 서로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고 내가 도로를 가로질러 다가갔다. 영국에서 온 클래드와 톰은 2주간의 휴가 동안 트리니다드까지 갈 예정이란다. 내 다리의 모기자국을 보고 깜짝 놀라며 어느 지역에서 그랬는지 물어봤고 아바나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거라며 격려를 해주었다. 쿠바 여행 거의 마지막 지점에서 처음으로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서 조금 아쉽지만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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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처음 만난 자전거 여행자 톰과 클래드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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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이 아름다운 바다 ⓒ 박정규

오후8시 농가. 폭우가 쏟아졌다. 피할 곳이 어디에도 없었기에 온몸으로 받아냈다. 마침 농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고 망설일 틈도 없이 핸들을 돌려 1km의 비탈길을 올라갔다. 갈색 반바지에 웃통을 벗고 있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호레가 집 앞에 나와있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웃으면서 인사하자 "시원하지 않나요?"라며 농담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오란다. 작은 컵에 무언가를 따라 주었는데 한 모금 마셨더니 속에서 불이 난다. 40도 정도 되는 독한 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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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레의 가족들과 함께 ⓒ 박정규

장남인 호레와 부모님이 이 집에 살고 있고 나머지 남동생 3명은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데 다 같이 농장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컬러TV, 고급카세트, 수세식 화장실, 밝은 조명에 전화까지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느껴지는 집이다. 개그 프로를 보고 있는데 쿠바 개그맨이 여장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른 코너에도 분장만 다르게 하고 계속 나왔다. 아마 가장 인기 있는 개그맨인가 보다. 오늘도 TV 덕분에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TV는 대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잠잘 시간이 되자 호레가 집 안은 더우니까 처마 아래서 텐트를 치고 자면 시원할 거라고 해서 처음으로 텐트를 설치했다. 비가 그쳐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만 '날 경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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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에서 텐트를 치고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7월 5일

1. 이동경로

MATANXAS 30km 전·LA HABANA China

 

2. 주행거리 100km / 7시간

 

3. 사용경비: 27.6페소 / 환율 1$=1CUC=24페소

Bocadito Jamon 2개: 15페소, 음료수 2잔:2, 망고주스 2잔: 4페소

Pan Queso 1개: 2페소, Pan Perro 1개: 3.6페소, 음료수 2잔: 2페소

 

4. 음식

아침: Bocadito Jamon 2개, 음료수 2잔

저녁: 삶은 감자와 밥 알이 있는 스프, 콩 밥, 바나나 튀김, 닭고기

간식: 물 3리터, 망고주스 2잔, 음료수 4잔, Pan Queso 1개: 2페소, Pan Perro 1개, 오렌지2개, 망고2개

 

5. 신체상태

전체 피로가 느껴지고 가려움이 많이 약해졌다.

 

2007년 7월6일 금요일. 맑고 더움

 

오전 10시 50분. LA HABANA 대학교 앞. 버스 타고 16시간 동안 갔던 거리를 3주 만에 돌아왔다. 쿠바인도 '덥다'고 인정할 만큼 무더운 날씨 속에서 여행하는 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가슴이 뜨거웠던 단 한 사람의 쿠바인과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음날 설렘과 기대로 달릴만한 힘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3주를 달려왔다…….여행의 의미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먼저 한국 교회를 찾기 위해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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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바구니가 돋보였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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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많이 이용하는 모터 달린 자전거. ⓒ 박정규

 

가톨릭교회에서 정보를 얻어서 25번 도로상에 있는 제법 큰 감리교회를 찾았다. 루벵이라는 직원이 한국사람이 3명 다닌다고 잠시만 기다리란다. 20~30분 후 예배가 끝났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고 출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한국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루벵이 갑자기 달려간다. 목사님께 간 줄 알았는데 잠시 후 빵과 음료수를 먹으면서 나타났다. 내가 이야기를 하자 그제야 목사님에게로 안내를 해준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인 나사로 목사님이 장 목사님은 얼마 전에 콜롬비아로 가셨고 내일 오실 예정이고, 김 목사님은 4월에 한국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몇 가지 더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데 스페인어 어휘력이 부족해서 나사로 목사님이 많이 답답해하시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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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광장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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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알고 보니 한국말이 가능한 현지인이었다. "원하는 게 뭐죠?" "한국교회를 찾고 있었는데, 여기에 한국인 목사님이 있다고 해서 한번 만나 뵙고 싶어서요." "여기에 한국교회 없습니다. 오늘 잠은 어디서 잘 겁니까? 아는 사람이 있나요?" "없어요." "다른 사람 바꿔 주세요." "네." 어느 여자분과 한국말 가능한 친구가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통화를 했다. "일단 점심은 교회에서 드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잘 수는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겁니까?" "네? 근처의 숙소를 찾아봐야죠……." 전화가 끊어지고 나사로 목사님과 교회 식당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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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만에 돌아온 아바나 대학교 앞 ⓒ 박정규

밥 먹는 도중에 영어를 하는 친구가 관심을 보였다. 여행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목사님과 이야기를 하더니 교회 안에 작은 교실이 있는데 거기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본다. "지붕만 있으면 괜찮아요." 다들 웃는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 목사님은 콜롬비아 교회에 계시는 분이고 한 번씩 이곳으로 오신다고 한다. 또한, 내일 이곳에 오더라도 호텔로 바로 갈 예정이고 일요일에 예배에 참석할지 다른 날에 올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

 

얼굴도 알 수 없는 장 목사님을 만나려면 그냥 여기에서 기다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출국일이 1주일 남았다. 그동안의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충분할 것 같다. 내일은 카주마사와 다이안을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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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HABANA 감리교회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7월 6일

1. 이동경로

LA HABANA China· CIUDAD DE LA HABANA

 

2. 주행거리

40km / 3시간

 

3. 사용경비: 205.6페소 / 환율 1$=1CUC=24페소

아이스크림 1개: 9.6페소, 음료수 2잔: 2페소, 치즈 빵 1개: 2페소, 인터넷45분: 192페소

 

4. 음식

아침: 계란프라이 들어간 빵 2개, 초코 우유 1잔

점심: 밥, 닭고기, 호박, 고구마 요리

간식: 물 1.5리터, 치즈 빵1개, 음료수 2잔

 

5. 신체상태

거의 가렵지 않다.

 

 

2007년 7월 6일 금요일. CUBA. LA HABANA에서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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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자전거여행 지도(사진을 클릭하시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7.07.30 15:08 ⓒ 2008 OhmyNews
#자전거여행 #쿠바 #아바나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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