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통 벗어던지고 한밤의 댄스파티

[자전거세계여행 쿠바 5편] 6월 28일~30일 쿠바인의 삶 속으로 ②

등록 2007.07.17 16:55수정 2007.07.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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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28일 목요일. 맑고 더움.

어촌 마을 호텔 직원이 가지 말라던 길로 접어들었다. 내가 정한 길이 비도 많이 오고 모기도 많다는 이유였다. 차도 많지 않고 길은 좋았다. 아무리 달려도 음식 파는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는 곳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오렌지를 큰 통에 담고 있었다. 몇 개 먹어보고 맛있으면 사려고 먹어 봐도 되느냐고 물어보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달콤하고 맛있다. 가격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그냥 챙겨준다. 다른 인부들도 합류해서 많이 챙겨가라고 너도나도 오렌지를 건네준다. 그냥 왼쪽 핸들가방만 가득 채운 채 인사를 하고 웃으면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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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시원하게 이어졌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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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밭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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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를 가득 안겨준 인부들. ⓒ 박정규

100km 정도 달리자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피자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나니 살 것만 같다. 중간에 우연히 만난 자전거 운전자가 물을 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것 같다.

조금 쉬다가 도시를 벗어날 무렵에 한 집에서 누가 큰 소리로 날 불렀다. 몸도 피곤해서 자연스럽게 핸들을 돌려서 사람들에게로 갔다. 프레드릭이란 친구가 시원한 빵과 물을 대접하면서 아주 반가워한다. 자신은 군대에서 태권도를 배워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소 젖 짜는 일을 한다고 한다. 피곤해서 그러는데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되느냐고 하자 흔쾌히 승낙했다.

함께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잠시 쉬는데 프레드릭이 카세트에 테이프를 넣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서 서서히 춤을 추기 시작했고 다른 어르신도 자연스럽게 리듬에 맞추어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나보다 20살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내게 춤을 신청하셨고 발을 밟아가면서 춤을 배웠다. 비슷한 춤을 4번 정도 추고 나서야 상대방의 발을 밟지 않고 춤을 출 수 있었다. 화려한 조명도 빵빵한 스피커도 없었지만 어느 클럽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열정으로 다들 땀을 흠뻑 흘려가면서 한밤의 댄스파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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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가족들과의 댄스파티.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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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가족들과의 댄스파티.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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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가족들과 함께.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6월 28일

1. 이동경로
CAMAGUEY Nuevita‐CAMAGUEY Emaralda

2. 주행거리103.6km / 7시간 10분

3. 사용경비: 3페소 / 환율 1$=1CUC=24페소
피자 1개: 3페소

4. 음식
아침: 계란 후라이 들어간 빵, 초코 우유
점심: 피자 1개, 아이스 크림 1개
저녁: 밥, 옥수수 요리, 고기
간식: 물 4.5리터, 오렌지 5개, 달콤한 거 들어간 빵 2개, 작은 바나나 4개


2007년 6월 29일 금요일. 맑고 더움. 저녁 비.

1시 30분. 민가에서 한 아저씨가 손짓을 한다. 부르면 가야 한다. 집 구경을 시켜주셨는데 뒷마당에 각종 토끼들과 새, 닭, 돼지까지 있다. 동물농장 같은 느낌이 드는 집이다. 집안 내부는 근사한 침대에, 벽에는 근사한 사진들과 정리정돈이 잘된 식기들까지 한데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이 든다.

코코넛이 먹고 싶으냐고 물어봐서 그냥 '네'라고 대답했는데 미리 따 놓은 코코넛을 큰 칼로 위쪽 부분을 잘라내서 빨대를 꽃아 주셨다. 다 먹고 나서 큰 칼로 쩍! 소리가 날만큼 세게 내리쳐서 동강 낸 걸 동물들에게 던져주자 다들 미친 듯이 달려든다. 코코넛 안에 하얀 속살이 있는데 그 부분이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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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토끼들이 있었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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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의 하얀 부분이 맛이 좋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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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 아저씨. ⓒ 박정규

18시 20분. 한 차례의 소나기가 지나갈 무렵에 한 자전거 탄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자기 집에서 물이나 한 잔 하고 가란다. 좋죠!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집에 도착했다. 아주머니는 왜 자전거를 타고 고생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다. 잠은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어서 일반인의 집의 문을 "똑! 똑!" 두드린 후 자기소개를 하고 재워달라고 한다고 말하자 오늘 자기 집에서 자고 가란다. 생각지도 않게 잠잘 곳이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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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가족들과 함께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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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딸과 함께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6월 29일

1. 이동경로
CAMAGUEY Emaralda‐CIEGO DE AVILA MORON

2. 주행거리
65km / 6시간

3. 사용경비: 22.55페소 / 환율 1$=1CUC=24페소
생선 튀김 들어간 빵 1개: 2.55페소

4. 음식
아침: 마요네즈 들어간 빵 2개, 초코 우유 1잔
점심: 오렌지 2개
저녁: 콩 요리와 밥, 바나나 튀김, 돼지고기
간식: 물4.5리터, 코코넛 1개, 바나나 2개

5. 신체상태
발바닥이 통증이 조금 느껴짐.


2007년 6월 30일 토요일. 맑고 더움. 저녁 비.

이상하다. 핸들 가방이 열려있다. 동영상 촬영용 카메라가 없다. 설마 하며 차근차근 찾아보니 카메라는 다른 주머니에 들어있었지만 mp3는 어디에도 없다. 분명히 어제 비 올 때 지갑에다 넣은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멀티 툴도 없다. 멀티 툴은 동물농장 그 집에 두고 온 것 같기도 한데 mp3는 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강도를 만나거나 확실하게 잃어버리는 편이 훨씬 좋은데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슬픈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숨겨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어떻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는지 뒤돌아 보자! 결심한 게 잊으니까 이만 한 일로 흔들릴 수는 없다. 아 자! 오늘 하늘은 어느 날 보다 푸르고 높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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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들.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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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접어드는 길. 푸른 하늘이 아름답다. ⓒ 박정규

16시 40분. 또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탈 길 아래 집이 보인다. 처마 밑에서 그냥 서성이고 있는데 젊은 청년이 집 안으로 들어오란다. 집안에 남자 한 명이 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있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집을 보수 중인가 보다.

작업이 모두 끝나고 청소까지 끝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저녁이 되었다. 아주머니가 저녁을 차려 주셨다. 밥을 먹고 자고 가도 되느냐고 물어보는데 아주머니가 예상하셨는지 웃으며 아저씨한테 물어보러 갔다. 작업을 마친 배가 나온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5km만 가면 호텔이 있다고 그리 가란다. 아주머니가 미안한 표정으로 뒤에 서 있다.

다행히 비도 그쳤다. 캄캄한 어둠 속을 5km 정도 달리니 숙소로 보이는 곳이 나왔다. 입구에서 저렴한 민박집이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인근에는 없단다. 지쳐서 그냥 오늘은 여기서 자기로 했다. 여직원에게 할인 3단계 멘트를 했는데 자기는 직원이라서 할인을 해줄 수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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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인 사람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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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를 잘라서 튀김요리를 준비중인 아주머니.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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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이 즐겨먹는 요리 중 하나.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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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호텔로 오고 말았다.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6월 30일

1. 이동경로
CIEGO DE AVILA MORON‐SANTI SPIRITUS San Jose Del Lago

2. 주행거리
60km / 5시간 41분 / 평균속도 14.5km/h

3. 사용경비: 674페소 / 환율 1$=1CUC=24페소
오늘 숙박료: 672페소, 음료수 2잔: 2페소

4. 음식
아침: 계란 후라이 들어간 빵 1개, 음료수 1잔
점심: 콩 요리 밥, 닭 요리, 바나나 으깬 요리.
저녁: 콩 요리 밥, 닭 요리, 바나나 으깬 요리.
간식: 물 4.5리터, 커피 1잔, 음료수 1잔, 망고 주스 1잔

5. 신체상태
계속 가렵다. 5시간쯤 탔을 때 무릎 통증이 조금 느껴졌으나 저녁에 괜찮아 졌음.


2007년 6월 30일 토요일. CUBA. SANTI SPIRITUS San Jose Del Lago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자전거여행 #쿠바 #댄스파티 #코코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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