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자전거 여행자, 모기 떼에 두 손 들다

[자전거세계여행 쿠바 4편] 6월 25일~27일 쿠바인의 삶 속으로 ①

등록 2007.07.16 15:28수정 2008.07.3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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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월요일 맑고 더움

 

오후1시. 파인애플이 앉아 있는 의자 발견! 백발의 할머니가 5페소를 달란다. 할인 3단계 멘트를 시작했다.

 

"가장 싸게 부르는 가격이 얼마죠? 더 작은 것은 없나요? 할인을 원합니다"

 

말하고 나서 크게 한번 웃어준다. 효과가 있었다. 3페소에 하기로 했다. 작은 접시 가득 파인애플을 잘라 오셨다. 돈을 드리려고 하는데 웃으시며 그냥 주신다. 소금까지 뿌려주신다. 딸과 사촌 아주머니와 다른 가족들이 나와서 나그네를 구경한다. 다리의 모기자국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란다. 다리를 툭툭 치며 "모기가 정말 많아요! 다리가 맛있어요"라고 하니 다들 크게 웃는다. 시원한 물도 주시면서 잠시 쉬었다가 가라며 의자도 내주신다. 오늘은 구름이 둥둥 떠 있어서 그늘이 제법 생겨서 그런대로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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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식으로 과일들이 많이 앉아서 손님을 기다린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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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그냥 집어 먹는다. 더운 날에 제격이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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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을 허락해주었던 파인애플 가족.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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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 박정규

오후6시 34분. 언덕 위에 집 같은 게 한 채 보인다. 거기로 가야 할 것 같다. 200m가량의 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니 민가인 걸로 확인. 개가 3마리 나와서 거칠게 반겨주자 젊은 청년이 나와서 개들에게 소리를 지르자 이내 잠잠해진다. 여기서 자고 가도 되겠느냐고 보디랭귀지와 토막 스페인어를 섞어서 이야기하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순박함이 그냥 느껴지는 요엘이란 청년은 나랑 나이가 비슷하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쿠바 농부처럼 생겼다. 밀짚 모자에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에 멋스럽게 자란 콧수염과 조금은 야위었지만 튼튼한 느낌의 몸매를 가지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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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의 집.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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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청년 요엘.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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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모습이 인자하신 요엘 아버지. ⓒ 박정규

요엘이 집에 모기가 많단다. 정말 많다. 눈이 가는 곳마다 모기가 있다. 개구리가 100마리는 필요할 것 같다. 요엘이 잠시 후 밖에서 나무를 가져와 집 돌 바닥에 불을 피우다가 물을 부어서 연기를 만들어 냈다. 덕분에 눈이 조금 따끔했지만 모기가 사라진다면 이정도쯤이야 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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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를 쫓기 위해 불을 피우는 요엘. ⓒ 박정규

잠시 후 양철 그릇에 따끈따끈한 밥과 계란프라이 2개와 고구마처럼 생긴 녀석을 함께 준다. 순식간에 뱃속으로 들어갔다. 12인치 정도 되는 흑백TV를 같이 보다가 하품이 나올 무렵 요엘이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알록달록하게 수 없이 덧댄 침대 커버 위에 세월에 바랜 하얀 모기장이 쳐 있다. 선풍기까지 갖다주며 여기서 자란다. 모기장 속에 들어가 보니 모퉁이마다 엄지손가락이 쏙 들어갈 만한 구멍이 제법 많다. 오늘도 모기에게 헌혈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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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저녁.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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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제법 많았던 하얀 모기장.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6월 25일

1. 이동경로

LAS TUNAS–CAMAGUEY 30km전

 

2. 주행거리

101.1km / 6시간 34분 / 평균속도 15.4km/h

 

3. 사용경비: 33.6페소 / 환율 1$=1CUC=24페소

망고 1개: 4페소, 음료수 2잔: 2페소, 캔 콜라1개: 10페소바나나 4개: 2페소, 물 1.5리터: 0.65CUC

 

4. 음식

아침: 동그란 빵, 초콜릿 우유 한 잔

점심: 파인애플 1개, 피자 1개, 음료수 1잔

저녁: 밥, 계란프라이 2개, 옥수수 요리

간식: 물 3리터, 캔 콜라 1개, 음료수 1잔

 

2007년 6월 26일 화요일 맑고 더움

 

제법 큰 도시 CAMAGUEY에 도착했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 CAMAGUEY호텔로 가니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로 가보란다. 그 호텔에 도착하니 TELE PUNTO란 곳에 가란다. 역주행 하는 길이라 조나단을 끌고 드디어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1시간에 6CUC다. 아바나에 비하면 엄청 저렴한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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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TELE PUNTO. ⓒ 박정규

먼저 숙소를 정하고 나서 여행기를 정리한 후에 다시 인터넷을 하러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인근의 민박집을 찾아서 골목을 누비다가 동네 사람들이 가리켜준 집으로 갔다. 20페소를 15페소로 하기로 했다. 여행기를 정리하고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 인터넷 하러 갔더니 5시까지 한다고…. 내일 다시 와야겠다. 빗방울이 조금 떨어져 숙소로 빨리 돌아왔다.푹신한 침대에 에어컨에 냉장고까지 있다. 에어컨을 가장 강하게 틀어놓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음료수가 가득하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서 바라보기만 했다. 다리의 모기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세어 봤는데 한 쪽 당 100곳은 가볍게 넘겠다. 병원 앞에서 쓰러진다면 "동양인 자전거 여행자! 희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쓰러지다!"는 기사가 나도 이상할 것 없을 것 같다. 다행히 가지고 있던 '벌레 물린데' 약을 바르고 나니 조금 덜 가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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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내부.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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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내부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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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내부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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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모기들에게 인기 만점인 나의 다리.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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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카드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6월 26일

 

1. 이동경로

CAMAGUEY 30km전‐ CAMAGUEY San Esteban

 

2. 주행거리

30km / 2시간 11분 / 평균속도 13.7km/h

 

3. 사용경비: 138페소 / 환율 1$=1CUC=24페소

어제 숙박비: 120페소, 캔 콜라 1개: 10페소

고기 들어간 빵 1개: 5페소, 아이스크림 1개: 3페소

 

4. 음식

아침: 우유 2잔

점심 겸 저녁: 고기 들어간 빵 1개

간식: 물 3리터, 아이스크림3개, 캔 콜라 1개

 

5. 신체상태

모기 자국이 발 등에서 등까지 온 몸에 가득하다.

너무 가렵고 쳐다보기가 두렵다.

 

2007년 6월 27일 수요일 맑고 더움. 저녁 비

 

사용자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카드를 구입해서 컴퓨터에 앉았다. 어! 한글이 안 보인다. 언어 설정은 할 수조차 없게 프로그램화되어 있어 인터넷만 할 수 있다. 직원에게 안 보인다고 노트북을 사용해도 되느냐고, 아니면 USB를 사용하면 안 되느냐고 문의했는데 둘 다 안 된단다. 너무 아쉬워서 그냥 노트북에 사용하던 데스크톱에서 선을 빼서 연결했는데 접속이 되지 않는다. USB도 연결했는데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토막 스페인어와 억울한 표정으로 한글도 USB도 안 되는데 돈을 돌려 달라고 했다. 다른 직원이 와서 다른 컴퓨터에서 시도를 해보다가 안되자 결국 돈을 돌려주었다. 하하. 그래도 미국 자전거 제조회사에서 지속적인 후원을 해줄 테니 구체적인 일정과 언론사 인터뷰한 자료를 보내달라는 반가운 메일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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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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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택시 운전자가 그려준 약도. ⓒ 박정규

바다 쪽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핸들을 돌렸다. 자전거 택시 운전자들에게 릴레이 방식으로 길을 물어보았다. 한 운전자가 그려준 손바닥만 한 약도를 들고 시를 어렵지 않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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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으로 자전거를 견인 중이던 아저씨.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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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작은 어촌이었던 도시. ⓒ 박정규

오후5시 45분. 드디어 바다가 보이는 Nuevita 도착! 그런데 여기는 작은 어촌이다. 호텔에도 당연히 인터넷은 안 된단다. 아쉬운 마음에 동네 한 바퀴 돌고 나가는데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농가처럼 보이는 건물로 무작정 들어갔다. 아저씨 두 분이 있었다. 이곳은 집이 아니고 파인애플 밭을 망 보는 건물이란다. 2시간에 한 번씩 교대근무를 선다. 잠깐 이야기를 좀 하다가 피곤해서 텐트를 치고 자려고 하니까 아저씨가 갑자기 여기서 자면 안 된다고 나가란다. 아까는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오해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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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없이 먹구름이 잔뜩 몰려왔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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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까지 챙겨 주셨다. ⓒ 박정규

짐을 꾸려서 다시 장대 빗속으로 돌아가 무작정 왔던 언덕을 올라가는데 오른쪽에서 불빛이 보인다. 집이다! 큰 대문을 무작정 밀치고 들어가니 개들이 먼저 반겨준다. 짧은 하얀 머리에 하얀 수염을 한 아저씨가 나왔다. 하늘을 가리키며 '하하-'하고 웃으니 비에 흠뻑 맞고도 웃는 날 보고 '허허-'하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집안으로 들어오란다.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한밤에 빗속을 뚫고 찾아온 불청객 덕분에 하나뿐인 딸은 인근의 사촌 집에서 자야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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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마음을 가지신 아저씨.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6월 27일

1. 이동경로

CAMAGUEY San Esteban‐ CAMAGUEY Nuevita

 

2. 주행거리

85.6km / 6시간 10분 / 평균속도 13.8km/h

 

3. 사용경비: 409.45페소 / 환율 1$=1CUC=24페소

어제 숙박료: 408페소, 음료수 1잔: 0.25페소, 달콤한 거 들어간 빵 2개: 1.20페소

 

4. 음식

아침: 빵4개, 계란프라이 1개, 파인애플, 망고 주스, 우유, 커피

점심: 달콤한 맛 나는 거 들어간 빵 2개

저녁: 콩 요리와 밥

물 4.5리터

 

5. 신체상태

여전히 모기자국이 가렵다.

2007.07.16 15:28 ⓒ 2008 OhmyNews
#자전거여행 #쿠바 #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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