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러다 우리 애들 죽겠구나"

물놀이 사고로 큰 일 치를 뻔... 아찔한 여름휴가

등록 2007.08.06 20:09수정 2007.08.0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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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언제나 살벌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맘놓고 쉴 수 있는 날들 아닌가? 명절휴가 때는 귀향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여름휴가는 정말로 가족 단위의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방학 중 보충수업을 빠질 수 없다고 염려하는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가족이 우선'이라는 명분으로 설득한 뒤, 지난 주 우리 가족은 아들과 딸, 아내, 나 이렇게 넷이서 3시간 정도 차를 몰아 경북 청송군 얼음골 유원지에 이르렀다.

원래 목적지는 약 4㎞ 더 가야 하는 옥계계곡이었지만 주차여건과 화장실 시설이 좋은 얼음골에 야영을 하게 되었다.

물 속에서 난리가 났다

우리는 이번 여름휴가 테마인 고무보트놀이와 스노클링을 하려고 4인용 고무보트와 스노클링 장비, 그리고 혹시나 하여 구명조끼를 4벌을 구입했다. 이곳 얼음골은 말 그대로 냉기가 돌아 더위를 피하기는 좋았으나 물놀이하기에는 수심이 얕고 수량이 적었다.

다음날, 날이 더워지자 우리는 텐트를 그 자리에 두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하류인 영덕군 옥계계곡을 둘러보다가 물놀이 장소로 적당 해 보이는 꽤 넓은 소(沼)에 물놀이 짐을 내렸다.


아내와 둘이 보트에 바람을 넣고 아이들은 스노클링 장비를 챙긴 후 정신없이 물놀이를 하였다. 아내 외엔 수영을 조금씩 하였지만 깊은 곳은 어른 키의 배나 되는 깊이가 있어 구명복을 모두 입기로 하였다.

물속은 와류(소용돌이)는 없어 보였지만 바닥이 급격한 경사로 인하여 자칫 익사사고도 염려가 되는 곳이라, 먼저 와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은 거의 다 구명복을 입고 있어 보기 좋았다.


한 시간여 물놀이에 힘이 빠질 무렵 작은아이인 딸은 수영장에서 한 달 배운 수영 실력을 보여주었는데 제법이었다.

아이들을 물속에서 잠시 놀게 놔두고 아내와 작은 매트리스형 튜브에 바람을 넣고 있는데, 눈 앞에 작은아이가 벗어놓은 구명복이 있어 벗은 이유를 물으려고 물속을 돌아보니 물 속에서 난리가 나고 있었다.

짧은 시간, 긴 공포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엉켜서 연거푸 물 아래위로 들락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임을 직감한 나는 아이들이 엉켜있는 곳이 수심이 갑자기 깊어진 곳임을 직감하였다.

나를 본 큰아이는 "아빠! 아빠! 살려∼"를 외쳐대었고, 작은아이는 오빠를 붙잡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나는 정신없이 뛰어들어 가려다가 나 혼자의 힘이 부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내와 공기를 넣던 매트리스 튜브를 챙겨 아이들을 향하였다. 3~4m 떨어진 아이들까지 가는 시간이 그렇게 오랠 줄이야….

작은아이는 정신없이 오빠 목을 움켜잡고, 오빠인 큰아이는 동생을 잡긴 잡았는데 구명복을 입었어도 두 사람 무게를 지탱할 부력이 안 되다보니 물 속을 둘이서 들락날락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다가간 나는 작은아이 머리를 움켜잡았으나 아이는 계속 오빠 목을 껴안고 놓지 않았다. 다행히 큰아이가 튜브를 잡았을 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작은 아이를 잡고 물가로 나올 수 있었다. 튜브가 없었다면 더 어려운 상황이 될 뻔 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물가로 데려 나오기까지 겨우 20여 초 되었을까? 정말 '짧은 시간 긴 공포'였다. 이 광경을 지켜본 아내는 떨고 있었다. 아이들도 떨고 나도 떨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더 이상 물놀이를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작은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수영으로 오빠에게 다가갔는데, 얕은 줄 알고 섰는데 너무 깊어 당황하다가 물을 입과 코로 한번 들이켜다 보니 정신이 없어 오빠를 붙잡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영으로 나올 생각이 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또 큰아이는 동생이 자기를 잡는 힘이 엄청나고 구명복을 입었지만 동생이 잡고 있는 동안에는 물속으로 가라앉더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물놀이를 할 수 없었다. 공포를 느낀 서로 위로하며 물놀이의 위험성과 구명복의 중요함, 그리고 물에 빠진 자를 구하려다 여러 사람이 희생당할 수 있다는 체험 아닌 체험으로 기억하기로 하였다.

물놀이 기구를 정리하여 텐트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선 그날 오후 전국에서 물놀이 희생자가 속출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으나 우리는 모두 듣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휴가 전 <오마이뉴스> 어느 기자분의 여름물놀이 기사가 생각났다. 그 기사 덕분에 살까 말까 망설이던 구명조끼를 4벌씩을 샀고, 물놀이 하는 아이들을 계속 지켜봤다.

"아이들을 물가에 두고 어른들끼리 놀지 말 것과 구명복을 반드시 입히라."

2007년 여름휴가 중 우리에게 일어났던 물놀이 사건이 우리에게 산 교훈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돈을 들여서라도 수영을 제대로 가르칠 생각이다. 아이들이 평생을 물가로 갈테니까 말이다. 며칠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의 상황은 나를 떨리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자녀들의 물놀이 사고 예방은 부모가 해야할 일임을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자녀들의 물놀이 사고 예방은 부모가 해야할 일임을 느낍니다.
#물놀이 #옥계계곡 #구명복 #익사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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