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길쌈이 싫어서 어머니가 미웠다

요즘처럼 삼베가 귀한 시절 길쌈하던 어머니 생각 나

등록 2007.08.07 11:16수정 2007.08.07 11:1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려서 목화 다래 따먹다 똥구멍 메이고 배 터져 죽는다고 혼낸 할아버지.

여섯째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충청도 서산시 태안면으로 이사했다.(아버지 형제가 칠형제로 우리 아버지는 네째.) 부모님이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할 수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할아버지는 여섯째 아버지가 충청도로 이사오고난 뒤, 둘째 큰아버지와 사시다 79세가 되던 2월 18일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수의는 칠형제 중 제일 큰아들 큰며느리가 하고 상 옷은 다 각각 만들었다. 어른이 계시면 수의를 만들 베와 상제들이 입는 상옷은 다 각각 준비를 해야 한다. 상옷을 입은 자손이 집안에 다 못들어오고 밭에 서있을 정도로 큰 장례식이었다고 한다.

여름엔 모시로 여름옷을 만들어 입었다 어머니가 항상 무명 모시 베로 옷을 만들면서 나보고는 시집가면 편하게 살라고 하셨다. 하기 싫은 일에 멀미를 내면서. 당시 어머니를 미워했던 잘못을 후회한다.

우리 어머니 미리 길쌈을 해서 우리 아버지 수의와 어머니 돌아가셔서 입을 수의를 지어놓고 아들과 큰 동생 굴건제복, 작은 동생들 삼형제 상옷까지 만드셨다. 우리 남편은 맏사위라고 굴건제복을 해서 항상 손질하고 해마다 신문을 넣어서 건조하게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상옷을 입고, 삼년 제사를 지내면서 나는 어머니 솜씨가 무척 그리웠다. 남편 상옷 뜯어 베 등거리 하나 하고, 내 삼베 등거리 하고 하고 삼베 조각조각 이어서 상보도 하나 했다. 아직도 삼베 등거리는 있지만 밥상보는 없앴다. 요즘처럼 삼베가 귀한 줄 알았으면 잘 둘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삼베가 너무 지겨워 보기 싫어서 모두 없앴는데, 요즘 여름 등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옷을 꺼내서 풀 매겨 입는데, 그 옛날 지겨운 길쌈 하면서 어머니 미워했던 생각이 다시 난다.

당시 어머니 하는 일을 얼마나 싫어했으면 나는 커서 아이도 둘만 낳고, 삼베길쌈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날마다 다짐했었다. 당시 어머니는 길쌈 하느라고 바빠, 동생들 뒷바라지는 내가 하는데,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 열다섯부터는 내가 베도 짰다. 이후 내가 어머니 하는 일을 하고 어머니가 뒷바라지를 하면서 조금은 한가해졌다.

내가 열여섯 살인가 열일곱인가 그때쯤 세무서에서 밀주 조사가 심했다. 봄에 모심을 때, 가을 타작할 때 밀주 조사를 많이 하는데, 한 번 들키면 벌금이 꽤 많았다. 술은 압수돼 양조장으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우리 아버지 생일이 음력 5월 28일인데, 어머니가 갑자기 나보고 목화밭에 가서 배추를 뜯어다가 김치를 하라고 하셨다. 그 날은 날도 무척 뜨거웠다. 그래서 김치하고, 학교갔다온 아이들 점심주기 싫어서 내가 베를 짠다고 떼를 썼는데, 세무서에서 밀주 조사가 나왔다.

젊고 말끔한 신사들이 와서 나보고 내려와서 앞장 서라고 하면서 조사를 하려고 하는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생일이라 술을 해서 방에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어머니가 목화밭에 김칫거리 하러 가면서 술을 뒤란에 내놓은 상태였다.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베틀만 들여다보고 베만 짜는데, 속은 떨리고 어머니는 어디 갔나 빨리 안오고 뭐하시나는 생각만 계속 했다.

나는 내일 모레까지 이것을 다 짜야 한다고 말하면서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조사원 중 한 명이 술내가 난다면서 뒤란엘 간 모양이다. 그때도 주인 없이는 가택조사를 못했다. 나는 성질을 내고 내가 주인이 아니고 이 집에서 품값을 받고 베짜는 일꾼이라고 마구 소리치면서 소리를 꽥 질렀다.

어머닌 목화밭에서 벌써 알고 계셨단다. 우리 동네 술 조사 나왔다면서 마음만 졸이고 계셨단다. 조사원들은 뒤란 술독을 열어놓고, 주인 없이 집 안을 뒤지면 안 되니 그냥 갔다고 한다.

어머니는 개울에서 틀림없이 술은 들키고 아버지한테 조심하지 않은 것 혼날 생각에 걱정하고 있는데, 와서 보니 꾀 많은 어린 딸이 잘 넘겼다며 고마워하셨다. 아버지 생일날 큰잔치를 하면서 아버지는 딸 자랑을 크게 하셨다.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동네 어른들한테 꾀많은 딸이라고 칭찬 많이 들었다. 성북구청에 피어있는 목화 대를 보고 목화다래를 보니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 내가 너무 싫어하던 미영 삼베 모시 생각이 난다.

덧붙이는 글 | 철없어 불효하고 철들러 효도 할라고 하니 벌써부모님들 다돌라가시고 지금은 후에만 남았다.

덧붙이는 글 철없어 불효하고 철들러 효도 할라고 하니 벌써부모님들 다돌라가시고 지금은 후에만 남았다.
#길쌈 #삼베 #어머니 #할아버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2. 2 아름답게 끝나지 못한 '우묵배미'에서 나눈 불륜
  3. 3 스타벅스에 텀블러 세척기? 이게 급한 게 아닙니다
  4. 4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5. 5 [단독] 김건희 이름 뺀 YTN 부장 "힘있는 쪽 표적 될 필요없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