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암 마당에서 바라본 백양사 골짜기.안병기
운문암은 상왕봉 아래 자리하고 있다. 백양사가 창건될 즈음에 함께 세워졌다고 하는 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운문암 자리는 임금과 신하가 서로 조회하는 터라고 하는 말을 25년 전 백양사에 며칠 머물 때 지관이던 분에게서 들었다.
그분은 또 운문암은 대둔산 태고사, 부안 월명암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큰 스님들이 많이 나오는 곳 중의 한곳이라고도 했다. 이른바 혈(穴)이 많은 곳이다. 그런 말이 아니더라도 선객들 사이에서 이 운문암은 한 철 공부하고 싶어하는 도량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운문암 터가 좋아서였던가. 백양사에선 조계종 종정만 다섯 분이나 나온 바 있다.
제5대 종정을 지내시고 지난 2003년에 입적하신 서옹스님은 이렇게 '열반송'을 읊었다.
雲門日永無人至 (운문일영무인지) 운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 없고
猶有殘春半落花 (유여잔춘반락화) 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
一飛白鶴天年寂(일비백락천년적) 한 번 백학이 날으니 천년동안 고요하고
細細松風送紫霞 (세세송풍송자하) 솔솔 부는 솔바람 붉은노을을 보내네
- 서옹선사 1주기 추모 문집 <참사람의 향기> 22쪽
자신이 가고 난 뒤의 일을 염려했음일까. "운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 없다"고 스님은 탄식하신다. 건성으로 들락거리는 선객들은 많다만 정작 확철대오한 스님은 많지 않구나. 잠시 법당 앞에 서서 백양사 쪽을 바라보노라니 어디선가 스님의 탄식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러나 난 스님과는 좀 다르게 '세상사는 복잡미묘해서 전무(前無)를 한탄할 수는 있지만 섣불리 후무(後無)까지 앞질러 절망할 필요는 없다'라고 애써 낙관을 품는다.
운문암 계단을 내려간다. 작은 단풍나무 곁을 스쳐 지난다. 아기 손톱처럼 앙증맞은 이파리들이 가만히 흔들린다. 어린 단풍나무여. 이따 저녁에 산들바람 찾아오거든 소리소문없이 나 여기 다녀갔다 전해다오.
덧붙이는 글 | 전남 장성 백암산 운문암에는 지난 7월 24일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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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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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은 있건만 밀쳐 여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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