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사건 따라가면 조선이 보인다!

[서평] 이수광의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등록 2007.08.08 11:03수정 2007.08.0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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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다산초당

이수광의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은 작년에 화제를 모았던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만큼이나 독특한 접근방식으로 역사를 돌아보게 해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애'라는 사건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윤리관 등을 알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던 '근엄한' 조선의 얼굴과 다른 모습들까지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돼있는데 1부는 '조선을 뒤흔든 왕조 스캔들'이다. 왕조 스캔들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주인공은 세조의 후궁 덕중이다. 덕중은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거느리던 여인이지만 궁궐에 들어온 이후에는 세조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오지도 않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던 처지다.


그런 덕중이 세조 동생의 아들에게 연애편지를 보냈다. 덕중은 그것이 들통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그랬을까? 아니다.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을 벌인 이유는 오로지 하나, 사랑 때문이다. 어쨌거나 왕의 여자가 왕의 친척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발각됐으니 그 일로 인해 궁궐에는 피바람이 불고 만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주인공은 양녕대군이다. 그는 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것일까?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될 터인데, 이유인즉 양녕대군이 여자에 빠진 까닭에 폐세자를 당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사실은 이렇다. 양녕대군은 어리라는 부녀자를 사랑하게 된다. 어리 또한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이내 동궁전에서 양녕대군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들은 이 사실을 비밀로 하려 했지만 궁궐에 비밀은 없는 법, 결국 태종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어리를 추방하게 된다. 사건은 이대로 무마될 것처럼 보였지만, 사랑에 빠진 양녕대군은 비밀리에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고 어리를 입궁시켜 다시 사랑을 나눈다.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더한 일이 생기고 만다. 어리가 임신을 한 것이다.

태종의 분노가 불 보듯 뻔한 일인데 설상가상으로 양녕대군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다. 세자를 추종하는 세력 또한 막을 수 없도록 일이 크게 번지고 마는 것이다. 책은 이것을 두고 양녕대군이 왕권을 잇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연애사건으로 시작해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졌다는 말이다. 그동안 '풍류를 좋아하는 양녕대군이 일부러 미친 척해서 보위를 동생에게 넘겨줬다'는 말과 다른 이야기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2부는 '조선을 뒤흔든 남녀상열지사'라는 제목인데 여기서는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유감동과 어을우동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들보다 천민을 사랑한 양반의 딸 가이다. 이 둘은 엄격한 신분을 넘어서서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소문은 막을 수 없는 법, 결국 나라에서 이 일을 알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데 그 방법이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조선시대의 신분제가 갖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을 뒤흔든 연애기담'을 다룬 3부는 제목 그대로 '기담'을 많이 다루고 있다. 양성을 지닌 사방지나 아이를 낳은 일곱 살 아이 등의 사연과 그것을 처리하는 조선의 방식은 그 동안 들었던 이야기들과 많이 다르다. 그런 탓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 특히 놀라운 것은 연애 스캔들을 둘러싸고 조식과 이황이 대립했다는 내용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8세의 여인 이 소사는 남편이 죽은 뒤에도 정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재산을 탐낸 친척이 '음란한 짓'을 하고 있다고 고변한다. 마을이 발칵 뒤집어진 일은 당연한 일이고 관청에서도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이 소사는 풀려나게 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조식의 문인이자 영남의 유력한 선비인 이들이 젊은 선비들을 이끌고 이 소사의 집을 찾아가 난동을 부린다. 일을 당한 이 소사는 그들을 고발하게 되고 여기서부터 문제는 마을이 아니라 나라를 발칵 뒤집는 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소사를 비호하는 이와 그것을 비난하는 이의 대결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여인이 수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모험으로 벌어진 일인 셈인데, 조선시대의 어두운 면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4부에서는 '조선을 뒤흔든 불멸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는데, 앞의 사건들과 달리 비교적 아름답게 끝난 사랑을 알려주고 있다. 일부다처제였던 조선시대와 비교해보면 조선의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도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처럼 독특하게 조선을 바라보게 해주는 역할로 충분하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빠졌던 '사랑'이 주요 테마이니 재미야 두말할 나위 없을 터,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은 역사와의 즐거운 데이트를 약속하고 있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

이수광 지음,
다산초당(다산북스), 2007


#연애사건 #이수광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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