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역사, 재미와 깊이의 만남

래니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등록 2007.08.08 16:24수정 2007.08.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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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만화방에서 밤샘을 하면서 읽던 만화의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만화책만 보면 ‘불온서적’을 읽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만화책을 불어 태우기까지 하셨다. 영상매체에 익숙한 시대인만큼 만화로 된 <만화로 읽는 ○○교과서> <만화로 읽는 ○○시리즈>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만화는 사람들에게 다른 책보다 대우를 덜 받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책을 읽는 이유를 ‘공부’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통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고상한 목적은 아니더라도 책을 통하여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재미, 더 넓은 세계를 아는 방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뜻에서 만화는 책보다 더 재미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한다.


래니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래니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궁리 출판사
래리 고닉은 하버드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에 들어갔지만 홀연히 전업 논픽션 만화가의 길로 들어간 사람이다. 수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그의 만화를 보면 치밀하고 세밀하다. 만화 곳곳에서 수학적인 치밀함을 만날 수 있다. 듬성듬성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큰 그림, 큰 글자, 내용 없는 것에 진탕 말장난만 난무하는 어떤 만화 시리즈와 판이하다. 만화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깊은 사고를 아예 무시한 작품들과는 다르다.

만화를 그냥 단순히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손을 거쳐 간 만화를 보면 과학시리즈, 역사시리즈 모두가 박학다식한 지식의 내공을 만나 볼 수 있다. 만화를 통해서도 지식 습득과 사고의 깊이, 문명과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한다. 재미가 반감될까? 아니다. 그의 익살스러운 그림 형태와 말 속에 담긴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는 총 4권으로 되어 있다. 1권은 ‘빅뱅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2권은 ‘중국의 여명에서 로마의 황혼까지’ 3권은 이슬람에서 르네상스까지‘, 4권은 콜럼버스에서 미국혁명까지’이다. 3권까지만 읽고 아직 4권은 읽지 못했다. 4권을 하루빨리 읽고 싶다. 래리 고닉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를 통하여 만화전문지 <더 코믹 저널>이 뽑은 20세기 100대 만화에 뽑히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가 재미있고 찬사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학다식한 그의 지식을 바탕으로 촌철살인과 같은 글발과 생동감 넘치는 붓발, 어느 누구보다 잘하는 말쟁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나, 민족, 국가 역사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무조건 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잡힌 우리가 이 책을 읽는 순간 놀란다. 역사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연표와 왕 이름 외우기에 바빴던 우리가 조금 불쌍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역사를 좋아했던 나에게는 더욱 친근감이 들었고, 초등학교 2, 3학년 아이들에게 읽으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사가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기록되었고, 서양사만을 세계사로 인식했던 사람들에게 래니 고닉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의 3권 1, 2부에서는 우리에게 생경한 아프리카, 이슬람 문화도 굉장히 깊고 자세하게 말한다. 생경한 아프리카 역사에서 예멘을 역사를 보면 4세기 말엽 그리스도교와 유대교가 치열한 전도활동을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395년 예멘 왕이 유대교로 개종하자 그리스도교는 발끈한다. 한 세기 정도 유대교가 예멘을 지배하지만 그리스도교가 반란을 획책한다는 소문을 들은 ‘두 누아스 왕’은 선수를 쳐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을 죽인다.

고대 이집트의 나일 강을 따라 상류고원 지대로 올라가면 ‘누비아와 에티오피아’가 존재했다. 이 두 나라는 앙숙이었다. 누비아와 에티오피아의 역사는 우리가 전혀 접할 수 없는 역사이다. 이는 그가 서양인의 사고 틀에서 모든 세계사를 보려고 하지 않고,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시각, 이슬람은 이슬람의 시각, 중국은 중국의 시각에서 보려고 했다는 반증이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는 역사를 보는 눈을 냉철하게 가졌고, 그것을 그림과 글로서 나타내려고 애쓴 흔적을 한 컷 한 컷,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느낄 수 있다.

그림 몇 컷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 오늘 우리 앞에 놓인 <만화로 읽는 ○○교과서> <만화로 읽는 ○○시리즈>들이다. 충실하고 세밀한 만화도 있지만 한눈에 시리즈가 인기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찍어낸 만화들이 너무 많다. 지식의 마음의 자양분이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만화들이다. 4권까지가 미국의 혁명까지 다루었으니 그 이후의 역사도 집필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번역을 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그 이후의 역사도 만나고 싶다.


“래니 고닉에게는 유머로 아카데미 상을, 역사로 퓰리처 상을 주어야 한다.”-리처드 소울 위번

“놀라운 잡종의 탄생! 가벼우면서도 학술적이고, 신랄하면서도 편견에 치우치지 않으며, 별스러우면서도 고전스럽다. 진정한 아웃사이더 래리 고닉의 야심만만한 과거 여행은 종횡무진 예측불허.”-조너선 스펜스 (책 겉표지 인용)

덧붙이는 글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래리 고닉 글·그림/ 이희재 역 | 궁리 |

덧붙이는 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래리 고닉 글·그림/ 이희재 역 | 궁리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1~5 세트 - 전5권

래리 고닉 글.그림, 이희재 옮김,
궁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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