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이란 숫자에 빼앗긴 출산의 기쁨

임신으로 찐 살 '시냇물처럼 빠진다'는 건 착각

등록 2007.08.09 15:39수정 2007.08.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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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하다."


어딜가든 듣는 소리다. 물론 이 말 뒤에는 "아줌마치고…"라는 마뜩찮은 수식어가 붙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나마 듣기까지의 나의 피나는 노력은 시쳇말로 백과사전 한권 분량으로 써도 모자랄 정도다.

아가씨 적부터 썩 날씬한 몸매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뚱뚱하지도 않았던 나는 옷을 입으면 태가 나고, 뭘 먹어도 게걸스럽다기보다는 복스러운 그런 아가씨였다. 그렇기에 '이 사람이다'싶어서 남편에게 먼저 프러포즈 할 때 "살림 잘하고, 내조 잘하겠다"는 약속이 의심 없이 먹혀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에서 위대한 엄마가 되는 과정에 나는 생명을 잉태하는 인고의 과정에 내 몸을 불리는 만행을 정당화시켰다. 첫 애를 가졌을 때 몸무게가 52kg이었던 것에 비해 출산을 앞둔 시점에는 과학적 이론과 검증을 초월하는 몸무게를 자랑해야만 했다.

평균적으로 임신기간 중 10~15kg이 찌는 것과는 달리 나는 그 2배에 육박하는 30kg의 살들을 노후대책처럼 내 몸에 축적을 하고 만 것이다. 물론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살에 대한 두려움, 비만에 대한 두려움 따윈 없었다.

아기 낳으면 시냇물처럼 살 빠질 줄 알았는데...


모든 임산부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아이를 출산함과 동시에 출렁이는 살들도 시냇물 흐르듯 줄줄 흘러가 버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사선생님도 "혈압도 정상이고, 엄마 건강, 아이 건강 모두 아주 양호합니다. 좋은 것 많이 드시고, 태교에만 신경쓰십시오"라고 말했었다.

난 너무나 말 잘 듣는 산모였다. 좋은 것 많이 먹으라는 의사의 말에 손에서 먹을 것이 떨어질 새 없이 열심히 '아구'의 힘을 자랑했고, 태교에 신경 쓰라는 말에 열심히 쉬고, 또 쉬고, 또 쉬면서 느긋한 마음과 넉넉한 몸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가씨 적 입었던 손바닥만한 미니스커트와 스타킹을 방불케 하는 청바지와 올라가면 백두산이 보이고, 내려오면 낙동강이 보이는 높은 하이힐까지 정성들여 손질을 한 뒤…. 한마디로 아이만 아니라면 완벽한 아가씨가 될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후 병원으로 향했다.

난 8시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산고 끝에 아이를 출산한 후 몸을 추스르기가 무섭게 내 몸을 더듬어 사이즈를 가늠해 본 뒤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맨 처음 찾아간 곳도 신생아실이 아닌 체중계 위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3.3kg의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했고, 더불어 태반과 상당량의 출혈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 후 나의 몸무게는 정확하게 78kg이었다.

저울이 잘못된 것 같아 두 번 세 번 올라가보고, 애먼 남편까지 저울대 위에 세워 봐도 몸무게는 정확하게 78kg이었다. 그 순간 출산의 기쁨은 '78'이라는 숫자에 가려 다 달아나버렸다.

그 날로부터 식음을 전폐했어야했지만 10개월 동안 길들여진 식욕은 비참한 기분과는 상관없이 아직도 내 몸이 아이를 잉태한 산모인줄로 망각한 채 온갖 먹을거리들을 달라고 아우성 쳤다. 그것도 모자라 옆방에 배달되어온 탕수육과 치킨, 설렁탕 냄새에 뱃속에서는 사물놀이가 펼쳐지곤 했다.

살빼기 프로젝트에 돌입하다

비만의 주범은 햄버거일까? 콜라일까?
비만의 주범은 햄버거일까? 콜라일까?오마이뉴스 권우성
비참함 때문인지 잠시 아이가 미워 보이기까지 한다는 산후우울증도 찾아왔다. 하지만 그런다고 누가 뚝뚝 떼어가 줄 수도 없는 살이었다. 우선은 내가 바뀌어야 할 것 같았다.

가장 먼저 한일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꼭 모유수유를 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아이가 많이 먹을수록 살이 더 잘 빠질 거라는 기대 때문인지 첫아이를 출산한 새내기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장소불문, 시간불문 아이의 밥시간만은 철저하게 지켰었다.

오죽하면 아무데서나 훌러덩 열어젖히는 아이밥통에 남편이 깔고 앉았던 방석으로 가리고, 덮고 그것도 모자라 흘끔흘끔 시선을 던지는 뭇사람들을 향해 매서운 눈빛화살까지 날렸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저 아이가 많이 먹어주는 것이 좋았고, 쪽쪽 소리가 나도록 텅텅 비어지는 아이의 밥통이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두 번째로 할 일은 산독을 빼는 일이었다. 산후에는 산독이라는 게 남아 있어, 여차하면 부기가 살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부기를 빼자니 모유를 먹는 아이한테 해가 갈지도 모를 일. 알아보니 출산 후 한달이 지나면 부기에 좋다는 호박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하여 호박을 다섯 덩어리나 내려서 두고두고 먹었더니 확실히 손등을 훑고 지나가는 혈관은 물론이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맛이나 보자는 남편으로부터 호박즙을 사수하는 일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열심히 호박을 먹었다.

세 번째는 다이어트란 어차피 음식과의 전쟁이기에 음식일기를 썼다. 하루 종일 내가 먹은 것을 적기 시작하면서, 안 먹는다고 하면서도 의외로 많은 음식을 섭취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과자나 빵은 밥 대신 허기를 달랜다는 이유로 무의식중에 먹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살을 축적하는 원동력임을 알게 되었다. 당장에 과자를 끊었다. 대신 심심한 입에 하루 종일 녹차와 보리차를 들이부었다.

마지막으로 이건 나만의 특단의 조치였지만 납량특집영화의 첫 장면처럼 '임산부나 노약자, 혈압이 높으신분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물론,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살의 특성을 조금 파악하고 나니 살이란 찔 때는 배에서부터 쪄서 신체의 말단으로 점차 분산되며 빠지고, 역으로 빠질 때는 신체말단에서부터 빠져서 맨 마지막에 배가 빠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여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몸매보정을 위해 착용하는 허리복대를 약간 무리하게 채운 뒤 뱃속이 허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혹 뱃속이 허해서 뭔가를 먹더라도 팽팽하게 조여진 복대 때문에 평소의 반도 섭취하지 못했는데도 포만감이 들면서 답답해져 오니 평소보다 덜 먹고, 활동량은 같으니 살이라고 어찌 안 빠지고 버틸 수 있는가 말이다.

다이어트, 내 몸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이리하여 나는 출산 후 1년동안 복대를 차고, 음식조절을 하면서, 부기를 빼고, 과자를 줄이며 살과의 전쟁을 한 결과 1년만에 20kg을 빼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리고 조금만 더 빼면 아가씨 때로 돌아간다는 기대에 부풀어 다이어트에 재미를 붙일 무렵, 둘째아이의 임신과 출산이 이어지며 이 과정을 복습을 했고, 역시나 같은 결과에 지금은 아가씨 때 몸매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줌마치곤 날씬하네"정도의 칭찬은 듣고 있다.

그리고 이런 칭찬보다 더 기쁜 사실은 살이 쪘을 때는 약한 무릎에 무리가 가서 저녁이면 종아리가 퉁퉁 부었었다. 그리고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었다. 몸이 무거우니 움직이는 것 또한 귀찮아서 만사에 의욕이 없었다. 만사에 의욕이 없으니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재미가 없었고, 그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며 해주는 "살을 빼야할 텐데"하는 걱정도 야유로 들리기만 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진리였다.

그런데 살을 뺀 지금은 마네킹에 걸려있는 웬만한 옷 정도는 부담 없이 걸칠 수 있다는 외모적 자신감 외에도 무릎이 덜 아프고, 아침에 일어날 때 손발이 덜 붓고, 화장실 가는 것이 즐거우며 종종거리며 움직이는 나의 발걸음이 경쾌해서 기분까지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비만은 내 몸에 살에 대한 자유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것이다.

욕심 같아서는 조금 더 무리를 해서 아줌마 몸짱처럼 배에 왕(王)자를 새기고도 싶고, 손바닥만한 비키니도 입어보고 싶다. 하지만 두 번의 피나는 다이어트에 비춰본 결과 다이어트의 진정한 의미는 내 몸을 사랑하는 것이란 걸 알기에 내 신체건강과 딱 어울리는 내 몸을 사랑하고 있다. 진짜 다이어트는 내 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함을 오늘도 살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많은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비만 = 질병'이라고?" 응모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비만 = 질병'이라고?" 응모글입니다.
#살 #비만 #출산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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