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으로 이루어진 광산이 있다고?

17인의 동유럽여행기, 네 번째 이야기

등록 2007.08.10 18:11수정 2007.08.1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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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부리('안녕하십니까?'라는 폴란드 인사말)"를 외치며 버스에 올라탔다. 소금광산에 대한 사전지식이라고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과 그 곳에서 소금을 사왔더니 매끈매끈하니 그렇게 좋더라는 정도였다. 가이드로부터 전해 들으니 이곳은 하루에 1만명 정도 관광객이 온다고 한다. 그 관광객 중의 한 사람이 되어 계단을 따라 지하로 지하로 내려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밟으며 내려가니 눈앞에 펼쳐진 소금!

a 소금광산 입구

소금광산 입구 ⓒ 허선행

a 지하지점을 알려주는 팻말

지하지점을 알려주는 팻말 ⓒ 허선행

소금을 보고서도 소금인줄도 몰랐다. 흰색은 소금 검은색은 바위? 흰색도 검은색도 모두 소금이란다.


a 이것이 모두 소금!

이것이 모두 소금! ⓒ 허선행

계단을 꺾어 들어갈 때마다 낙서가 눈에 띄었다. 객기어린 낙서, 사랑한다는 낙서, 자기가 어디출신이라는 낙서, 자기의 소속, 타인의 욕설까지 외국어로 표기되어 있는 낙서는 그렇다 치고 한국말로 되어 있는 낙서는 부끄러움이다. 낙서를 할 정도로 기다리는 시간이 길까하는 의구심은 금방 사라졌다.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수많은 관광객. 남녀노소 국적에 상관없이 질서정연하다.

a 계단을 내려 갈 때마다 눈에 띄던 낙서

계단을 내려 갈 때마다 눈에 띄던 낙서 ⓒ 허선행

a 소금광산 안내자

소금광산 안내자 ⓒ 허선행

소금광산 광부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한 번 갱 안에 들어가면 1개월 내지는 3개월까지 그 속에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진짜 소금인가 뜯어서 맛을 보니, 글쎄 정말 소금이다. 우리 일행 중에서 "필요에 의해 발명이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전적으로 동감이다. 엄마가 아이의 운동화를 빨아주기 힘들어 밑창과 위를 분리하는 운동화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광부들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소금을 만들었나보다.

a 광부들의 생활을 재현해놓은 모습

광부들의 생활을 재현해놓은 모습 ⓒ 허선행

수레와 마차를 끌기 위해 망아지를 굴속에 들여와 큰 말이 되었을 때까지 죽도록 일을 시켰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희생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소금광산에서의 성당은 규모도 크려니와 그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었다. 요한바오르 2세의 동상을 비롯한 성당 조각은 전문가가 아닌 세 명의 광부에 의해 만들어졌단다.

한참을 걷다보니 벽면에 그들을 알리는 현판이 있었다. 세 명이라고 하더니 현판은 네 개였는데, 맨 마지막 현판은 '무명의 벽'이라고 한다. 세 분의 광부들이 당신들 말고도 이곳에서 애쓴 광부들을 위해 한 개의 현판을 비워 둔 것이란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랄까, 마치 여백의 미를 느끼는 것처럼 한결 푸근하고 따뜻해졌다.

a <무명의 벽>

<무명의 벽> ⓒ 허선행

"더운 여름에 우린 휴가를 잘 온 것 같다"는 소리에 마치 그들의 세계를 읽기위해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갔다가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금호수에서 들려주는 쇼팽의 '이별'은 광부들의 발자국 소리, 노동소리와 함께 들려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이 곳 소금광산과도 이별이다. 안녕!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괴테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 손엔 책을 다른 한 손에는 돌소금을 들고 있는 괴테 앞에서 나도 미래의 괴테를 꿈꾸며 말이다. 소금광산에서는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 모든 게 소금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바닥에 블록처럼 보이는 것도 소금이라니 말이다. 심지어는 샹들리에도.

a 괴테의 동상

괴테의 동상 ⓒ 허선행

a 광장에서의 단체사진

광장에서의 단체사진 ⓒ 허선행

내가 글을 올린다고 하니 가이드가 특별선물이라며 바닥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샹들리에를 찍어줬다.


a 소금으로 만들어진 샹들리에

소금으로 만들어진 샹들리에 ⓒ 허선행

작은 블록처럼 보이는 것도 소금이라고 하는데 타일처럼 보이기 위해 소금을 일정한 틀에 찍어 만든 거란다. 도대체 소금이 아닌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 몸에 소금이 달라붙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너무나 빨리 진행하며 나가는 안내자 덕분에(다른 팀이 기다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차원으로 보임) 설명을 제대로 못 들어 단편적인 골자만 알아들었다. 예를 들어 소금광산에 가스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못 듣고 '가스'두 단어만 듣는 형국.

설명을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결론은 그들의 노고와 노력, 연구로 우리가 지금 이렇게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폴란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졌다. 비록 연간소득이 우리보다 못하다지만 마음이 풍요로워 보인다.

나오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수직으로 오는 시간은 불과 40초. 줄줄이 비엔나처럼 4칸이 함께 엮여 올라와 문이 덜컹 열렸다. 그것도 내가 생각했던 뒤쪽에서. 마치 소금광산에서 석 달 동안 열심히 일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소금광산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에겐 힘든 시간이었다.

나오는 길에 알록달록 예쁜 소금을 샀다. 가이드는 우리나라 죽염이 더 좋다고 했지만 이곳의 소금이 좋더라는 지인의 말도 있고 남은 폴란드 돈도 써야했다. 집에 가서 사용해 보면 소금에 대한 이야기가 두고두고 나올지 누가 아는가.

소금광산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토마토스프와 감자, 닭가슴살 튀김이다. 토마토스프를 해장국인양 후륵후륵 마시며 시원하다는 분, 느글거리기도 하고 기름이 둥둥 떠서 못 먹겠다는 분, 빵이 후식이지 우리에게는 주식이 아니라며 살기위해 먹는다는 분, 칼칼한 칼국수에 배추겉절이를 찾는 분들의 이야기가 내겐 다른 나라 사람의 이야기로 들린다. 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특이체질로 전천후다.

a 재래시장이 있던 마을

재래시장이 있던 마을 ⓒ 허선행

슬로바키아의 타트라 공원으로 이동한다. 버스로 세 시간. 이번여행의 이동경로는 하루 평균 4시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빚내서라도 여행 다녀와서 나이 들어가며 갚으라는 지인의 말처럼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먼 거리 여행을 다녀야겠다. 그러고 보면 76세의 연세에도 함께 뒤처지지 않고 오시는 지인의 어머니는 대단하시다. 나이 드셨다는 이유로 친정어머니는 열외로 생각하고 함께 오려는 생각조차 못한 내게 자책의 시간을 갖게 한 분이시다. 소금광산 계단 내려 갈 때 젊은 사람들도 힘들다고 하던데, 지인의 어머니가 걱정이 된다.

a 재래시장

재래시장 ⓒ 허선행

국경을 넘어가기 전 재래시장에 들렸다. 오늘은 일정이 끝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 재래시장은 우리네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진열되어있는 상품만 다를 뿐. 그 곳은 휴양지가 가까워서인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놀러 온 차림의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그 중에서 꼭 인형처럼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그 아이가 넘어져 우는데 우리 귀에 "아퍼"라고 들린다. 엄마가 무어라고 물으니 대답소리도 "네"라고 들린다. 이상하게 우리말로 들린다.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우리일행이 일회용밴드를 건네주니 고맙다고 인사하는 아이 아빠는 외국인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보아 온 선량한 얼굴의 가장이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여럿이 가게에 들렀다. 국경을 넘기 전 폴란드 돈을 다 썼던 우리는 유로화가 통용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침 동전이 있다며 한 분이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니 자연스럽게 줄이 만들어졌다. 주머니 속의 동전을 모조리 꺼내 주니 어이없게도 가져 간 돈은 아이스크림 한 개 값이란다. 15여명 정도 됐던 우리 일행은 머쓱한 표정보다는 파안대소. 나중에 안 사실은 동전 중에 유로화 센트도 있어 안 받은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한 개 받았기에 서로 양보하게 되고 그래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시장을 나오려는데 마침 유로화를 받는다는 과일가게가 있다. 5유로에 4팩이나 주는 천도복숭아를 들고 오며 흐뭇해하는 지인. 환율을 제대로 계산한 건지 과일을 판 총각이 손해를 안 본건지 걱정이 되었다. 아무튼 우리는 천도복숭아와 포도를 잔뜩 사왔다.

우리의 재래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청주에 있는 육거리 시장에 가서 달러를 주고 물건을 달라면 주겠냐며 이곳 재래시장에서 유로화를 받지 않는 이유를 대다보니 자연스레 청주이야기가 나 온 것이다. 식구들이 보고 싶다.
#폴란드 #소금광산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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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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