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80년 광주를 보고 울지 않은 이유

[인턴기자의 <화려한 휴가> 감상기] 아직 그들을 잊지도 용서하지도 못했다

등록 2007.08.11 12:11수정 2007.08.1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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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눈물을 강요하지 않았어도 그 실체만으로 슬픈 이야기 5.18 광주민주화운동 ⓒ 기획시대


"형은 이 영화 보실 때 꼭 조조로 가서 보세요. 펑펑 울어도 창피하지 않게."

동기 인턴기자가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난 후 처음 건넨 말이었다. 내가 슬픈 영화에 쥐약인 것을 알고 있던 그로서는 5ㆍ18이라는 '눈물의 뇌관'을 품은 이 영화를 추천하기가 염려됐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일까. 7일 동기 인턴기자들과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나는 영화 내내 흐느끼던 다른 동기들과 달리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다는 이유를 들기엔 <쉰들러 리스트>에 오열했던 나였다. 그렇다고 타고난 울보가 감수성의 부족을 탓할 수도 없었다.

1980년 피와 눈물의 바다였던 광주, 그 생지옥을 보고도 내가 울지 않은 혹은 울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던 80년의 광주

영화는 택시운전사 민우(김상경)가 광주의 들판 길을 유유히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에게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수재 동생 진우(이준기)가 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둘뿐인 가족이지만 감독은 결코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우가 다니는 성당의 신애(이요원)에게 마음을 뺐긴 민우의 짝사랑을 다루는 장면에서는 연애영화의 풋풋함마저 묻어난다.

그러나 5월 18일이 가까워 온 광주는 그들에게 많은 자유를 허락지 않았다. 광주 금남로에 울려 퍼진 애국가를 신호로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질은 시작된다. 계엄군에 반대하는 모든 시민이 그들에겐 폭도였다. 반면 계엄군에 맞서 싸우는 시민군은 눈물겹게 선량하다. 계엄군을 위협할 목적으로 그들에게 TNT 폭탄을 보내는 민우에게 "정녕 폭도가 되려 하느냐" 꾸짖는 흥수(안성기)의 모습에서는 독립운동 시절의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무수히 죽어나가는 시민들의 모습과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의 아픔에도 영화는 쉽게 감정의 이입을 허락지 않는다. 광주를 다룬다는 부담감이 커서였을까? 관객의 눈물을 갈구하는 감독의 조급증은 오히려 비극의 깊이를 얕게 만들었다. 굳이 '신파라는 립스틱'을 칠하지 않았어도 5ㆍ18 그 자체로만 충분히 비극적이었을 것을 자연스러움이 빠진 80년의 광주는 어딘가 어색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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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해석보다는 재현에 집중했다. 그 결과 5.18에 무지한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 ⓒ 기획시대


충분히 더 잘 만들 수 있었던 <화려한 휴가>

199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현실의 자연스러움이 깃든 영화의 좋은 예다. 영화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시대 유태인 수용소의 참혹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시종일관 해학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다. 결코 역사의 비극을 과장하지도 관객의 울음을 구걸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영화는 나치를 다룬 어떤 영화보다도 비극적이다. 어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잃은 아버지와 그 사실을 모른 채 영화 마지막 실제 탱크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들의 상황 대조는 어떤 신파극보다 더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은근하고 절제된 노출은 시종일관 눈물을 강요하는 <화려한 휴가>보다 후유증 큰 감동의 여진을 남긴다.

<화려한 휴가>는 평면적인 선과 악이 시종일관 대립된 채 진행된다. 극의 초반 작전을 위한 비행기가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가는 것이 이상하다는 계엄군의 내면적 고뇌에 대한 설명은 영화 어디에도 없다. 영화에 시민군을 탄압하는 계엄군의 깊은 고뇌가 담겼었다면 훨씬 더 비극의 깊이를 더 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영화가 내세운 악의 근본적 실체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촉발된 구체적인 계기와 진행과정이 생략된 채 민우를 둘러싼 주변인의 비극을 축으로 80년의 광주를 축소시킨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화려한 휴가>가 다큐멘터리가 아닌 상업영화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역사의 해석이 아닌 재현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하다못해 영화가 끝난 후 체코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흐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현재 5ㆍ18의 대략적인 역사적 평가를 삽입하는 친절함을 베풀었다면 어땠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흐느꼈던 막내가 "그런데 5ㆍ18이 왜 일어났어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느꼈던 답답함은 응당 영화가 풀어냈어야 할 몫이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박수 받을만한 <화려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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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려한 휴가>의 포스터 문구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 기획시대

그렇지만 영화의 기술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휴가>의 의미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 '썩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화려한 휴가>로 인해 '썩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 걸음에 멀리까지 내딛지는 못했지만 첫 걸음을 뗀 것만으로도 흔쾌히 박수 쳐 줄만한 이유다.

5ㆍ18과 4ㆍ19의 구분조차 못했지만 영화를 보고난 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서적을 찾아보겠다는 막내의 말이나 평소 웬만해선 서울 밖을 벗어나 본 적도 없지만 영화에 감동해서 꼭 한 번 망월동 국립묘지를 찾겠다는 동기 인턴기자의 말에서도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는 나타나고 있었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태인 대학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이스라엘 속담에 "용서는 하겠지만 잊지는 않겠다"는 말이 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역사의 과오를 끊임없이 반성하고 사죄하는 독일이지만 사과와 용서만으로는 쉽게 잊을 수 없는 것이 남겨진 피해자의 마음이다.

정부에서 5월 18일을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제정한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은 특정 지역의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전 국민적 차원의 민주화운동이었다는 역사적 평가와 정당성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사죄는커녕 반성의 빛조차 없이 시퍼런 권력으로 살아있는 그들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80년의 광주는 아직 그들을 잊지도 용서하지도 못했다.

광주를 생각하며 목 놓아 울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내게 눈물은 이중적이다. 피 끓는 분노에 복받친 눈물을 흘릴 때에도 눈물과 동시에 분노는 사그라지곤 했다. 눈물을 흘린다는 반응 자체가 용서라는 행위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화려한 휴가>를 본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이대로는 울 수 없었다.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며 수백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민우의 처절한 모습에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신애의 눈물겨운 외침에도 '아직은 아니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며 쓰린 맘을 다잡았다.

광주를 피눈물로 물들게 한 당신들이여. "총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극중 예비역 대령 흥수의 말을 곱씹길 바란다. 그 속에서 사람의 무서움을 알고 역사의 무거움을 통감하길 바란다. 그리고 80년의 광주 앞에 진심으로 무릎 꿇길 바란다.

울 준비는 되어있다. 영화를 보며 흘리지 못했던 '광주를 위한 눈물'을 마음 놓고 펑펑 흘릴 날을 기다려본다.

덧붙이는 글 | 조광민 기자는 <오마이 뉴스> 6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덧붙이는 글 조광민 기자는 <오마이 뉴스> 6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화려한 휴가 #5.18 #광주민주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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