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 공연 3색 즐기기

배우도 무대도 뜨겁다 그러나 속은 시원

등록 2007.08.13 10:29수정 2007.08.1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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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령 기자] 대학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7~8월이 공연 비수기라는 것도 옛말. 올여름 다양한 장르의 소극장 공연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소극장 공연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더위도 식히고 문화욕구도 채울 수 있는 알찬 소극장 공연 3편을 직접 가보고 소개한다.

2030세대를 위한 연극 '썸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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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나 결혼해…. 그 전에 한번 만나."

날 버리고 떠났던 그놈이 10년 만에 연락을 해왔다. 결혼 전에 한번 보자고 한다. 그래서 나온 4명의 여자들. 그리고 끝까지 여자들을 울리는 나쁜 남자 강진우.

요즘 대학로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극은 '썸걸즈'다. 입소문을 타고 연극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늘어나 공연도 오는 19일까지 2주 연장했다. 지난 주말, 공연이 열리고 있는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을 찾아보니 소문대로 인산인해였다. 관객은 주로 2030 여성들. 여자친구 때문에 억지로 끌려온(?) 남자들도 몇몇 보였다. 그런데 요즘 여자들, 왜 이 연극에 열광하는 걸까?

우선 '썸걸즈'의 최대 매력은 사랑과 이별을 경험해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 '저거 내 얘기 아냐?'란 생각이 들 정도로 '썸걸즈'에는 이별 후 남녀의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남자들이 보면 뜨끔할 정도로 이별 전후 남자들의 속내도 그대로 담겨 있다.

특별한 반전이나 메시지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여자들은 강진우와의 만남에서 그동안 애써 지우려 했던 아픔을 토해내지만, 그는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진우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발견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옛 여자친구들에 의해 하나씩 폭로되는 과거는 경악할 만한 것이지만, 그는 여전히 귀엽고 뻔뻔하다. 여자관객들은 그에게 실컷 욕을 퍼붓고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귀여운 바람둥이 캐릭터를 끝까지 미워하긴 힘들다.


강진우 역에는 배우 이석준과 최덕문이 더블 캐스팅됐다. 박호영, 우현주, 정재은, 정수연 등 30대 여배우 4명이 전 여자친구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예매를 서두를 것. '수요일의 W데이' 등 여성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도 마련됐다. 황재헌 연출. 15세 이상 관람가. 평일 오후 8시, 토요일·공휴일 오후 3시, 6시 공연. 일반 3만원. 문의 (02)766-6007


브로드웨이 클럽뮤지컬 '동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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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클럽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당신이라면 처음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한쪽 구석으로 가 숨게 된다. 어두컴컴한 지하 스탠딩바에는 100여명 정도가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다. 사방으로 펼쳐진 스테이지 무대에는 반라의 남녀 댄서들이 춤을 추고 있고, 신나는 디스코음악이 펑펑 울려퍼진다.

"내가 올 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머뭇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면 예상 외로 연령층이 다양하다. 2030세대가 주를 이루지만 동성 친구들, 남편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40~50대 여성들도 꽤 눈에 띈다. 2030세대는 클럽 분위기를 즐기는 동시에 뮤지컬을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중년관객들은 클럽뮤지컬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젊은 시절 유행했던 디스코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클럽뮤지컬 '동키쇼'를 찾는다.

지난 공연 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동키쇼'가 시즌2 공연을 시작했다. '동키쇼'는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세계 12개 도시에서 매진 행렬을 하던 클럽뮤지컬을 우리식으로 각색한 것.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디스코클럽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패러디하고, '밤이면 밤마다' 등 한국인 애창곡을 삽입해 흥을 돋웠다.

'동키쇼'가 더 뜨거운 이유는 탄탄한 몸매의 남자배우들 때문. 모델 김지갱, 인간극장 '친절한 태용씨'편에 나왔던 모델 이태용씨 등의 '코코보이즈'들이 반라의 차림으로 선정적인 춤을 춘다. 기존의 성인극에서는 여성들이 벗었다면 '동키쇼'에선 남성들이 벗는다.

제작진은 '동키쇼'가 여성을 위한 성인뮤지컬이라고 설명한다. 남성들이 총각파티를 즐기듯 여성들도 이제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파티를 즐겨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래서 '동키쇼'에서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신나게 춤추고 남자배우들의 몸도 마음껏(?) 감상하는 여성들을 볼 수 있다.

19세 이상 관람가. 9월30일까지 대학로 동키쇼 전용홀. 화요일에는 여성관객에게 20%, 토요일에는 여성 3인 이상 입장시 20% 할인해준다. 일반 4만원. (02)3443-6487

여성뮤지컬 '헝겊인형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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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헝겊인형의 꿈'은 여성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웃고 즐길 수 있도록 오락적 요소를 가미했지만 사실 말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가부장제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극에는 잘못된 결혼으로 한평생을 불행하게 보낸 엄마와 두 딸, 그리고 나쁜 남자들이 등장한다. 엄마는 매우 모순된 결혼관을 갖고 있다. 잘못된 결혼의 최대 피해자이지만 정작 딸들은 부잣집에 시집보내려고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은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극은 여성들의 영원한 딜레마, 결혼의 아이러니를 기가 막히게 포착했다. 지긋지긋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결혼에 대한 여성들의 이중심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무거운 주제라고 지루하기만 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 인형뮤지컬인 만큼 볼거리, 들을 거리가 넘쳐난다. 우선, 인형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관객의 시선을 확 잡아끈다. 배우들이 노래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짜 인형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또 아기자기한 소품과 배경, 소극장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공연장도 여성관객들의 발길을 끄는 요인.

그래서인지 '헝겊인형의 꿈'은 꾸준히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으며 벌써 네번째 앙코르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인아소극장에서 오는 26일까지 공연. 일반 2만5000원, 청소년 1만5000원. 문의 (02)745-7610

창작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 세 주역
"가깝고도 먼 사이… 엄마와 딸의 소통 그렸어요"

매일 새벽 2시가 되면 순대국집에 딸린 방구석에선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서른세 살의 '노처녀' 지선은 '고구마'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방송 CJ(Cyber Jockey)가 되어 사람들의 신청곡을 틀어주거나 기타를 치며 자작곡을 부른다. 결혼도 안하고 백수로 살고 있는 딸이 못마땅한 것은 엄마로선 당연한 일이다.

이달 10일부터 오는 10월7일까지 서울 중구 흥인동에 위치한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는 순대국집을 배경으로 소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어머니와 딸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다. 특히 작품을 만들어낸 주역들이 극중 주인공과 같은 서른세 살의 싱글 여성 3명이어서 눈길을 끈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오미영, 작곡과 음악감독을 맡은 노선락, 프로듀서를 맡은 추민주씨가 그들. 30대 여성으로서 느끼는 인생에 대한 불안감과 가족간의 갈등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셋이 수다를 떨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노처녀 셋이 모였으니 좀 얘기가 많겠어요. 아르바이트하던 경험, 시집가라고 엄마한테 매일 듣는 잔소리 등을 얘기하며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갔죠."(노선락)

오미영씨는 "'한밤의 세레나데'는 엄마와 딸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라고 전했다. 두 주인공의 직업을 순대국집 주인과 인터넷 방송 CJ로 설정한 것도 서로의 일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엄마와 딸의 갈등을 심화시키기 위한 장치란다.

"일정한 벌이도 없이 노래나 해대는 노처녀 딸과 매일 똑같은 잔소리를 하면서 징그러운 순대를 주물럭거리고 말도 험하게 하는 엄마는 소통하기 어렵죠. 그러나 엄마와 딸 이전에 이들은 여자예요. 서로가 여자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게 소통의 시작이 아닐까요?"(오미영)

작품 속에서 서로 갈등을 반복하던 엄마와 딸이 화해를 하게 되는 계기는 지선이 감전사고를 당한 후 엄마의 젊은 시절 연애를 목격하는 환상여행을 하면서부터. 언뜻 영화 '인어공주'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오미영씨는 "작품에 작은 판타지를 넣고 싶어 과거로 가는 설정을 했다"면서 "무엇보다 매체의 차이점 때문에 판타지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슬쩍 넘어가는 영화와 달리 분명한 연극적 요소가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세 사람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창작뮤지컬계의 젊은 기대주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추민주씨는 젊은 연극인들이 만든 극단 '수박'의 대표로 뮤지컬 '빨래'를 연출해 2005년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작사상과 극본상을 수상했다. '빨래'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오미영씨는 이번이 첫 연출이다. 이선락씨는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작업이 생활이고, 생활이 재미고, 또 재미있다 보면 갈등도 있습니다. 첫 연출이라 서툰 저를 두 사람은 친구로서, 동료로서, 선배로서 이해해주고 이끌어주었죠."(오미영)

"저랑 비슷한 책을 사 읽는 사람은 민주씨가 처음이었어요. 결단력이 있고 추진력도 굉장한 사람이죠. 미영씨는 가정환경도, 식습관도 비슷해 편한 사람이죠.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작품에도 녹아든 것 같아요."(노선락)

"미영씨는 음식을 잘 만들어요. 선락씨는 맛있는 음식점을 잘 알고 있구요. 어느 때 어떤 음식을 먹으면 좋을지, 시장의 허름한 노점부터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전문가죠."(추민주)

실제 이들의 30대는 어떨까. 오미영씨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이 도전으로 다가오면서 바쁜 요즘이 33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추민주씨는 "일도, 놀기도 열심히 하며 나를 위한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라고. 노선락씨는 "결혼을 안하고 있으면 싱글인데 유난히 30대 싱글을 노처녀라고 하며 헐값 취급한다"면서 불만을 표시하고 "역동적으로 자기 일을 하면서 사는 아름다운 30대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답변했다.

"우리나라 뮤지컬들이 스타 마케팅을 통해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게 현실이죠. 그러나 관객들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거품은 곧 빠질 거라 믿어요. 저희 같은 창작자들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내면 될 일이구요."

척박한 창작뮤지컬 시장에서 극단을 이끌고 있는 추민주씨의 각오가 믿음직스럽다.

8월 소극장 공연 정보

[콘서트]

● 이적은 공연이다 = 얼마 전 소극장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가수 이적이 앙코르 공연을 갖는다. 오는 22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동덕여대 예술센터. (02)747-1253

● 빅마마의 첫번째 소극장 나들이 = 실력파 가수 빅마마도 처음으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갖는다. 대학로 씨어터SH, 오는 31일부터 9월9일까지. (02)3446-3225

[연극]

● 8인의 여인 = 프랑스 극작가 로베르 토마의 희곡 '8명의 여인'을 원작으로 한 연극. '썸걸즈'를 연출한 황재헌씨의 연출로 오는 25일부터 10월7일까지 대학로 이다1관에서 개막. (02)742-9005

[뮤지컬]

● 엄마는 안 가르쳐줘 = 성에 대한 궁금증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주는 창작 어린이 뮤지컬. 오는 26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에서 공연된다. 2006년 서울문화재단 창작뮤지컬 지원사업 선정작. (02)744-7304
#대학로 #연극 #뮤지컬 #썸걸즈 #동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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