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염원이 하늘과 통해 비도 내리지 않았다

11일 열린 '2007 석수시장 통일노래자랑' 현장

등록 2007.08.13 12:02수정 2007.08.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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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석수시장 통일 노래자랑 ⓒ 이민선

11일(토요일) 오후 12시 햇볕이 쨍쨍 내리 쬐고 있었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다. 이미 지난주에 한 번 연기했던 터였기에 최대한 신중해야 했다. 지난 주 토요일(8월4일) 야외에서 노래자랑을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비' 때문에 1주일 연기했다. 7일경(화요일)에 아예 2주일 연기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11일에도 비가 온다는 이유로(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행사 예정일인 11일과 그 다음날까지 계속 우산 표시(비가 온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전화로 행사 주최 관계자들과 약식 회의를 했다. 일기 예보가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에 2주일 연기하는 것을 검토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뜻밖에 그대로 강행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일주일 연기한다고 통보를 한 상태에서 다시 일주일 더 연기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고, 2주 후 '비'가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유였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었기에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이미 발표된 마당에 행사를 강행하는 것이 더 무리라고 생각했다.

정오까지 날씨를 확인해서 비가 내리거나 비가 내릴 징후가 농후하면 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 다행히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기예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기에 일단 행사 준비에 들어갔다. 행사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한 사람들에게 '2007 석수시장 통일 노래자랑'개최 준비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통일 노래자랑에서 맡은 역할은 '사회자' 였다.

약속 지키기 위해 喪(상) 중에도 멋진 무대 보여준 출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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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출전자(특별상 수상 했다) ⓒ 이민선

"광복62주년입니다. 동시에 분단 62주년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광복은 통일 이후에나 올 것입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석수동 주민들과 함께 '2007 석수시장 통일노래자랑' 힘차게 출발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가 끝나자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오후 6시, 석수시장 주차장에 무대가 설치되고 밴드가 등장했다. 그 앞에는 수 백명의 관중이 모여 앉아 있었다. 드디어 '아기다리고고기다리던' 노래자랑이 시작된 것이다.

흥겨운 축제 마당에 '우리 민족의 하나됨' 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아내야 하는 것이 사회자의 임무였다. 이 때문에 첫 번째 멘트는 '광복과 통일'을 주제로 삼았다. 혹여, 즐거운 축제 마당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뱉은 멘트였는데 다행히 호응은 뜨거웠다. 박수와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반주를 맡아준 것은 '만안교 밴드'다. 행사를 위해 며칠 전에 지은 이름이다. 음악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모인 석수동 주민 몇 분이 기꺼이 나서줬다. 이들은 주로 '돈 안 되는 공연'만을 하러 다닌다. 스스로 철저한 아마추어라 생각하며 회갑잔치 등에서 무료 연주를 한다.

"만약, 돈을 받는다면 일하는 기분이 들어서 재미도 없고 지루할 것 같다." 만안교 밴드의 리더인 방석근(60·삼천리 가스 프라자 대표)씨는 이렇게 말했다. 순수한 취미생활로만 즐기고 싶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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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당하고도 약속 지키려 출전한 오00씨 ⓒ 이민선

"저 첫번째 순서로 넣어 주세요. 빨리 가야 하거든요. 이미 약속했던 일이라 오늘 힘들게 나왔어요."
"노래자랑 끝나고 시상식이 있는데 결과 보고 상 받을 일 있으면 받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받아도 돼요. 그런데 너무 많이 울어서 목소리가 나올는지 모르겠네요."

행사를 시작하자마자 순서를 바꾸어 달라고 하는 출전자가 있었다.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고 얼굴에 침통한 표정이 흘렀다.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경황이 없어 묻지 못했다. '황진이' 라는 노래를 기성 가수 못지않게 불러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예술상을 받았다. 노래 끝내고 황급히 가버렸지만 심사위원들은 그에게 예술상을 수상했다. '황진이'라는 노래에 어울리는 복장을 갖추고 멋진 안무를 곁들였다. 이 점이 높게 평가되었을 것이다.

시상식도 개의치 않고 빨리 가 보아야 한다고 한 이유는 행사가 모두 끝난 다음 뒤풀이 자리에서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날 행사 직전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슬픔을 참고 노래를 불렀다. 그가 받은 '예술상' 은 뒤풀이 자리에서 더욱 빛났다.

재래시장을 살리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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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가게 사장님 ⓒ 이민선

"지금 야그(얘기)좀 할게요."
"노래 끝내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무대에 올라오자마자 "야그"부터 한다는 참가자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하는 분이다. 석수동 주민들이 시장보다 대형 마트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사회자가 참가자의 고집에 밀릴 수는 없는 법, 일단 노래를 부르게 했다.

"주민 여러분 석수시장에도 좋은 물건 많습니다. 값도 비싸지 않구요. 아 글구 깎는 재미도 '솔찬허지' 않습니까. 멀리 있는 00마트 나 00마트 가지 마시구 가까운 석수시장으로 오세요. 없는 거 빼구 다 있습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야그' 를 했다. 노래자랑에 출전한다는 통보를 할 때부터 할 말이 있다는 언질을 했던 터였다.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마디 더 보태줬다.

"오늘 석수시장에서 통일노래자랑을 개최한 이유는 재래시장을 살리자는 취지입니다. 통일도 중요하지만 시장 상인들에게는 시장을 살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각종 대형마트에 밀려 우리의 재래시장은 계속 몰락해 가고 있습니다. 재래시장 이용해서 우리 이웃이기도 한 시장 상인들 웃게 해 줍시다."

'야그'가 끝난 후에도 노래를 한 곡 더 부르게 해 달라고 '생떼'를 썼다. 그러나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축제라도 규칙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관중들에게 물었다. "축제라도 규칙은 지켜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시는 분은 박수를 보내달라"는 물음에 관객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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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단도 신이 나고 ⓒ 이민선

행사 마지막 순서는 참가자들 모두 손에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을 함께 부르는 것이었다. 행사 마지막까지 관객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경품 추첨, 통일 퀴즈 등의 순서를 막바지에 넣었다. 손에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목 놓아 부르기 위해서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이미 빠져 나가고 없었다. 경품 추첨이 끝나자마자 썰물 빠지듯 빠져 나갔던 것. 행사를 마치면서 이 점이 아쉬웠다. 흥겨운 노래자랑의 열기를 마지막에 모두 모아 통일의 열기로 만들어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점.

그러나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스스로 평가해 본다. 비록 절반의 인원이었지만 마주 잡은 손과 손을 통해 우리민족 하나됨의 의지는 충분히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행사를 마칠 때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과 석수동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의지가 하늘과 통한 것이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안양시 #석수동 #통일 #노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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