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가 클까? 정서적 거리감이 클까?

[연해주-동북3성 답사기 1]동해 바다를 건너 연해주로

등록 2007.08.14 10:28수정 2007.08.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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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인천에서 중국 톈진까지 서해 바다를 건너본 이후 처음이니, 참 오랜만에 배를 통해 다른 나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속초항에서 망망대해 동해 바다를 가로질러 연해주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작은 항구, 자루비노(Zarubino)에 이르는 대략 하루짜리 여정입니다.

기실 연해주에 가자면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배편이 경비 부담이 적다는 것과 날씨가 허락된다면 눈이 시리도록 푸른 동해 바다 위에서 벅찬 일몰과 일출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는 데에 더 큰 매력이 있습니다.


여객선 터미널 곳곳에 러시아어와 우리글이 함께 적혀 있어, 속초항이 러시아로 향하는 관문임을 알겠다.
여객선 터미널 곳곳에 러시아어와 우리글이 함께 적혀 있어, 속초항이 러시아로 향하는 관문임을 알겠다.서부원
오후 3시 경, 출국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좁디좁은 터미널 대합실은 북새통입니다.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이른바 ‘보따리상’들도 여럿이지만, 대개는 러시아와 중국의 접경인 훈춘(琿春)을 거쳐 백두산을 찾는 단체 관광객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일행과 같은 답사 여행객은 퍽 드문 경우에 속합니다.

늘 그렇듯 통관 검사 전 출입국 신고서를 쓰게 되는데, 오로지 러시아어로만 되어 있어 여간 난감한 게 아닙니다. 대부분 국가의 경우, 자국어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어 큰 불편함이 없는데 러시아만큼은 유별난 셈입니다.

러시아의 심장부인 모스크바(Moscow)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burg) 지역도 이와 같은지는 모르지만, 러시아와 영어권 국가 간의 반목(?) 때문이라거나, 국제적 감각이 떨어져서, 혹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대륙적 기질 탓이라는 둥의 다소 ‘황당한’ 이유보다는 그저 외부에 개방된 지 얼마 안 돼 아직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까닭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속초항과 자루비노항을 오가는 동춘페리호의 갑판. 저 멀리 아스라하게 속초항의 모습이 보인다.
속초항과 자루비노항을 오가는 동춘페리호의 갑판. 저 멀리 아스라하게 속초항의 모습이 보인다.서부원
대합실을 나서니 터미널 건물보다도 더 큰 배가 정박해 있습니다. 바깥에서 세어 보니 배의 층수가 무려 7층입니다. 아래의 세 개 층에는 차량이나 대형 화물을 싣고, 그 위로 객실과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안내 방송에서부터 식당의 음식 메뉴에 이르기까지 배 안은 아직 한국입니다. 아주 가끔 낯선 러시아어가 들리긴 하지만, 승객뿐만 아니라 승무원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초항의 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져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쪽빛 동해 바다조차 검푸른 러시아‘제(製)’ 바다 빛깔로 바뀌는 듯 느껴지고, 시계 바늘 역시 두 시간 앞당기라는 안내 방송에 ‘낯선 두려움’이 깔립니다. 동터오는 아침, 자루비노항에 도착할 즈음에는 외려 한국이 생경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연해주는 우리나라 표준시와 같은 경도(135°E)에 위치하면서도 오호츠크 지역 표준시(165°E)를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보다 두 시간이 빠르고, 인접한 중국의 동북지방보다는 무려 세 시간이나 차이가 납니다. 이를테면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 상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시계 바늘을 몇 바퀴씩 돌려야 하는 큰 불편이 따르는 셈입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저 멀리 '뭍'이 보인다. 모르긴 해도 북녘 함경도 어드메가 아닐까 싶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저 멀리 '뭍'이 보인다. 모르긴 해도 북녘 함경도 어드메가 아닐까 싶었다.서부원
어쨌든 나라 안에서도 9시간의 시차가 나는 세계 최대의 영토를 자랑하는 러시아와, 그에 못지않은 넓은 땅덩이를 지녔으면서도 모든 곳이 수도 베이징(北京)의 시간을 일률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희한한(?) 중국의 중앙집중식 시스템을 실감할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 나라들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여전한 차이가 문화든, 경제든 활발한 교류를 통해서만이 줄어들고 서로 인정될 수 있다고 한다면, 지금 러시아의 연해주와 중국의 동북 지방을 두루 답사하려는 이번 여정이 적어도 제 안에 담긴 편견을 허무는 데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더불어 이번에 만나볼 해외 동포들의 모습을 통해 과거 외세에 휘둘리며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던 한 맺힌 ‘역사’와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차분히 정리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해 바다의 한 가운데, 배 위에서 본 일몰. 구름이 끼어 뿌연 모습이지만, 그래도 여느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관이었다.
동해 바다의 한 가운데, 배 위에서 본 일몰. 구름이 끼어 뿌연 모습이지만, 그래도 여느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관이었다.서부원
밤 11시, 러시아로 치자면 새벽 1시,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만이 이곳이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갑판 위로 올라서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무수한 별들이 쏟아질듯 환합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밤바다는 검은 색, 밤하늘은 하얀 색’이라더니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별빛 눈부신 밤하늘의 경이가 우리 일행의 이번 답사 여행을 축복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벌써부터 자루비노항에서의 아침 풍경이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5일까지 (사)동북아평화연대에서 주관하는 '연해주-동북3성 답사'에 참가하였습니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를 시작으로 하바롭스크를 지나, 중국 할빈, 옌지, 지안 을 답사하는 여정이었습니다. 그 곳에 산재한 옛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답사하고 현지 고려인, 조선족 동포들의 만나본 후의 생각과 느낌을 이곳에 십여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비록 잡기적인 여행기록일 뿐이지만, 이 지역 여행을 꿈꾸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5일까지 (사)동북아평화연대에서 주관하는 '연해주-동북3성 답사'에 참가하였습니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를 시작으로 하바롭스크를 지나, 중국 할빈, 옌지, 지안 을 답사하는 여정이었습니다. 그 곳에 산재한 옛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답사하고 현지 고려인, 조선족 동포들의 만나본 후의 생각과 느낌을 이곳에 십여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비록 잡기적인 여행기록일 뿐이지만, 이 지역 여행을 꿈꾸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동해 #연해주 #러시아 #자루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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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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