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속에 아인슈타인과 히딩크가 있다

[서평] 조영민의 <센스영어 ( Sense English )>

등록 2007.08.16 12:11수정 2007.08.16 14:22
0
원고료로 응원
외웠는가? 그렇다면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외우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 Albert Einstein (1879 ~ 1955) -

위 문구는 필자가 곧 소개할 센스영어의 앞 부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저자는 짧지만 강렬한 이 문구에 아마도 자신의 마음을 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눈에 거슬린다. 영어라는 언어를 이야기하면서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 말이다. 필자는 수학과 언어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필자가 학창시절 주의가 산만하다는 행동발달사항과 함께 받아온 수학과 영어의 성적표가 이를 증명해준다.(개인적으로 영어 울렁증보다는 수학 울렁증이 더욱 심하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저자가 폼을 잡기 위해 명언을 인용한 경우이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의 저자 조영민씨는 작가일 외에도 영화평론을 하고 있다. 그가 썼던 리뷰 중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매트릭스>의 리뷰를 한번 들여다보자.

"결국 현실세계에서 초자아는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매트릭스>는 그러한 합리적인 이성을 2(two)로 상징한다. 1편의 첫 장면에서 경찰이 하는 대화를 잠시 엿들어보자.

Lieutenant -
I think we can handle one little girl.
I sent two units. They bringing her down now.

왜 'one unit'도 아니고 'three unit'도 아닌 'two unit'을 설정했을지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2편에서 트리니티와 추격신을 벌이는 친구들도 'twin'이다. <매트릭스> DVD를 가지고 있다면 영어 자막을 켜놓고 대사에 나오는 숫자를 중심으로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수십 개의 단서가 잡히게 될 것이다.(참고로 트리니티가 처음 등장하는 방의 호수는 303, 네오의 방은 101이다.)"- 조영민씨의 메트릭스 리뷰 中 -


조영민의 센스영어<Sense English>
조영민의 센스영어황매
지금 이 리뷰를 인용한 것은 메트릭스를 이해해보자고 쓴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아직도 이게 뭔 소리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무식한 필자가 이 리뷰를 인용한 것은 바로 센스영어의 저자인 조영민씨가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볼 때 얼마만큼 세밀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염두하고 바라보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숫자 하나하나의 의미까지 살펴보는 눈썰미를 가진 저자가 과연 아무 생각 없이 이 명언을 인용했을까하는 질문은 결국 우문으로 남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수학과 영어는 다르지 않다는 전제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어와 수학의 성향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시 위의 아인슈타인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영어는 외우는 학문' '수학은 이해하는 학문'. 아마도 대다수가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개념이 우리가 느끼기엔 그리 틀리진 않다.

단어와 숙어를 잘 외우는 친구들이 영어시험을 잘 보는 것을 종종 보아왔고, 수학점수가 발표되는 시간에 '줄밧따'를 맞곤 하던 난 영어를 잘하는 녀석들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이렇게 삶 속 깊이 체득한 이 개념들 앞에 저자 조영민씨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그런 녀석들의 뇌는 십이지장 근처에 붙어있는 거라 생각하니?"

웬 선문답인가 지금 날 놀리느냐고 따지려는 찰나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대신 센스영어 파트 중 하나인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헤딩 연습만 죽어라 해서 지단같은 선수가 탄생할 수 있다면 후보 선수들은 물주전자만 열심히 날라도 충분히 주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축구에서는 드리블뿐 아니라 수비, 몸싸움, 패쓰, 슛, 헤딩능력에 전략, 전술 이해도까지 갖추어야 경기에 투입될 선수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영어를 십년 넘게 공부해도 외국인에게 말 한 마디 자신 있게 하지 못하고 실력은 늘 제자리 걸음이라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혹시 10년째 박치기 연습만 죽어라 하고 있는 축구 지망생의 모습이 당신의 자화상은 아닌지."- 센스영어.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中 -

축구를 잘 하고 싶어 헤딩연습만 하는 것은 아닌지, 영어를 잘하고 싶어 독해만, 문법만, 단어만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면 영어가 아닌 영어점수를 잘 따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 교육제도 속 악순환체제에 휘둘리는 우리의 모습을 한 번 정도 되돌아보게 한다. 여기에서 마침 비유를 든 축구처럼 말이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 전까지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일본에게 위협받고 있었다. 한때 우리의 상대도 되지 않던 일본이 우리를 쫓아오게 된 원인은 물론 일본의 과감한 투자도 있었지만 큰 원인은 우리에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조건 뛰고 차고 지르는 축구를 가르쳤던 우리의 축구시스템이었다. 아무런 목적도 이해도 없이 하던대로 열심히만 뛰는 축구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노력이 헛되이 소모된다면 결국 낭비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히딩크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갖추어줄 조력자를 찾게 되었고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축구를 알려주었다. 게임을 이긴다는 추상적인 목적이 아닌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지배한다는 구체적인 목적이 생기고 한사람만 졸졸 따라다니는 대인마크가 아닌 주변의 팀 동료를 이용한 새로운 수비, 이른바 압박을 배우게 되었다. 그로 인해 경기를 보는 새로운 시야가 트였고 게임의 흐름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 바로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4강에 진출한 이유였다. 센스영어의 저자 조영민씨가 주장하는 것도 그것이다.

"영어는 결코 쉽지 않다. 그 어떤 비법을 사용하더라도 영어 자체가 쉬워지지는 않는다. 다만 영어를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는 있을 것이다. 영어를 익히면서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는 '앎의 즐거움'이다. 앎의 즐거움이야 말로 인간이 만끽할 수 있는 최상의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당신이 지금껏 영어를 접하면서도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아마도 '앎의 즐거움'으로 통하는 입구 바로 앞에서 '암기'라는 늪에 빠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 센스영어 Epilogue 中 -

그렇다면 이 책이 히딩크처럼 영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독자들을 구해줄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현 한국축구의 상황이 답을 대신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히딩크의 마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말한다. 분명 히딩크는 우리에게 새로운 축구의 길을 일러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가리킨 달이 아닌 그의 손가락만 보고 있을 뿐이다. 히딩크, 히딩크를 되뇌며 축구가 아닌 마법에 더 정신을 쏟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가 가르쳐준 축구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한 셈이다. 왜 전문 포지션이 필요하면서 포지션 파괴가 필요한지, 왜 오버래핑이 필요하면서 홀딩형 수비가 필요한지 왜 우리가 축구를 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 왜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고 느끼고 창조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축구와 영어의 본질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독자들의 구세주가 되기를 거부한다. 즉 축구 = 히딩크가 아니듯 영어 = 영어책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전거 타는 요령은 일생에 단 한 번만 배우면 된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암기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요령을 알려 준다. 딱 거기까지다. 이 책은 이를테면, 언젠가는 떼어버려야 할 자전거 보조바퀴의 역할을 할 뿐이다." - 센스영어 Epilogue 中 -

여기에서 보듯 이 책은 자전거 보조바퀴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겸손하다는 것이 아니다. 영어의 본질을 이 책 저자가 꿰뚫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배우는 학문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공자를 만나면 공자를 죽여라." 과연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영어책을 리뷰하면서도 이 책의 내용과 알레고리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것은 무의미하다. 이 세상에 길은 많다. 다만 목적지는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지를 잘 아는 사람만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그 목적지를 올바로 알고 있는지를 필자 나름 세밀하게 살펴본 것이다.

다만 저자가 직접 독자를 그곳으로 데려다 주진 않는다. 페달을 열심히 밟을 준비가 된 독자들에게만 튼실한 보조바퀴가 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어찌 보면 건방지다 못해 오만한 저자의 태도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 오만함이 마음에 든다.

"언제까지 머뭇거리겠는가? 자, 이제 힘차게 페달을 밟아 보자!" - 센스영어 Epilogue 中 -

센스 영어 Sense English - 영어울렁증 완전극복처방전

조영민 지음,
황매(푸른바람), 2007


#조영민 #영어 #축구 #히딩크 #아인슈타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3. 3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4. 4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5. 5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