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학력, 나 역시 공범자

엿가락 같은 부모님의 학력

등록 2007.08.21 09:01수정 2007.08.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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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국졸(졸업장은 없음)이고, 어머니는 무학(국해 수준)이다.

1930년 생인 아버지께서는 일제 강점기 때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셨는데, 졸업장을 받지 못하셨다. 졸업시험(아마 마지막 시험을 말하는 듯) 때, 떨어진 연필을 줍는데, 일본인 감독교사는 부정행위를 했다면서 시험지를 빼앗았다고 한다. 당시 동급생들보다 두어 살이 많았고, 결혼까지 하셨던 아버지는 일본인 교사에게 욕을 하면서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그 뒤, 학교에서는 나오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고집을 부리면서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서류상으로 졸업은 시켜주었는지, 괘씸죄에 걸려서 졸업도 못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졸업장을 받지 못했으니 국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29년생인 어머니께서는 간이학교를 2년간 다니다가 그만 두었다고 하신다. 즉, 정확한 학력은 초등학교 2학년 수료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30년대 전후에 시골에서 성장하신 분들의 학력은 대개 내 부모님과 유사한 경로를 거치지 않으셨나 싶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의 부모님 중에서 반 이상이 국졸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시골에서 이장이나 반장을 했고, 면장을 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부모님의 학력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일 것이다. 매년 학기 초 선생님이 가정환경조사서를 내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부모의 학력이다. 가정환경조사서를 아버지께 갖다 드렸더니, 부모님 두 분 모두 '국졸'이라고 써주셨던 듯하다.

나는 그 때, '아버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아닌데…'라는 생각은 하였지만, 그렇다고 무학이라고 쓰는 것이 무언가 창피해서 그대로 두었다. 2학년과 3학년 때도 별 생각이 없이 두 분 모두 '국졸'이라고 썼다.


문제는 시내로 유학하여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였다. 그 때는 가정환경조사서를 그 자리에서 쓰게 하는 것이다. 옆에 있는 친구들을 보니까, 시내의 부모님들은 교육 수준이 높아서인지 부모님의 학력이 대개 중졸이고, 가끔 고졸도 있었지만 국졸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두 분 모두 '국졸'이라고 쓴 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데 시내 중학교 출신인 옆의 짝이 말했다.


"자식, 부모님 망신 줄 생각이야? 국졸이 뭐야? 고졸이라고 써."
"우, 우리 부모님은 국졸인데…."
"괜찮아. 그걸 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틀렸다고 벌 주지도 않아."

하긴 중학교 때도 정말 부모님께서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했는지 확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국졸도 확실하지 않은 부모님을 고졸이라고 하자니 스스로도 낯이 뜨거웠다. 잠시 고민한 끝에 아버지는 중졸, 어머니는 중퇴라고 해두었다.

2학년 때 이후에는 간이 커져서 스스럼 없이 두 분 다 중졸이라고 했다. 가정환경조사서의 부모 학력은 왜 매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다.

사실 부모님의 학력을 중졸이라고 썼다고 해서 내가 실질적으로 어떤 이익을 본 것은 없다. 만약에 국졸이나 무학이라고 썼다고 해도 담임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무시하거나, 내게 어떤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자신의 학력을 속인 것은 아니라도 부모의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것은 사실이니 나 역시 학력을 속인 사회적인 범죄의 공범자가 아닌가 싶다.

학력을 속인 것은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내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도 역시 가정환경조사서를 쓰게 했는데, 거기에도 부모의 학력은 쓰게 되어 있었다. 어떤 학교에서는 학교의 이름까지 쓰게 하는 곳도 있었다.

내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교직에 근무하는 나에 대해서는 콤플렉스가 없는 듯하지만,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아내에 대해서는 좀 마음에 걸렸나 보다.

"엄마, 학력도 써야 하거든. 대학교를 어디로 쓸까?"
"글쎄!"
"엄마가 간호사를 했으니까, 간호학과가 있는 데가 어디 있나? 00대학교 쓸까?"
"야, 그 때는 거기에 간호학과가 없었어. 00전문대라고 써."

어쩌면 모녀가 이렇게 죽이 잘 맞을까? 조금도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아니, 그것을 바라보는 나 역시 별다른 의식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 학력도 속였는데, 아내의 학력이라고 못 속일까?

그런 내가 김옥랑씨나 윤석화씨 등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내가 부모나 아내의 학력을 속였거나 허위 기재를 묵인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어떤 이익을 본 것은 없지 않은가? 나는 그들과 다르다.'

그런 강변도 해보았지만, 어떤 이익도 없었다면서 굳이 학력을 속인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 과시나 만족 역시 허위 학력으로 얻은 이익이 아니던가?

내가 사회적으로 큰 위치에 있지는 않고, 부모나 아내의 학력이 현재의 나의 신분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니 법적으로 하자는 없다. 그러므로 내게 돌을 던지거나 비난을 퍼부을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러나 비록 유무형의 큰 이익을 얻지는 못했지만, 진실되게 자신을 밝히지 못한 지난 날에 대해서 반성한다. 아무 것도 아닌 서푼짜리 자존심으로 인해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다.

끝으로 나를 허위 학력의 공범자로 만든 사회에 대한 항의하며 글을 마치겠다.

부모의 학력을 속인 것은 내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무엇을 알겠는가? 학교에서 부모의 학력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이 인격 형성이 시작되는 시기의 학생들에게 학벌 지상주의를 심어주었을 것이다.

만약, 교육적인 효과를 위하여 부모의 학력이 꼭 필요했다면, 그것을 조사하는 학교에서 좀더 엄격하게 시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랬다면 학벌 지상주의의 악폐는 심어주었겠지만, 최소한 함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각인시켰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부모의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뒤 무사히 넘어갔던 나는 아내의 학력을 허위로 기재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내 능력이 부족하여 기회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필요했다면 내 학력 역시 속이지 않았을까?

김옥랑씨나 윤석화씨도 허위 학력의 시발점이 어쩌면 부모의 학력을 속이는 데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많은 국민을 허위 학력의 범죄자로 만든 주범은 학생들에게 부모의 학력을 요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문교부(교육인적자원부)에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고하신 아버지에 대한 작은 변명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아버지가 국졸이라고 말씀하실 근거는 있다. 1970년대 어느 때던가 아버지의 모교에서 어린이 회장의 명의로 안내장이 온 적이 있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배님들의 사업 번창을 기원합니다. 드릴 말씀은 농촌 벽지의 어려움 속에서 저희 후배들은 면학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읽을 책이 부족합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이런 저희를 딱하게 여기시고, 도서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미래의 꿈을 불태우는 후배들을 위하여 선배님들께서 도움의 손길을 주시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간청드립니다.'

서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께서는 평소에는 모교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때만은 흔쾌히 도서 수십 권을 보내주셨고, 어린이 회장 명의의 감사의 글이 왔었다.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이 그 지역을 떠나서 살고 있는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아마 학교 당국에서 졸업생 명단을 파악한 뒤, 도움을 줄 만한 사람에 대한 어떤 정보를 주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서류상으로는 국졸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학교(어린이회장의 이름을 차용한 학교 당국)는 아버지가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동문으로 인정하는 글과 함께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지는 거기에 호응했다. 그렇다면 그 학교를 졸업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내가 겪은 '학력 콤플렉스'>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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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국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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