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대학 나온 소설 써! 난 고등학교만 쓸게"

[학력 콤플렉스] 이 시대의 '고졸'은 수치스런 일인가?

등록 2007.08.21 16:30수정 2007.08.2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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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1@7년 전 회사에 다닐 때였다. 나이가 많은 관계로 본의 아니게 가끔 상담역을 맡았다.하루는 한 여직원이 찾아왔다. 예의 바르고 알뜰하고 세상을 향한 시선도 바른 아이였다. 그런데 퇴사한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공부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에겐 1년 된 남자친구가 있었다.남자친구 수치심 걱정에 퇴사한 여직원"고졸 여자친구를 좋아할 남자가 어디 있겠어요. 지금은 잘 모르지만 누가 되든 소개를 할 때마다 고졸이라고 말해야 할 텐데, 창피하지 않겠어요."햐! 듣고 있던 고졸,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시대의 고졸 대접이 이렇게 심각할 줄이야. 여자 친구를 고졸이라고 소개하는 남자친구의 수치심! 그리고 고졸이기 때문에 남자친구 앞에서 죄인이 되어야 하는 고졸 여자 친구의 심정! 그걸 미리 간파하고 대학을 가야겠다는 거다. 그런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부득불 대학에 갈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기는 거란다.난 고졸이지만 수치심은커녕 부채의식을 갖고 살았다. 난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지만) 6학년 때였다. 반장을 하던 아이가 보름씩이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시던 선생님, 급기야 반장이 사는 동네 아이들을 시켜서 알아보게 했다. 다음날 반장을 만나고 온 아이가 선생님께 반장의 말을 전했다.'중학교도 못 갈 봐에야 졸업은 해서 무얼 하냐고 안 나오겠대요.'한 달쯤 뒤 하굣길에 그 반장 아이를 보았다. 그 애는 논에서 소를 몰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무척 미안했다. 아주 출중한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반장을 할 정도로 능력도 있었다. 그런 아이가 학업을 중단한다는 건 그 당시 내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의 손실이었다. 그 애보다 못한 나도 고등학교까지는 보장되어 있는데, 생각하니 몹시 미안했다. 그 아이의 공부를 가로챈 것 같고.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우리 반(48명)에서 중학교에 간 친구들은 열 명 안팎이었다. 나머지는 집에서 일을 돕든가 공장으로 돈을 벌러 갔다. 그래서 중학교에 가지 않은 한 친구가 영어책을 들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돌았다. 우리 집은 정해져 있었다. 딸은 무조건 고등학교까지, 아들은 대학교까지로."너넨 대학 나왔으니 대학 나온 소설 써!"그런데 내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40 넘어서 시작한 소설 때문이었다. 신문사 문화센터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소그룹을 만들어 합평도 하고 우애도 다졌다. 열 명쯤 되는 인원에 고졸은 달랑 나 하나.그때 대학원에 다니던 후배가 넌지시 말했다."선배, 고령자 특례입학이라는 게 있어요. 내가 아는 분도 그렇게 해서 우리 대학에 들어왔어요."내가 그냥 그러냐고 시큰둥하게 대꾸하자, 후배는 제법 진지하게 적극적으로 말했다."선배 한 번 생각해보지 그래요. 대학에 다니면 시야도 넓어지고 소설도 달라질 텐데."솔직히 난 학구파가 아니었다. 공부를 좋아해서 어떻게든 대학에 들어가야겠다고 맘먹었다면 벌써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도 못한 주제에 이제 와서 무슨 대학을 가나."그래, 말은 고맙다. 하지만 지금 내가 대학은 무슨 대학이니? 소설 쓸 시간도 부족한데. 그 시간이면 내가 하고 싶었던 다른 공부를 하겠다. 사실은 학비도 문제고. 그래…. 너네는 대학 나왔으니까 대학 나온 소설 써라. 나는 고등학교만 나왔으니까 고등학교만 나온 소설 쓸 테니. 소설이라는 게 반드시 이래야 된다는 공식이 있는 거 아니잖니. 그러니까 다양한 소설이 필요한 거구, 또 독자들은 자기들에게 맞는 소설을 골라 읽을 거구 말이야."그 후배는 못내 아쉬워했지만 내 확고한 생각을 알았는지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 대학이라고 가서 학점 따고 학사 일정에 따라 얽매여야 하는 거, 생각만 해도 따분했다. 당연히 소설 쓸 시간, 생각할 시간도 없이 허둥될 게 뻔했다. 크게 도움도 안 되면서 졸업장이나 따자고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 시야를 넓힐 목적이라면 한 일 년 정도 대학이라는 생활은 하고 싶었다. 요즘 아이들의 의식수준도 알아볼 겸해서.@IMG2@"없는 이력 만들어 낼 순 없잖아요?"그런데 또 다른 불이 발등에 떨어졌다. 당선통지를 받고 담당자를 만났을 때였다. 당선소감과 이력서를 써 오라고 했는데 소감이야 그런 대로 썼지만 내 이력은 단 두 줄이었다.경기도 시흥 출생과 소명여고 졸업.나는 담당자의 충격(?)을 짐작하고 미리 말했다. "그런데 이력이 너무 간단해서요."담당자, 내 이력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거 정말 너무 간단하네요." 머뭇머뭇 곤란해 하던 담당자, 전년도 전전년도 당선자 서류철을 가져와 내게 직접 보여 주었다. 물론 나보다 복잡(?)한 이력에 나보다 훨씬 젊은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난 난감해 하는 담당자에게 똑 부러지게 말해 주었다."그냥 이대로 해 주세요. 없는 걸 만들어 낼 수는 없잖아요."내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담당자라고 별수 있을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대로 통과. 아주 간단한 내 이력이 그대로 실렸다.난 아직 내 책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는 내 능력부족 탓이지 학력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 발간돼 나온 책들을 보면 참 재밌다. 어떤 책에는 작가 이력에 출신학교가 나오고 어떤 책에는 안 나온다. 아마 모두 눈치 챘을 것이다. 학벌이 화려한 작가는 출신학교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는 출생지만 나온다는 것. 출판사의 생존 전략일 것이다. 판매 부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쓰지 않는 게 낫다는 뭐 그렇고 그런 전략 말이다.그걸 거꾸로 이용하면 안 될까? 이 작가는 이런이런 학교만 나왔지만 월등한 사고력과 상상력을 가졌고 그것을 바탕으로 많은 노력을 한 결과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작가를 돋보이게 하는 전략으로 바꿔보는 것 말이다. 물론 여기서는 모델이 없는 고로 파격적인 제시를 못했지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모두들 한길로 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승부해도 어렵다는 지금,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전략을 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덧붙이는 글 | '내가 겪은 학력 콤플렉스' 공모글입니다

2007.08.20 16:30ⓒ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내가 겪은 학력 콤플렉스' 공모글입니다
#학벌콤플렉스 #대학 #학력 #고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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