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이명박 한방론'을 버려라

[유창선 칼럼] 17대 대선 패러다임 변화, 그들은 읽고 있나?

등록 2007.08.21 13:49수정 2007.08.2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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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당선이후 처음으로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을 방문해 강재섭 대표로부터 꽃다발을 선물받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당선이후 처음으로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을 방문해 강재섭 대표로부터 꽃다발을 선물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나라당 경선이었지만, 역시 경선은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1년2개월 대장정의 막을 내린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은 이러한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험악했던 경선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입었던 상처를 일거에 치유시켜준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주저 없는 승복선언. 초박빙의 차이로 갈라진 승패 앞에서 과연 경선승복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을 일축하고, 그는 조건 없이 깨끗한 승복을 선언했다. 패자로서는 한이 남을만한 박빙의 승부였기에, 박 전 대표의 승복선언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경선을 성공시킨 한나라당의 변화

일단은 유종의 미를 거두었기에 한나라당의 경선은 충분한 흥행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경선을 통해 한나라당이 거둔 수확은 그것뿐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이번 경선을 거치면서 자신의 체질을 강화시켰다. 한나라당 하면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를 연상하던 시절이 있었다. 야당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 모여 정치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과거의 정치행태를 버리지 못했던 모습 때문이었다.

그러했던 한나라당에게 사실 이번 경선은 일대 모험이었다. 한나라당은 국민참여경선을 실질적으로 도입하며 국민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결국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라는 '민심'이 승패를 가른 결과를 낳았다.

내용면에서 미흡하기는 했지만, 국민검증위원회를 운영하고 후보검증 청문회를 TV 생중계한 것도 과감한 모험이었다. 서로가 검증을 칼날을 겨누는 상황에서, 당이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빚어진 것도 여러 차례.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러다가 정말 당이 깨질지 모른다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쪼개질 듯 쪼개질 듯하다가 한나라당은 다시 합쳐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경선과정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은 정치가 무엇인가를 학습하고 그만큼 자신을 단련시킨 것이다.

변화의 실험을 통해 체질을 강화시킨 한나라당의 모습은 12월 본선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예상하건대 이전보다는 다소 중도의 지점으로 이동하며, 탈이념적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


이번 경선을 거친 한나라당은 과거의 민자당이나 신한국당과는 다른 정당이 되고 있다. 이 점을 애써 외면하고, 한나라당을 과거의 5·6공 정당 다루듯이 한다면 패착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상대는 변화하고 있는데, 한나라당을 향해 '수구정당' 아니면 '차떼기 당" 식의 고전적 레파토리만 반복하고 있다면 범여권은 이번 대선에서 백전백패이다.

a 범여권내 예비대선주자인 손학규ㆍ김혁규ㆍ이해찬ㆍ한명숙ㆍ정동영ㆍ천정배 후보 6인은 지난 7월 4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김근태 전 의장 주선으로 열린 대선예비주자 6인 연석회의에서 만나 대선체제 정비와 국민경선을 통한 후보선출문제를 논의했다.

범여권내 예비대선주자인 손학규ㆍ김혁규ㆍ이해찬ㆍ한명숙ㆍ정동영ㆍ천정배 후보 6인은 지난 7월 4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김근태 전 의장 주선으로 열린 대선예비주자 6인 연석회의에서 만나 대선체제 정비와 국민경선을 통한 후보선출문제를 논의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명박 선출'이 의미하는 것

이명박 후보의 승리에 담겨있는 의미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는데도 이명박 후보가 어떻게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를 궁금해 했다.

전문가들은 민심이 '도덕성'보다 '능력'을 선택한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현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분위기이다. 개발시대에 대기업을 하고 재산을 모았던 사람에게 어디 흠결이 없었겠느냐며, 제기되는 의혹들을 어느 정도는 당연시하는 분위기마저 있다. 설혹 과거에 여러 허물들이 있었다 해도, 지금까지 정도의 것이라면, 덮어주고 가자는 정서로 요약된다.

그대신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같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경제성장은 그래도 낫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과거를 용서해줄 테니, 미래를 책임지라는 정서이다.

물론 그 임계점은 존재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한 '무엇'이 나온다면 그때는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들 가지고는 지지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번 경선결과로 나타난 내용이다.

이번 대선을 앞둔 민심의 요구는 이렇게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과거 우리 대선은 '민주화'나 '변화'같은 거대담론들이 시대정신으로 자리하며 주도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추상적인 거대담론만 외친다면 국민 다수의 외면을 받게 되어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개혁 대 수구, 평화 대 전쟁, 성장 대 분배, 심지어 선과 악, 이런 이분법적이고 선언적인 논리로는 국민들의 요구를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환경이다. 2007년 대통령선거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범여권, 실력으로 이길 생각해야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문제들을 가지고 국민이 원하는 바를 가지고 경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함께 잘 먹고 살 수 있는' 비전과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이것을 가지고 국민의 지지를 얻고 상대와 경쟁을 벌여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경제성장과 경기회복의 문제, 일자리 창출과 고용의 문제, 사회보장문제, 교육문제, 주택문제, 의료문제 같은 것들이 주요 영역이 될 것이다. 국민들이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능력을 보이며 실력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지금 범여권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명박 후보는 '한방'에 보낼 수 있다는 '한방론'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범여권은 이명박 후보가 선출되던 날, '검증은 이제 시작'이라고 일제히 선언하고 나섰다. 물론 후보검증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어쩐지 자기 실력보다는 상대의 타격과 낙마를 통해 승리를 거머쥐려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막판 후보단일화를 통한 대역전극에 대한 기대도 그렇다. 극적인 상황연출로 순간적인 바람을 불러일으켜, 11개월동안 지다가 마지막 한달에 이기는 승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러한 방식이 먹혀들지는 모르겠지만, 이 역시 실력보다는 요행에 기대를 거는 '공부 안한 수험생'의 모습으로만 비쳐진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창당 기술자도, 선거기술자도 아니다. 국민이 어려워하고 절실히 원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해법을 내놓고 해결능력을 보여주는 정치세력이다. 이번 대선의 승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게 되어있다.

그러나 범여권세력은 아무런 말이 없다. 자신들의 사회발전전략은 무엇인지, 노무현 정부의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혁신할 것인지, 왜 자신들이 집권해야 하는 것인지…. 대통합 민주신당이 창당했지만 묵묵부답이다. 그저 '반 한나라당'이다.

성장을 이끌 능력에 대한 기대가 이명박 후보의 높은 지지율로 나타난 것이 객관적 현실이라면, 그와의 경쟁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앞에서 '반 한나라당'을 내걸고 '민주평화개혁세력' '민주개혁세력의 적자'를 외치고 있는 것은 공허하다.

2002년 대선으로부터 5년의 시간이 지났다. 당연히 대선을 둘러싼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범여권의 모습을 보면 5년전의 사고와 방식이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다. 상대의 낙마라는 행운을 학수고대하기보다, 자신의 실력을 보여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는 범여권의 모습을 주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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