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즐거움이라도 행복했었지요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43] 덩굴닭의장풀

등록 2007.08.22 13:45수정 2007.08.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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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닭의장풀은 아침나절 잠시 피었다가 시드는 작은 꽃을 피운다. ⓒ 김민수

뜨거운 햇살이 한창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면 그 햇살을 친구로 삼아 피어나는 꽃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꽃들 중에는 닭의밑씻개, 닭의꼬꼬, 수부초, 압식초, 압자채, 달개비, 로초, 람화초, 압척초라고도 불리는 '닭의장풀'이 있습니다. 닭장 근처에서 많이 자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요. 당나라 시인 두보는 꽃이 피는 대나무라고 하여 닭의장풀을 기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꽃은 이 닭의장풀의 사촌격인 '덩굴닭의장풀'입니다. 꽃술이나 이파리는 닭의장풀이지만 덩굴성줄기를 가지고 숲의 그늘진 곳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하늘로 하늘로 향하며 작은 꽃을 피웁니다.

닭의장풀의 꽃말은 '짧았던 즐거움'입니다. 생각해 보니 과거형이네요. 과거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아쉬워하는 듯한 뉘앙스가 들어 있습니다. 덩굴닭의장풀은 아마도 덩굴이 나뭇가지들을 꼭 부여잡는 것처럼 '짧았던 즐거움'을 꽉 잡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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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있는 가지들을 부여잡고 하늘로 하늘로 향한다. ⓒ 김민수

몇 년 전 닭의장풀을 보면서 이런 노래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밤새워 뒤척였습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뜬눈으로 설렘으로 밤을 지새우고 맞이한 여명
붉디붉은 햇살에 그만 화들짝 피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
소리로만 느낄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
바람, 파도소리, 새소리, 나비들의 나폴거리는 소리
까르르 웃는 개구쟁이들의 웃음소리
그들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을 다 간직하기도 전에
하루가 저 산 너머로 붉은 눈물을 흘리며 지고 있었습니다
짧/은/즐/거/움/
그러나 진정 행복했습니다. - 자작시 <닭의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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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 화사하지 않은 꽃, 잠시 피는 꽃, 그래도 슬퍼하지 않는다. ⓒ 김민수

닭의장풀은 작지만 화사하기라도 한데 덩굴닭의장풀은 하얀색꽃인 데다가 작아서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작기도 하고, 화사하지도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데다가 잠시 피었다가 지는 꽃이지만 그들은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주어진 모든 날들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강촌에서 그를 처음 만난 이후 화악산자락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왔습니다. 게릴라성 폭우는 꽃잎을 상하게 하지요. 피어났던 꽃들도 비에 젖어 버리면 제 모습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비온 뒤에 핀 꽃들이야 비를 흠뻑 먹고 막 피어났으니 싱그럽지만 피었다가 비를 맞은 꽃들은 대부분 많은 상처를 입습니다.

그들은 여름 장맛비에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파리도 짓물러 있었고, 계속되는 흐린 날씨에 나뭇가지를 부여잡은 덩굴들은 너무 연약해서 살짝 건들기만 해도 부러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하늘로 하늘로 향하며 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신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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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따가운 아침, 그림자로 피어나는 덩굴닭의장풀은 수수하다. ⓒ 김민수

우리는 간혹 남아 있는 시간을 걱정하며 현재 주어진 시간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성구의 의미를 돌아봅니다. 오늘 주어진 삶, 그것을 살아가기도 벅찬데 내일의 염려까지 미리 당겨온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요.

짧았던 즐거움이라도 마냥 행복한 꽃처럼, 뜨거운 햇살에 얼굴이 타든 말든 햇살을 향해 꼿꼿하게 피어난 꽃들을 보면 삶이란 이렇게 진지한 것이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
#덩굴닭의장풀 #닭의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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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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