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하다, 이명박의 '정상회담 걱정'

[고태진 칼럼] '전쟁불사당' 후보 되지 않으려면

등록 2007.08.22 14:28수정 2007.09.1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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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후 서울 혜화동 주교관을 방문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김수환 추기경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혜화동 주교관을 방문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김수환 추기경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21일 오후 서울 혜화동 주교관을 방문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김수환 추기경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000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에 이어 당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의사를 전달하는 차원으로까지 발전했던 북미관계 진전이 좌절된 것은 2000년 11월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만약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되었다면, 그래서 북미 간에 일정 정도의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서로 간에 신뢰가 구축되었다면 아마 2002년부터 한반도를 짓눌러온 북핵 위기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부시 대통령의 당선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악의 축'으로 대표되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압박 정책도 그 진행과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집권으로 시작된 2차 북핵 위기

 

북한 폭격 일보 직전까지 갔던 1994년의 1차 북핵 위기는 카터의 방북중재와 제네바 합의의 길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 2000년 클린턴 대통령 방북 직전까지 진행되었다. 하지만 2001년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의 집권으로 대결 국면으로 치달아 2002년의 2차 북핵 위기로 다시 찾아왔다.

 

그 2차 북핵 위기가 이제 2·13 베이징 합의를 통해 이제 막 해결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해 오던 부시 행정부도 결국은 대화를 통해 서로가 평화적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은 북핵 위기라는 한반도의 공포를 불러들이고 10년 가까운 세월을 허비한 결과를 낳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초에 있을 남북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에 직접 관련한 의제를 다루기에는 적절하지 않겠지만, 6자회담에서의 북핵 해결 성과를 남북 간의 신뢰 회복을 통해 가속화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다. 굳이 북핵 문제가 아니라도 남북 간에 신뢰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남북 정상이 얼마든지 자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의 정상회담 관련 발언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흡사 2000년 클린턴의 방북을 반대해, 결과적으로 2002년 북핵 위기를 낳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압박 정책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부시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자이기라도 했지만, 이명박 후보는 현재 후보일 뿐이다.

 

<조선일보>가 8월 22일자 1면에 대대적으로 띄운 기사를 보면, 이 후보는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걱정'이라며 '핵 있는 상태에서 회담'이라 '핵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리 대선후보라지만, 한마디로 심각한 착각이고 선동이 아닐 수 없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을 통해 오랫동안 여러 나라가 노력해 온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란 원칙을 끝까지 지켜 현재의 해결 국면을 만드는데 우리 정부가 많은 역할을 한 것도 인정해야 한다.

 

이제껏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한 역할은 북한더러 북핵을 포기하라고 윽박질러 댄 것뿐이었다. 오죽하면 '전쟁불사당'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북핵을 인정하는 것이라니 혹시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선동을 위해 북한이 계속 핵을 보유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남북정상회담 관련 발언을 크게 다룬 <조선일보> 22일자 1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남북정상회담 관련 발언을 크게 다룬 <조선일보> 22일자 1면.조선일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남북정상회담 관련 발언을 크게 다룬 <조선일보> 22일자 1면. ⓒ 조선일보

'전쟁불사당' 후보가 북한 주민의 소득을 3000달러로?

 

더구나 그 발언의 당사자가 한나라당의 다음 대통령 후보라니 심각하다. 이명박 후보는 말로는 북한을 개방해서 기업들을 투자하게 하여 북한 주민의 소득을 3000달러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공약을 하지만, 과연 북한에 대한 이런 자세로 그것이 가능이나 할까하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대통령이 되더라도 정상회담 한번 못하고, 남북관계를 더욱 경색시키지 않을지 걱정이다.

 

"국익에 맞지 않는 정상회담이 되어서는 안 되며, 다음 정권에 부담을 지우는 의제들을 합의하는 회담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식의 발언도 문제가 있다. 아무리 정파적 이해가 대립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대해 '국익에 맞지 않는' 식의 표현은 우리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으며, '다음 정권' 운운하는 발언에서는 이미 자신들이 다음 정권을 예약한 듯 한 오만한 자세가 보이는 것이다.

 

2000년에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 당선이라는 외부의 변수가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되돌려버렸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 물꼬를 다시 바로잡는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낭비됐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한반도 평화의 길을 그르쳐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우리 민족의 평화와 장래에 관한 문제에 이 정부, 다음 정부가 어디 있을 것인가?

 

참여정부는 2002년 갑자기 터진 북핵 위기를 임기 기간 동안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안정화시켰다. 아직 완전한 해결까지는 멀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지금까지의 북핵 해결 과정 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한나라당이 정상회담을 '북핵 인정'이니 하며 그 가치를 폄하할 하등 이유가 없다.

 

이명박 후보는 <조선일보>같은 '친미반북신문'의 부추김에 정신이 팔려 무조건 정상회담에 반대하고, 한반도 평화의 흐름을 거스르는 '전쟁불사당'의 후보가 되어서 좋을 것이 없을 것이다. 현 정부와 북한이 합의한 남북정상회담에 참견하며 정치적 이해 득실에 골몰하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성과로부터 북핵 문제의 완결한 해결을 향한 과정을 고민하는 것이 대통령 당선이라는 목표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2007.08.22 14:28ⓒ 2007 OhmyNews
#이명박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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