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사상으로 부활하다

그의 독립운동은 적극적 '아힘사'의 실천

등록 2007.08.22 15:58수정 2007.08.22 16:04
0
a

ⓒ 여성신문

폭력이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 지속되었다면 평화를 지향하는 비폭력은 인간의 문화만큼 오래 지속되었다. 비폭력은 폭력을 극복하는 방편이자 이상으로 높이 찬양되었다. 그래서 인도문화가 인류의 사상사(思想史)에 기여한 공로들 가운데 하나는 비폭력이 우리 인류가 갈망하는 평화로 가는 길임을 제시한 데 있다.

오늘날 우리 세대는 어느 시대보다도 국가·민족·인종·계급·종교·사상 그리고 세대간에 불신과 분쟁,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또 이러한 역사의 혼돈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필자는 '비폭력'을 강조한 '간디의 아힘사(ahimsa)'가 우리 세대, 아니 미래에도 영원히 지향해야 할 원리라고 확신한다.


'힘사'는 동물의 법, '아힘사'는 인간의 법

'아힘사'는 어원적으로 '살생(himsa)'을 '금함(a)'을 뜻한다. 아힘사의 의미는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소극적인 아힘사는 사리를 추구하거나 자기만족을 위하여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고의로 어떤 생물을 죽이거나 고통을 주는 것을 삼가는 불살생(不殺生), 불상해(不傷害), 그리고 비폭력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적극적인 아힘사는 보편적인 사랑(universal love)을 뜻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그의 저서 <비폭력(非暴力)저항>에서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폭력의 와중에서 비폭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성자들은 뉴턴보다 위대한 천재였으며, 웰링턴보다 위대한 장군들이었다. 그들은 손수 사용하고 있는 무기가 쓸모없음을 통절히 느끼고, 참된 구원은 폭력이 아니라 비폭력에 있다는 것을 인류에게 가르쳤다."

폭력과 비폭력이 평행선처럼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하는 대립이 아니라, 그 둘은 간디의 시각에선 빛(明)과 그림자(無明)처럼 하나의 양면관(兩面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힘사(himsa·暴力)가 동물의 법인 것처럼 아힘사(ahimsa·非暴力)는 인간의 법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보다 높은 법, 즉 사랑의 힘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간디는 인도가 이 사랑의 법을 실천하기를 원했으며, 인도의 위력을 자각하길 희망했다. 그는 계속해서 주장하기를 "비폭력은 인도의 상징인 것이다. 만약 인도가 그것을 포기한다면 인도는 나에게 있는 모든 자존심을 빼앗아갈 것이다"라고 했다.

생명에 대한 사랑…21세기 새 시대이념


a

ⓒ 여성신문

아힘사는 말뜻 그 자체로 보면 처음에는 개인적인 윤리 문제였고, 본질적으로는 종교적인 문제였다. 간디는 이 개인적 윤리를 사회윤리로 확대시켜 인도의 사회개혁과 정치적 자유에 위대한 업적을 남겨 세계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 먼저 간디의 사상적 배경과 시대적 기여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리고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온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이란 폭력에서 비롯된 한반도 분단상황을 고려하면서, 간디의 아힘사 정신을 세계 평화 정착과 21세기의 새로운 시대적 이념으로서 어떻게 재정립시킬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간디 윤리학의 개념으로서의 '아힘사'는 힌두교의 성전인 '기타', 에드윈 아널드(Sir Edwin Arnold)의 저서 <아시아의 빛(The Light of Asia)>, 그리고 신약에 나오는 산상수훈(山上垂訓·The Sermon of the Mount)을 통하여 종합적으로 형성된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간디는 이러한 성전의 영향을 받아 고대 지혜의 샘에서 아힘사를 재발견해 현대 인도에서 동적인 영혼의 힘으로 부활시켰다. 그럼으로써 아힘사를 사회윤리의 기본 덕목으로 삼았다.

사실상 인도에서는 수천년 동안 많은 성자들이 종교적 이상을 설파하면서도 좀처럼 현실과 대결해 사회제도를 개조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인도의 종교적·철학적 고매한 사상과 사회의 현실적 구조 간에는 괴리가 있었다. 그러나 간디는 아힘사의 교의를 현대 인도에 가져와 인도의 정치적 자유·독립과 사회개혁에 많은 공헌을 했다. 인류 역사 이래 대중적인 규모로 사회 및 정치운동에 아힘사를 적용한 이는 간디가 처음이다.

간디는 인도 고대의 종교에서 공유하던 덕목인 소극적인 아힘사를 개인적 자아 실현을 위한 실천덕목으로 삼았다. 그리고 적극적인 아힘사를 사도 바울이 정의한 사랑보다 더 넓고 깊은 사랑으로 보고, 이상사회 실현을 위한 실천덕목으로 간주했다. 간디는 적극적인 아힘사를 '사랑의 법(Law of Love)'이라고 하고, 소극적인 면을 '비폭력의 법'이라고 했다.

간디의 독립운동은 적극적 '아힘사'의 실천

a

ⓒ 여성신문

간디의 아힘사는 '불상해', '불살생', 그리고 '비폭력'과 같은 소극적인 면보다도 악인이나 적에게도 사랑을 실천하는 적극적인 면을 더 강조하고 있다. 인도 고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일체의 생명에 대한 사랑'과 '불교의 동체대비(同體大悲)', 그리고 힌두교 성전 '기타'의 '카르마 요가(karma-yoga)'의 영향으로, 간디는 우리가 만약 아힘사의 실천자라면 우리의 적을 자기의 아들이나 부모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우리가 단순히 사랑할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아힘사의 길이 아니며, 증오하는 사람을 사랑할 때 아힘사는 실현된다는 것이다. 남이 자기를 아무리 증오하더라도 자기는 철저히 그를 사랑함으로써 그의 증오를 풀도록 실천하는 것이 '아힘사의 길'이라고 간디는 주장했다. 그는 이런 적극적인 아힘사를 '기타'의 '카르마 요가'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이념화하고 실천하여 인도의 많은 분야에서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 첫째로 간디는 정치적 영역에서 아힘사의 개념을 강하게 부각시켜 인도인들에게 '독립'이라는 이상을 제시했다. 이와 같이 정치적 영역에서 아힘사의 개념을 구현한 것은 사상사적으로 독자적인 의의를 지닌다. 간디의 '스와라즈(swaraj·독립)'운동은 수백만의 굶주린 민중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것은 적극적인 아힘사의 실천이었다. 그는 이와 같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의 '정략(政略)'이란 종교였다.

둘째, 사회적 측면에서는 간디 자신이 그린 이상사회의 실현을 위해 불가촉천민제를 비롯한 카스트 간의 불평등, 여자아이의 조혼제도, 과부들의 재혼 금지, 죽은 남편과 살아있는 아내를 같이 화장하는 '사티'(suttee) 등의 철폐에 전력을 기울였다.

셋째, 경제적 측면에서 그는 인도 독립을 위해 '아파리그라하(aparigraha)', 즉 무소유 정신을 가르침으로써 인도 민중들로 하여금 그들이 소유한 것을 사회와 '모든 생명의 복리'를 위해 사용할 것을 강조했다. 이것의 실천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의 차이를 해소해 이상사회 실현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가르쳤다.

넷째, 종교적 측면에서는 전래되던 종교적 유산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성과 윤리의식을 통해 검증하고 그것을 새로이 재해석함으로써 합리적이고도 보편종교적인 사고의 길을 열었다. 그래서 현대의 인도철학자 라이 카르나(K K Lal Karna) 교수는 "간디의 아힘사는 인도의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의 사상을 종합해 보편적인 체계를 이루었다"고 주장했다.

새 패러다임 확립을 위해 보편화·세계화를

a

ⓒ 여성신문

이처럼 인도를 밝은 길로 인도했던 간디의 아힘사 정신을 인류의 기본적 가치관으로 승화시켜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개인에게, 그리고 특정 공동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경시하고 모든 생명체와 자연이 서로 관계해서 의지하고 있는 것(相依相關的 緣起)을 자각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는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바람직한 공동체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인간 존엄성과 공동체의 삶을 강조하는 아힘사(보편적 사랑)가 그 대안이다.

간디의 아힘사는 개인을 깨우치고, 올바른 인간관계 및 사회관계를 정립시키며, 이 관계를 대우주에까지 확장시킨다.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공존과 사회 완성의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힘사의 정신은 '자타불이(自他不二)'를 뛰어넘어 '만인일체관(萬人一體觀)'으로 나타나며, 나아가서는 무생물까지도 모두 한몸(萬有一體觀)이라는 사상으로 발전한다.

a

ⓒ 여성신문

우리가 아힘사의 정신을 자각하면 개인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자기의 몸과 마음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처럼 몸담고 있는 가정, 사회와 국가, 그리고 우주 또한 보다 큰 나의 자아(普遍我·Paramatman·Universal Self)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당위가 된다.

그러나 폭력의 일상성으로 인해 비폭력의 고귀함을 찾기 힘든 요즘, 사랑의 사회적 실천이란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아힘사 정신이 사회적 가치가 되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해야 한다. 그 실천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면서 글을 끝맺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도구화된 지성적 인간관(homo faber)'에서 '불성 생명적(佛性 生命的) 인간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불성 생명'의 시각에서 '만유일체관'으로 나타난 '동체대비(同體大悲)'인 아힘사 정신을 모든 분야에서 보편화·대중화·세계화해야 할 것이다.

[김선근/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간디 #아힘사 #비폭력 #생명 #인도
댓글

(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