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봉 외 28명 공동집필 <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 문화의 지형도>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문화키워드 29개를 주제 삼아 이 시대 우리 문화의 양상을 집약적으로 논의 전개하고 있는 책 <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 문화의 지형도>. 이 책은 매 주제 해당 분야 연구자의 글 뒤편에는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덧붙여 추가적인 읽기를 가능하게 하였다.
조주은이 쓴 '양성평등이 아닌 다양성 존중의 문화로'는 ‘양성평등’의 함의가 가져올 수 있는 오해와 왜곡을 지적하는 글이다. 그것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혼합하려고 하는 것,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역할 바꿈을 양성평등문화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여성주의에 대한 오해와 오독이라는 것.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양성평등문화라기보다는 남성/여성, 남성의 역할/여성의 역할이라는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문화, 한 사람의 행위가 성정체성으로 설명되고 환원되는 게 아니라 개성으로 이해되는 문화, 곧 다양성과 차이가 존중되는 문화가 어떻게 가능할까에 관심을 모아야 할 때다. (154쪽)
최샛별의 ‘영어제국의 탄생’은 부르디외의 문화자본론을 들어 우리나라 영어 권력의 시스템에 접근해보고 있는 글이다.
경제자본이 바탕이 된 중상계급 이상의 가정환경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어떠한 한 부분으로 완전히 체화된 문화자본이, 사회적 기준에서 능력이라고 평가되어 그들의 계급적 지위를 유지하도록 해 주는 것을 ‘상징적 폭력’이라 한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주면서 “한국에서 능력과 성공의 아이콘으로 생각되는 영어실력이 사실은 부모의 경제자본과 연결된 체화된 문화자본일 수 있다”고 말한다.
김기봉의 ‘우리 안의 민족주의’는 ‘탈민족’의 문제를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다. 우선 하인스 워드와 조승희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주목하면서 하인스 워드는 한국민족으로 포섭하려 하고(혈통민족주의적 관점) 조승희는 미국인으로 배제하려 하는 것(시민민족주의적 관점)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가 점점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변모해가는 상황에서 혈통민족주의에 입각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위험하다는 것. 더욱이 우리 사회 내의 귀화자나 외국인노동자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과 태도는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인들도 더 늦기 전에 탈민족주의 사고를 가져야 한다. 탈민족주의란 반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화시대에서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중략) 21세기에 역사는 더 이상 ‘아와 비아의 투쟁’이 아니라 ‘아와 비아의 상생’으로 정의돼야 한다. (117~124쪽)
현병호의 ‘탈학교’ 관련 논의와 김종성의 ‘학교도서관’ 관련 논의도 읽어둘 필요가 있겠다. 이 모두 우리의 교육 문제를 생각게 하는 논의들이다.
현병호는 ‘진정한 배움의 길’이라는 글에서 먼저 오해부터 푼다. ‘탈’이란 말 때문에 학교 탈출이 탈학교인 것처럼 오해하지만 사실 탈학교론자들이 거부하는 것은 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학력을 교육의 척도로 삼는 모순된 사회체계라는 것.
‘탈학교’라는 말은 이반 일리히가 <탈학교 사회>라는 책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60년대 말 서유럽에서는 현대문명과 사회제도에 대해 전방위로 문제제기가 일어났고 국가주도의 공교육 속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가 비판받기 시작했다. (중략) 일리히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가치’와 그것을 실현하는 ‘제도’를 혼동하여 (중략) 또한 가치가 제도적 장치에 의해서만 실현된다고 오해하고 제도에 집중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 결과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아무리 학습을 잘 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높은 학력과 일류 학벌이 교육의 성취를 보증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273~274쪽)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은? 대학의 영향력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신분질서가 되다시피 한 학벌체제 역시 좀처럼 허물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21세기 사회 변화와 함께 학교체제 역시 변화를 겪겠지만 교육의 본질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다고 볼 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곧 교육기술의 발달은 아니며, 사이버 학습 공간의 확충 또한 교육시스템의 질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다만 정보 교류와 활발한 연대망에 힘입은 다양한 배움의 가능성과 이러한 자발적 학습 네트워크의 구축은 학교체제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뒤이어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김종성의 ‘교육 공동체의 희망’이라는 글은 학교도서관 운동의 결과 보고서다. 충북 옥천의 청산초등학교, 경남의 ‘학생사모’(학교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 강원도 홍천의 동화중학교 등 교육 모델이 될 수 있는 현장으로 이끈다.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통해 우리 사회는 많은 것을 새롭게 경험했다. 교수학습 과정이 민주화되고, 지식 문화자원의 공공성이 확대되고, 학교 문화가 유연하게 변하는 것을 체험했다. 이제 이런 경험이 학교도서관을 이끌어가야 한다. (308쪽)
<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 문화의 지형도>는 이 시대 우리의 문화를 점검하는 동시에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문화의 지형도
김기봉 외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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