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합니다, 고작 눈병일 뿐인데"

[여름휴가 실패기] 내 휴가를 망쳐버린 유행성 결막염

등록 2007.08.24 19:10수정 2007.08.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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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죽었냐. 인턴 끝나면 한가하다며! 나 이번 주 일요일에 출국이니까 연락해 만나자."


요사이 내 휴대폰으로 도착하는 문자메세지의 모양들이다. 하나같이 친구와 선후배들의 메시지의 요지는 '바쁜 척 그만하고 나타나시지'. 나도 집밖으로 나가고 싶다. 아직까지 나를 넓은 인내심으로 기다려주는 그대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 하지만 차마 나는 그럴 수 없다. 내가 그대들을 만나러 가기에는 그대들을 위하는 마음이 크고, 나 자신도 더 이상의 상처는 받고 싶지 않다.

지난 학기를 마치면서 나는 알찬 여름방학을 위한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남미를 탐험하겠다는 휘황찬란한 계획부터 스쿠터에 몸일 싣고 제주도를 완주하겠다는 계획, 10년 만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여행 계획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인턴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옴과 동시에 모두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토록 소망하던 인턴기자 생활은 내게 그 어느 때보다도 값지고 보람찬 여름방학을 선물했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새로운 세계에 올인하는 동안 그만큼 멀어진 것들이 많았다. 가족들,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그것이었다.

8월 중순 인턴 활동을 마치고 9월 초 개강까지 내게 주어진 약 2주간의 시간은 그 아쉬움을 해소할 유일한 시간들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집에 '콕' 박혀서 상처를 받고 있다고 운운하느냐?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열심히 일한 우리, 떠나자!


6주간의 인턴활동을 마친 뒤 우리들은 축령산 자연휴양림으로 엠티를 떠났다. 매일 보던 동기들이라 그런지 고작 1주일 안 봤던 것뿐인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개강 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휴가다운 휴가를 즐겨보자는 생각으로 뭉친 우리들은 그동안 데드라인의 압박에 시달렸을 탓일까. 내 평생 예상시간 정시에 전원 집합하고 출발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강변에서 출발해서 마석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울퉁불퉁 길을 지나 축령산 입구에 도착했다. 2박 3일동안의 식량을 한 아름 안고 숙소에 도착했고, 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근처 계곡으로 달려 나갔다. 춥지 않을 만큼의 햇볕과 차가운 계곡물은 더위를 한방에 무찔러 주었고, 계곡물에 담가 놓았던 수박 맛은 기가 막혔다.


물가에서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놀이 후 숯불에 구어먹었던 고기는 진미 중에 진미였다.
물가에서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놀이 후 숯불에 구어먹었던 고기는 진미 중에 진미였다.황승민·서영화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돌아와서는 참숯에 불을 지펴 바비큐 파티를 시작했다. 고기와 술이 곁들여진 우리의 저녁밥상은 어느 고급 휴양지도 부럽지 않았다.

이튿날에도 우리의 신나는 일정이 시작되었다. 여름철 공공의 적 햇볕이 우리 방 가득 내비추기 시작했고 우리는 또 다시 계곡을 찾았다. 얼음장이 따로 없었다. 몸이 덜덜 떨려서 물에 발을 담그기 조차 조심스러웠다. 커다란 바위에 나란히 튜브를 베고 누워 햇볕과 맞짱을 뜨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으니. 이아무개의 눈이 충혈 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 계곡물이 나랑 좀 안 맞나보다."

그 때 우리 모두는 이아무개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것이 곧 재앙의 시작이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으며 마지막 날 밤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출발하게 된 마지막 날 아침, 이아무개의 눈은 몰라보게 부어있었다. 느끼함을 자랑하던 아무개의 두꺼운 쌍꺼풀은 이미 펴져서 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그 부어오른 눈두덩이 위에는 마치 붉은 색 눈화장을 한 것 같았다.

마냥 아무개를 놀리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던 우리는 "소(아무개의 별명)가 광우병에 걸려서 눈이 빨개졌다"면서 유치한 말장난을 시작했고, 그것이 머지않아 우리에게 닥쳐올 일이라는 것은 정말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엄청난 전염율, 유행성 결막염

엠티에서 돌아 온 다음 날 아침, 나는 내 눈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 의지로 떠지지 않는 두 눈. 그리고 분명 눈을 떴음에도 무언가가 내 눈두덩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 느낌. 거울을 봤다. 아 이럴 수는 없었다. 거울 속의 당신은 누구신지. 이아무개처럼 두꺼운 쌍꺼풀의 소유자가 아니었던 나의 눈은 뜨고 있음에도 뜨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흰 눈동자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정말 깜짝 놀랐다. 허겁지겁 눈곱을 떼고 세수를 하고 잽싸게 안과로 향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설마 아무개에게 옮았을까 부인하고 싶었다. 바로 그 때 타이밍 기가 막히게 날아 들어온 문자메시지.

"언니, 혹시 이아무개처럼 눈이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다. 그랬던 것이었다. 나는 치료를 끝내자마자 통화버튼을 눌렀다. 함께 엠티에 갔었던 주현이 역시 병원에서 나오는 길이라고. 아무도 우려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저 '정말 물이 안 맞았겠거니' 생각했던 아무개의 충혈 된 눈은 유행성 결막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의사선생님 왈 "전염성이 강하니까 가족들 옮지 않게 수건 비누 따로 쓰시고요."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의 머릿속에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 이미 오래 전 약속되어 있던 친구들과의 만남. 무엇보다도 인턴을 하는 동안 괴외를 소원하게 해줘 미안했던 수험생 지혜. 안약 때문인지, 내 눈을 지배해버린 눈곱들 때문인지 앞이 뿌옇게 변해 아무 대책도 생각나지 않았다. 처방전을 내미는 간호사 언니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야외활동에는 지장 없는 건가요? 안약 넣으면 금방 낫겠죠?"
"본인이 괜찮으면 야외활동 해도 상관없지만 전염성이 워낙 강해서... 눈도 불편할 텐데... 그리고 완치되려면 보통 2~3주 걸려요."

집에 가는 길, 무산되어버린 남은 방학 계획들과 지혜에 대한 무책임함 때문에 가슴이 허했다. 그리고 나의 눈병 소식을 들은 동기들에게서 연이어 들려오는 이야기들. '나도 눈병 걸렸다', '나 한 쪽 눈이 이상해' 그렇다. 서울로 돌아온 후로부터 이틀간 엠티에 참석했던 7명 중 5명이 감염된 것이었다. 약 70%에 달하는 전염율, 잠복기가 1주일이라는 이 전염성 결막염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울을 보고 있자면 정말 공포영화에 나오는 귀신의 눈이 따로 없다. 멀리서 보면 검은 눈동자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눈을 감고 있자니 안구가 눈꺼풀에 덮여진 채 터져버릴 것만 같고, 눈을 뜨고 있자니 작은 충격으로도 안구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엄마는 무서워서 눈을 맞출 수가 없단다. 엄마 친구분들도 나의 눈병소식을 건너 듣고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당분간 헬스클럽에 오지 말라고 했단다. 아무 것도 모르고 나를 따르는 해영감(기자의 애완견 이름)을 보고 있자니 고맙기도 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수의학을 전공하는 광민 오빠에게 강아지는 사람 눈병에 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그를 품에 안았다.

눈의 통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게서 눈병이 옮을 것이 걱정되어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수 없었다. 9월 학기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는 많은 유학생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보내야 했음은 당연지사요, 무엇보다도 얼마 전 큰 병에 걸렸고 현재 회복 중에 있는 후배 수연과 통화는 안타까운 마음을 극대화 시켰다. 보고싶으니 내일 병문안을 와달라는 수연이. 나는 눈병 때문에 갈 수 없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도착한 수연의 메시지.

'언니 보고싶어요. 나 보러 와요.'

부분적인 기억상실증에서 차차 회복 해가고 있는 수연이가 나를 기억하고 찾아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스러웠다. 하지만 몸이 많이 약해져 있기에 눈병이 전염될 것이 걱정돼 나는 또 다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눈병이 무슨 죽을병이냐고요

고작 내가 외출을 하는 시간은 집에서 5분거리에 위치한 안과에 갈 때 뿐이다. 3일 동안 총합 1시간도 안 될법한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내게 쉽게 잊어버리기엔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나는 눈병에 걸린 사람의 예의라고나 할까. 길을 걸을 때는 고개를 푹 숙이거나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녔다. 내가 나를 봐도 무섭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을 백 번 천 번 이해했다. 눈을 비빈 손으로 누군가와 접촉을 했을 때 비로소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 주변에 머물기를 꺼렸다. '나라도 그럴 거야' 라고 애써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마치 한센병환자를 기피하던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던 어느 날의 경험은 까진 무릎팍의 빨간 약 보다도 내 마음을 더 쓰리게 했다.

그 날도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병원으로 향했고, 그날따라 유독 어린이 환자들이 많았다. 대기 인원도 많았다. 나는 눈을 뜨고 있어봐야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거 같아 눈을 감고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황승민씨 들어가세요."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바로 그 때였다. 5살즈음 되어보이던 손녀와 함께 진료실을 나오시던 할머니. 나를 보자마자 손녀의 눈을 가리며 "애끼, 소영이 얼른 눈 가리고 밖에 나가있거라, 아이쿠 세상에 깜짝 놀랐네."

당황스러웠다. 내 모습이 꺼림칙했을 법도 하다. 손녀를 위하는 할머니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내 눈에서 세균 레이저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처방전을 받으면서도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으시던 할머니.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한다면 비명을 지르며 줄행랑이라도 치실 것만 같았다.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이 억울한 마음을 달래고자 동기 주현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보았다. 많이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그녀가 부러웠다.

이번 주말 덕적도로 마지막 바캉스를 즐기고자 했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내 눈을 아직 보지 못한 친구 녀석들은 괜찮으니 오라고 하지만 나는 차마 갈 수 없다. 내 남은 방학을 망친 눈병과 그 눈병을 휴가 선물로 선사한 이아무개씨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9월 개강 전까지 완쾌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 응모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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