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이 사채업자 되는 건데요?"

수업시간에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 어떻게 할까?

등록 2007.08.26 13:00수정 2007.08.2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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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가 산만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그보다는 좀 더 증세가 심한 아이들이 상당수 눈에 띄는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 기상천외한 엉뚱한 말을 자주 내뱉는 아이들이 가세하면 더욱 가관이지요. 자칫 호흡조절을 잘못하면 버럭 화를 내거나 핏대를 세우다가 수업을 망치기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그들도 엄연한 학생인데 교실 밖으로 내쫒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할 단계에 이르기 전에는 그들과 한 교실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교사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저는 떠들거나 딴 짓을 하는 아이가 눈에 띄면 잠깐 자리에서 일어서게 했다가 곧바로 다시 앉힙니다. 그래도 떠들면 또 자리에서 일어서게 했다가 앉힙니다. 그래도 또 떠들면? 다시 일어서게 했다가 앉힙니다. 물론 그 사이 수업은 계속 진행합니다. 이런 싱겁디싱거운 방법이 꽤 잘 먹힙니다.

태도가 산만해지려는 아이를 일으켜 세워 수업내용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런 경우, 대개 처음에는 대답을 잘 못합니다. 그러면 잠시 서 있게 한 뒤에 다른 아이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런 다음, 다시 그 아이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도 대답을 못하면 계속 서 있게 한 뒤, 또 다른 아이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대답을 못하면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챈 아이는 급우의 대답에 기울였다가 끝내는 대답을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를 마치 불량품을 바라보듯 바라보는 것은 교사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입니다. 설교를 길게 늘어놓는 것도 별효과가 없습니다. 화를 자주 내는 것은 효과도 없을뿐더러 교사의 건강을 해치는 독소입니다. 시치미를 뚝 떼고 일어서게 했다가 앉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때 얼굴에 환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대답을 제대로 하면 있는 표정 없는 표정 다 동원하여 칭찬을 해주고 자리에 앉힙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차츰 달라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교사 자신이 아이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됩니다. 물론 연습이 필요합니다. 세상 모든 일들이 다 연습이 필요하듯이 말입니다. 감정을 품지 않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 그것은 도사가 아닌 전문직 교사가 갖추어야할 기본 덕목인지도 모릅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입니다. 수업시간에 들어가 출석을 부른 뒤에 산만하기가 이를 데 없는, 그러면서도 칭찬을 자주 해주어서 그런지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도 하는 두 아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선생: 오늘 ○○가 수업을 아주 잘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구나.
학생1: 예, 오늘 컨디션이 좋아요. 선생님, 수업에 집중을 잘 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선생: 집중을 잘 하는 방법? 조금 있다가 생각나면 말해줄게. 아, 생각났다. 근본적으로는 꿈을 갖는 것이 좋은 방법이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뭔가 목표가 없기 때문일 수 있거든.

학생1: 맞아요. 저는 꿈이 없어요.
학생2: 선생님, 사채업자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나요?
선생: 뭐? 지금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뚱딴지 같이 무슨 사채업자 이야기야?
학생2: 제 꿈이 사채업자가 되는 건데요?
선생: 그래? 그럼 말이 되네.
학생2: 제 꿈이 두 개에요. 사채업자. 그리고 영화배우.

선생: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니?
학생2: 사채업자요.
선생: 왜 사채업자가 되고 싶은데?
학생2: 당연히 돈을 많이 벌려고 그러죠.

선생: 돈을 버는 것은 좋은데 사채업자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니?
학생2: 저는 사채업자가 되어도 조폭을 동원하거나 그러진 않을 거예요.
선생: 그럼 꿔준 돈을 어떻게 받아?
학생2: 꼭 돈을 갚도록 말을 진지하게 할 거예요.
선생: 글쎄. 그렇게 해서 잘 될까?
학생2: 그러니까 머리를 써야지요.

학생1: 선생님, <쩐의 전쟁> 보셨어요?
선생: 아니? 그건 왜 갑자기 물어보는데?
학생1: <쩐의 전쟁>이 사채업자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해주었어요.
학생2: 맞아요.
선생: 그래? 그 이야기는 언제 다시 하기로 하자. 이제 수업을 해야지?
학생2: 예.


그날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오면서 마치 환청처럼 제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긍정적인 생각'

두 아이 입에서 그런 경건하고 참신한 단어가 쏟아져 나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아이들을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것이지요.

늘 산만한 태도를 보이거나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단정하기 쉬운 아이들도, '진지하게'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사채업자가 되는 것이 꿈인 그 아이와는 언젠가 시간을 내어 더 많은 얘기를 나누어야겠지만 말입니다. 물론 제가 모르는 것은 아이에게 배우기도 하면서.
#사채업자 #수업 #주의산만 #쩐의 전쟁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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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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