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없는 밥집'에 다시 가보다

더 어려운 이웃 위해 밥값에 '마음'을 보태세요

등록 2007.08.27 10:25수정 2007.08.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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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먹을 만큼 밥과 반찬을 가져다 먹는다. ⓒ 이명옥

지난 토요일 서울 서교동의 유기농 밥집인 '문턱 없는 밥집'에 가 보았다. 밥집에는 운영자인 신혜영씨, 연변에서 오신 아주머니, 도봉동에서 출근한다는 아주머니 등 세 명이 부지런히 점심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12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들어오기 시작한다. 12시부터 1시 30분까지 먹을 수 있는 유기농 보리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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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없는 밥집의 규칙 ⓒ 이명옥

대체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 동네 친구인 것 같은 할머니들, 연인처럼 보이는 다정한 커플이지만 드물게 혼자 오는 분들도 눈에 띈다. 처음 온 사람들은 숙지사항을 알려주는 메모를 건네받아 읽으며 '빈 그릇 운동'과 밥집 운영 방침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어르신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어 운영자에게 "어르신들이 많이 오는가?" 묻자 "그렇다"며 이제 "머뭇거리지 않고 들어와 당당하게 점심을 드시고 가시는 어르신도 꽤 생겼다고"고 살짝 귀띔한다.

설마 이렇게 좋은 집에서 천원에 밥을 줄까 싶었어.

할머니 네 분이 맛있게 밥을 비벼 드시고 담소를 나누기에 "자주 이 밥집을 들르시느냐"고 여쭈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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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이 점심을 드시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이명옥

"이번이 세 번째야. 사실 처음엔 여기를 들여다보고 에이, 아니겠지 저렇게 깨끗한 집에서 무슨 천원에 밥을 주겠어 하고 그냥 돌아갔어. 손녀에게 '얘, 그런 집 없더라' 했더니 손녀가 그러는 거야. '할머니, 교회 근처 그 집 맞아요. '문턱 없는 밥집'이라고 간판도 붙어 있어요. 아마 간판은 잘 안 보일 거예요' 하는 거야. 그래서 혹시나 하고 와 봤는데 진짜 천원에 밥을 주는 거야. 이렇게 시원하고 깨끗한 데서 천원에 밥을 주니 우리야 너무나 고맙지."

손녀딸이 알려줘서 동네친구 분들과 세 번째 점심을 먹는다는 할머니는 천원에 시원하고 깨끗한 장소에서 점심을 먹고. 또 편안하게 담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척 고마워하는 눈치다.

한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한 아내와 먹으려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와서 2인분씩 밥과 반찬을 담아간다. 빈 그릇 운동과 저소득층 어르신을 위한 점심 대접이라는 부분은 조금씩 자리가 잡혀가는 것 같아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도 주방일 해봐야 고충 알아...

손님들이 한가해질 무렵 주방의 아주머니 두 분이 점심을 먹기 위해 주방에서 나왔다. 그 분들에게 이런저런 보람과 고충을 자세히 들어 보았다.

- 언제 가장 보람이 있었고 무엇이 가장 힘이 드는가?
"손님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며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할 때 보람을 느낀다. 제일 힘이 드는 건 영업시간이 지났는데도 손님들이 가지 않을 때이다. 영업 끝나는 시간이 밤 10시인데 10시에 끝난 적은 거의 없다. 특히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분들이 늦게 앉아 있으면 가시라고 할 수도 없고 참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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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아버지가 다리가 아픈 아내와 먹으려고 위해 2인분의 밥을 싸고 있다. ⓒ 이명옥

연변에서 와서 일하고 있다는 아주머니는 "앉아 있는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그 사람들이 앉아 있는 동안 우리는 일을 숱하게 해요. 밥 먹는 시간 빼고 거의 서서 일을 해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언제 윤 선생님(윤구병 선생), 우리 집 남편. 이 집 남편, 저 집 남편 모두 12시간씩 서서 주방 일을 해봐야 한다고요. 재로 다듬는 거. 채소 써는 거. 설거지까지 다 해보면 주방일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드는지 알게 될 거예요."

그 말에 세 여성은 의기투합해 정신 개조를 위해서라도 꼭 실천에 옮겨 보자며 무척이나 즐거워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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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옥

"그날은 밤 11시까지 술을 마시며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늦게까지 술자리를 파하지 않는 손님 때문에 퇴근도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그들의 고충을 알리고 싶은 바람을 아주머니들은 그렇게 표현을 했다.

가까운 사이나 잘 아는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이 있다. 자기에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빠르게 혹은 늦게 해도 괜찮다는 사고부터 바꿔, 누구의 시간이든 소중하게 여기는 습관을 들인다면 손님이라고 해서 혹은 고용주라고 해서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나, 고용인의 시간을 마음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시간이 소중하면 타인의 시간도 내 시간만큼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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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밥그릇 운동을 위해 ⓒ 이명옥

지금도 지구촌 한쪽에서는 수억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수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다. 음식물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한 톨의 밥알도 남기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라면 자가용을 몰고 온 가족들이나 인근 사무실에 근무하는 젊은이들조차 대부분 천 원 이상의 비용을 내지 않고 딱 천원만 내고 점심을 먹고 가는 모습이다. 자발적인 나눔의 문화가 자리를 잡을 때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더 많은 저소득층 어르신들이 미안한 마음 없이 편안하게 점심을 드시게 하기 위해 일하는 젊은이들과 여유 있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제값'을 내고 점심을 먹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문턱없는밥집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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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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