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처음 여성들> 책표지홍성사
역사는 여성들의 발자취를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남성위주의 사회,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 남성이 우울한 사회 배경 속에서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동양 여성의 삶은 '무명씨' 하나로 통일되는 경향이 있다.
개화를 이끈 한국교회의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드러나기보다 감춰지고, 그것이 미덕인 사회 속에서 한국교회의 여성들은 그림자였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역사 속에 쉼 없이 흘러 내려왔지만 돛대 없는 배처럼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교회 여성들은 순교자, 만세운동의 선두주자, 교육가, 의사, 이름 없는 헌신자로 리더의 자리에 있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가 주는 자유와 해방을 온전히 받아들인 조선의 여인들은 과감히 유교의 구습으로 점철된 가부장 문화의 족쇄를 끊고 일어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새 역사의 물꼬를 트는 주역들이 되었다.
남편의 외도에 속수무책 속 앓이만 하던 전삼덕은 예수를 만난 뒤 이북지역에서 맨 처음으로 휘장 세례를 받은 주인공이 되었다. 전삼덕은 오랜 봉건적 체제의 굴레 속에 묶여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한국 여성의 '한(限)'을 기독교 신앙을 통해 극복하고 초월하여 자유와 해방이 주는 창조적 삶을 살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전통사회의 끊임없는 방해가 있었지만 그것을 몸으로 깨뜨리며 앞서 나간 선구자의 삶이었기에 전삼덕의 도전과 모험은 더욱 빛났다.
경상도 마산, 이름 모를 곳에서 태어나 기독교를 통해 자신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교육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던 여메례. 그는 말년을 이름 없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농촌교회를 찾아 봉사하다가 결국 이름 모를 무덤에 묻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이 셋이었을 만큼 그녀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보쌈 위기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김세지는 기독교 진리를 만난 뒤 보호여회와 과부회 회장으로 활약하는 여성 리더가 되었다.
밥 먹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김점동이 예수를 만나 거듭난 뒤에는 미국 유학을 하고 돌아와 한국인 최초로 여성 의사인 김에스더가 되었다. 김점동이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 되어 육신과 영혼의 질병에 찌든 이 땅의 여성들을 위해 짧으나 고귀한 삶을 바치기까지는 두 번에 걸친 이름의 변화가 있었다. 그녀에게 김에스더, 박에스더에 이르는 이름의 변화는 곧 삶의 변화였다. 그리고 그 이름의 변화 때마다 그의 인생을 안내한 벽안의 선교사들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무당집 딸'로 손가락질 받으며 불행한 시집살이 끝에 결국 미쳐 버리기까지 했던 주포기는 예수를 만나 온전한 진리를 안 뒤, 해주지역 개척 '전도부인'으로 활약하는 주룰루가 되었다. 어릴 때 이름은 주포기였다.
신앙인 주룰루는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모든 고통이 의미 있는 것임을 깨닫고, 신앙의 힘으로 닥쳐오는 모든 고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그만의 고통이 아니라 그 당시 이 땅을 산 모든 신앙의 어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었다. 그 고통의 뿌리 위에 오늘 우리 후손들은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는 '거리의 여장부'였다. 백발을 날리며 민족 계몽과 전도를 위해 헌신하는 70대의 그의 모습은 바로 1919년 3월 9일 재령읍 거리에서, 그리고 1920년 3월 1일 밤 선천 거리에서 만세시위대 앞머리에 서 있던 30대의 모습과 변함이 없었다.
목포에 머물러 있었으면 살았을지도 모를 문준경 전도사는 '교인을 죽게 버려둘 수는 없다'는 목회자의 양심으로 적치하에 찾아들었고, 결국 그 희생제물이 되고 말았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다(善牧者爲羊捐命)"는 목회정신이 그를 순교자의 자리에까지 이끌었다.
그 외에도 결혼 3일 만에 과부가 된 여인,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가 된 여인, 양반집 규수로 태어나 한 번도 집 밖에 나가 본 적 없는 여인, 읽을 줄도 쓸 줄로 몰랐던 까막눈의 여인들이 복음을 통해 무지에서 눈을 뜬 후, 가정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혁하며, 나아가 비운에 처한 나라와 교회를 위해 몸바쳐 투쟁하는 여성 리더들이 되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방의 복음을 받아들여 민중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렸던 신앙의 옛 어머니들 이야기는 지금 현실 속에서도 교훈이 되는 보석 같은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입니다. 또한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www.bigfighting.co.kr)라는 타이틀로 메일링을 통해 글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
이덕주 지음,
홍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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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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