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상 작 <누가 이들에게>.김동원
경기도 퇴촌 원당리에 자리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건물을 양편으로 갈라 그 사이를 비워두고, 그 자리에 작은 반원형의 광장을 두고 있습니다. 그 광장으로 서면 마치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가슴 속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입니다. 그 가슴의 한가운데 섰을 때 가장 먼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좌우로 나눠져 건물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청동의 조각품입니다.
작품명은 임옥상의 '누가 이들에게'입니다. 이 청동의 조각품은 할머니의 꿈과 산산이 부서진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먼저 역사관 가운데에 있는 작은 광장에 서서 왼쪽으로 눈을 돌려봅니다. 그러면 그곳에선 할머니의 꿈이 보입니다. 할머니는 이제 나이 들어 이마에선 주름이 자글자글 끓고 가슴은 하염없이 늘어져 버렸지만 할머니의 꿈은 멀리 처녀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처녀 시절 꿈속의 할머니는 머리에 족두리를 얹으셨습니다.
꿈속의 할머니는 새색시인 셈입니다. 꿈속에선 여전히 새색시인 할머니의 꿈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조랑말 타고 올 훤칠하고 잘생긴 신랑을 맞아들여 알콩달콩 아이 낳고 살아가는 것이 할머니의 꿈입니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대체로 80을 넘어 90을 눈앞에 둔 나이대에 서 계십니다. 그 나이대의 할머니들에게 어렸을 적 꿈은 착한 신랑을 맞아서 가족을 꾸리고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대개의 사람들에게 단란한 가족은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지만, 할머니가 어렸을 때는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처녀 시절 꿈을 들여다보면 한쪽으로 조랑말을 타고 오는 신랑이 있습니다. 사모관대를 한 할머니의 신랑은 어엿하고 멋집니다. 할머니의 꿈, 그 다른 한쪽에는 그 신랑과 꾸린 가족이 있습니다. 예전엔 아이는 많을수록 다복한 것이었지만 꿈속의 할머니는 그래도 시대를 미리 내다보셨는지 셋을 낳아 가족 구성을 단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꿈속의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닙니다. 여전히 젊은 새색시입니다. 그러니 그 새색시의 가족은 셋으로 끝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셋째를 낳아 품에 앉고 신랑과 함께 다섯의 가족을 이룬 할머니의 꿈속에서 가족의 단란함을 엿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마 그 꿈이 할머니에게 꿈이 아니라 실제의 삶이 되었다면 꿈속에서 셋으로 그친 아이들은 넷, 다섯, 그리고 아마도 여섯도 되었을 것입니다. 셋은 사실은 이제 막 셋을 이룬 것에 불과합니다. 옛 시절엔 아이가 많을수록 큰 복으로 여겼으니 누구나 할머니의 꿈이 그려낸 가족 풍경 속에서 행복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그 행복한 꿈속에선 세상이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어둡기만 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할머니에겐 뿌리 뽑힌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꿈은 녹슬어 있습니다, 시퍼렇게.
누가 할머니의 그 소박한 꿈을 가져갔나요, 누가 그 꿈의 뿌리를 뽑아 버렸나요.
꿈의 할머니가 응시하고 있는 시선을 따라 그 맞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서 우리는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그곳엔 일본군국주의 총칼에 찔려 피 흘리고 계신 할머니가 계십니다.
피 흘리는 할머니는 그저 한복판에 태양만 하나 덩그러니 모셔놓은 일장기를 자기 나라의 국기로 가진 일본이 따뜻한 햇볕의 나라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태양에서 솟은 것은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빛이 아니라 세상을 피로 물들인 총칼이었습니다. 그 총칼이 할머니의 어깨를, 할머니의 팔을, 할머니의 머리를 찔렀고, 그 총칼이 할머니의 손을 잘랐습니다.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의 처녀는 많게 잡았을 경우 2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20만명이란 50명 정원의 버스에 나누어 태울 때, 4,000대의 버스가 필요한 어마어마한 인원입니다. 요즘의 중고등학교는 한 반의 인원이 35명 정도입니다. 한 학년에 10반까지 있는 전교생 1050명 규모의 학교라면 20만명이란 수치는 무려 그런 학교 200여개교의 인원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습니다. 그 많은 조선의 처녀들에게 '위안부'의 삶을 강요하며 피눈물을 뽑은 것이 바로 일본의 총칼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 과거도 할머니의 꿈처럼 녹슬어 있습니다. 세월 속에 묻혀버린 과거가 되어 버렸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처녀들에게 강요되었던 그 '위안부'의 역사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역사는 더 빨리 녹이 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하여 '위안부'의 역사가 녹슬어 사라지길 바라는 것이 일본의 심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피 흘리는 할머니에게서 분명하게 살아있는 곳이 한 곳 있습니다. 바로 할머니의 눈입니다. 할머니는 영원히 녹슬지 않을 투명한 눈동자를 부릅뜨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죄악을 영원히 증언하겠다는 듯이. 또 일본의 총칼 앞에 찢겨진 할머니의 과거와 오늘을 똑바로 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