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스캔들>에서 도도한 사치코로 분해 인기를 끌었다.KBS
물론 각각의 캐릭터 나이 대와 시대극과 시트콤이라는 장르의 차이 등이 영향을 끼친 부분도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비슷한 캐릭터를 다르게 소화해 내는 연기력을 선보였다는 점이 바로 김혜옥이 전성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그녀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해도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언제나 비슷한 캐릭터라도 새로운 특징을 포착해 새로운 캐릭터로 만들 줄 아는 연기력이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캐릭터를 선택하는 탁월한 안목
여기에 그녀가 선택하는 중년의 독특한 개성이 강한 캐릭터를 선택하는 안목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사실상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중년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드라마가 젊은 층의 연기자들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고, 내용을 담고 있어 중년 여배우들이 전면에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것은 아주 지극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년 여배우들은 조연에 만족해야 하고,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에 충실해야만 했다. 그마저도 왕년의 스타가 아니라면 캐스팅이 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들이 두 세 개의 작품을 중복출연하다 보니 비슷한 캐릭터에 출연해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워하게 되었다. 사실상 극명하게 다른 캐릭터라도 시청자들은 '어머니'라는 큰 타이틀 안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기에 각각의 캐릭터를 구분 짓지 않는다.
그래서 중년 여배우의 연기가 그저 그렇고,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김혜옥은 누구누구의 어머니로 출연하지만 매번 성격이 판이한 캐릭터를 선택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실 불과 몇 년 전 김해숙은 김혜자, 고두심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어머니상으로 떠올랐고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비슷한 캐릭터 연기를 고수한 탓에 지금은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며, 일용엄니에서 코믹의 여왕으로 변신한 김수미도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지속적으로 코믹한 연기만을 보여줘 한정된 연기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혜옥의 선택은 더욱더 빛을 발한다. 얼마 전 종영한 <경성스캔들>에서 사치코는 일본인이지만 예쁜 딸을 둔 어머니이자 아내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캐릭터가 주연만큼 빛을 본 것은 예민하면서도 도도한 공주의 모습이 사치코의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일본 귀족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란 사치코는 남편을 '무능한 남자'라 치부해버리며 하인 다루듯 하며, 자신 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듯 안하무인으로 경성 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도도함에는 허영과 푼수가 기본 바탕에 깔려 밉지 않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무능한 남자'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바람직한 기럭지를 가지셨군요", "귀여운 남자", "내 딸 한번 만나보겠어요?"란 말들이 유행어가 되었을 정도다. 그런데 종영되지 얼마 되지 않아 주말드라마 <며느리전성시대>에 출연했다. 역시나 누구누구의 어머니였지만 사치코와는 또 다른 어머니의 캐릭터였다.
<며느리 전성시대>에서는 족발집 하는 어머니(김을동)의 외동딸로 자라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낀다. 시장 족발집 딸에서 병원장 부인으로 신분 상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분 덕택에 며느리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아들(장현성)의 이혼으로 아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받고, 무뚝뚝한 남편(윤주상)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캐릭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