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순위 프로그램 부활해도 되지 않을까

폐지 후 가요계 불균형 없어지지 않아, 결국은 공정성 문제

등록 2007.08.29 10:42수정 2007.08.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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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또래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었다. <가요톱텐>과 <여러분의 인기가요> 등을 비교해보며 오늘은 어떤 노래가 1등을 차지하나,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몇 위나 올랐나 등 등수놀이를 지켜보는 것은 스스로 유치하다고 느끼면서도 나름 꽤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방송 3사와 라디오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각종 가요순위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넘쳐나던 최고의 전성시대였다. '호랑나비'의 김흥국이나 '사랑하기에'의 이정석, '타타타'의 김국환, '당신'의 김정수처럼 오랜 무명생활을 딛고 생애 처음으로 가요 1위를 달성한 가수가 흘리는 감동의 눈물은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였다.

80년대 <가요톱텐>은 5주 연속 1위를 한 노래에게는 '골든컵'을 쥐어주며 차트에서 영예롭게 퇴장시키곤 했는데, 간혹 아쉽게 4주 연속 1위를 하고 마지막 한주를 놓쳐 아쉬움을 남긴 가수들도 부지기수였다. MBC <인기가요>에서는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당시 방송사상 최고인 11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서태지의 '난 알아요'는 순위권에 진입하자마자 1위 후보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새로 나온 신곡이나 음반이 1~2주 만에 정상을 차지하는 경우는 드문 반면, 한번 인기를 끌면 오랫동안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장수가요들이 적지 않았다. 박정운의 '오늘같은 밤이면'같은 노래들은 음반이 발매된 지 약 1년이 넘어서야 순위권에 진입했고, 1위를 차지하고도 순위 차트에 수개월 이상 장수하는 독특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요즘같이 기획사의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순위권에서 '치고 빠지거나,' 히트곡의 수명이 한달을 넘기지 못하는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2000년대 들어 지상파 방송사의 순위 프로그램은 거센 논란에 부딪치며 침체기를 맞이했다. 방송사의 사적인 이해관계, 거대화된 기획사의 횡포, 댄스와 발라드 등 특정 장르에 편중된 가요계의 불균형은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효율성에 의문부호를 안겼고, 여론의 거센 비판에 의하여 하나둘씩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지상파 방송사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이 부활할 조심을 보이고 있다. <가요톱텐>의 후신인 KBS <뮤직뱅크>가 이미 9월 개편을 앞두고 순위제를 재도입하는 것을 추진하면서, 타방송사와 케이블 TV에서도 순위제의 재도입을 긍정적으로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하여 과거 순위제 폐지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일부 시민단체나 네티즌들은 순위제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을 적지 않게 내놓고 않다. 순위제 당시 지적되었던 여러 가지 폐단들이 아직 시정되지 않은 마당에, 대중음악을 과거의 관행으로 회귀시킬 수 있다는데 대한 거부반응이라고 할만하다.


물론 순위제 하나 부활시킨다고 침체된 대중가요계가 단번에 살아날 리는 없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음악팬들에게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들을 '대중가요'라는 틀 안에 뭉뚱그려 일괄적으로 순위를 매긴다는 발상 자체가 천박한 것일 게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비교와 경쟁은 대중가요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흥미를 부추기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었다. MBC <쇼바이벌>같은 프로그램의 인기원동력을 보면, 비록 순위제는 아니지만 신인가수들의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비교와 경쟁'이라는 시장적 요소를 적극 활용한 데 있었다.


여기서 순위 프로그램에 관한 핵심은 결국 공정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순위제도 자체가 퇴행적이거나 후진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은 '빌보드', 일본은 '오리콘'처럼 두 나라는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순위차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것은 대중문화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대변하는 고유의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순위제를 도입할 경우, 국내에서 그 기준으로 제시할만한 것은 음반판매량이나 온라인 음원판매, 네티즌 참여와 ARS 여론조사, 방송횟수, 투표인단 제도의 도입 등이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순위제도가 공신력을 잃은 원인은, 방송사와 프로그램별로 순위 선정기준이 워낙 제각각인데다, 시장 유통구조를 대형기획사가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생긴 부작용 때문이다. 여기에, 음악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10대 취향을 바탕으로, 국내 대중음악이 기형적으로 편중되면서 장르와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이 공존하던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정통성은 사라졌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순위제의 폐지가 가요계의 불균형을 해소한 것도 아니며, 가요프로그램의 인기하락과 음반시장의 불황은 더욱 악화됐다. 순위제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순위제 도입이나 폐지 여부가 곧 가요시장의 관행을 좌지우지할만한 본질은 아니며, 공정성이 문제가 된다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지 무조건 제도를 막는다고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방송사별 순위제의 도입- 폐지 여부는 제도의 규제보다는 시장의 자율적인 경쟁에 맡기되, 중요한 것은 '만약 순위제를 도입한다면' 그 전제조건으로 '어떤 방식으로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것인가'가 이 문제의 핵심이 되어야할 것이다.
#가요순위프로그램 #가요톱텐 #여러분의인기가요 #뮤직뱅크 #순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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