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귀염둥이 뿌미와뽀미

등록 2007.08.31 15:56수정 2007.08.3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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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서울에서 내려온 아가씨가 시댁인 나주 보성에 다녀오면서 자신의 아들 승현이에게 주려고 산 달팽이와 달팽이집을 그만 우리집에 놓고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제가 맡아 키우게 됐습니다.


아가씨는 한 달에 한 번 흙을 갈아주고 매일 상추 한 잎씩만 주면 잘 큰다며 잘 키워보라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집안에서 뭘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달팽이를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한 번 키워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처녀시절 우연히 새끼거북이 두 마리를 키우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거북이는 잘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제 게으름 때문인지 몇 달 안 돼 한 마리가 죽었고, 며칠 있다가 남은 한 마리마저 제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거북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나머지 죽은 거북이를 휴지에 조심스레 싸서 앞 베란다에 묻고 무덤 앞에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까지 꽂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키우지 않겠다고요. 그래서 달팽이 키우기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는 달팽이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가씨 말과는 다르게, 달팽이들은 하루 보통 상추 4개는 거뜬히 해치우는 무서운 폭식자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야채값이 비싼지라,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고 20이에 한 번씩은 달팽이용 흙을 사서 갈아줘야했기에, 누군가에게 줘버릴까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난 저는 마냥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습니다. 바로 6살 큰 아들과 3살 둘째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두 아들의 유난스런 달팽이 사랑에 저까지 달팽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하루라도 달팽이 녀석들은 보지 않고선 못 살 정도가 됐습니다. 달팽이들을 안 보면, 허전하고 불안하기까지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달팽이들에게 이름도 지어줬습니다. 덩치가 큰 녀석은 '뿌미', 작은 녀석은 '뽀미'입니다.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의 큰 아들 영진이는 달팽이에 관해 수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엄마 왜 달팽이는 집을 끌고 다녀?", "달팽이는 왜상추만먹어?" "덩치가큰달팽이가 아빠달팽이야?"


둘째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말을 못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장식장 위에 놓아둔 달팽이집을 내려달라며 펄쩍펄쩍 뜁니다.

뿌미
뿌미전복순
벽을타고다니는 뿌미?
벽을타고다니는 뿌미?전복순
상추가다떨어져 배추를먹고있는뿌미
상추가다떨어져 배추를먹고있는뿌미전복순
처음엔 징그러워 잘 처다 보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상추 먹는 것을 비롯해 벽을 타고 다니며 응가 하는 것도 마냥 귀엽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제 소홀함 때문에 하마터면 뿌미가 큰 일 날 뻔했습니다. 날씨가 더웠는데도 제가 며칠 동안 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엎드려 있어야 하는 애가 똑바로 누워 있어 죽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물을 뿌려주니, 힘 없는 고개가 쑥 나오더군요. 그제야 안심을 했습니다.

그래도 한참동안 움직임이 둔하여 머리를 상추쪽으로 돌려주니 그제야 상추를 먹으며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식물과 곤충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도심 속 우리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체험학습을 시켜주는 것 같아 지금은 뿌미와 뽀미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그림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로 보며 먹이도 주고 관찰도 할 수 있으니 키우는데 비용이 조금 들지만 아이들에겐 더 없이 좋은 자연학습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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